복지-재정부 ‘딴판 보고서’…영리병원 ‘일단 멈춤’
연구용역 결과 180도 다른 의견
보건진흥원 “의료비 상승…중소병원 몰락 우려”
KDI “의료서비스 증가로 필수부문 진료비 하락”
학계 등에선 “KDI, 터무니 없는 주장” 비판 많아
김소연 기자 박종식 기자
» ‘의료민영화 저지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회원들이 지난 10월 서울 율곡로 보건복지가족부 청사 앞에서 출범식을 열고 ‘영리병원 도입’에 반대하는 팻말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보건·의료 분야의 쟁점인 ‘영리 의료법인’(투자개방형 의료법인) 도입에 대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산업진흥원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정부의 공동용역 연구에서 정반대의 의견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기획재정부 등 경제부처들이 드라이브를 걸어온 영리병원 도입에 일단 제동이 걸린 모양새다.
보건진흥원과 한국개발연구원은 15일, 보건복지가족부와 재정부가 공동으로 맡긴 ‘영리 의료법인 도입 필요성’에 대한 연구 결과 보고서를 6개월 만에 발표했다. 하지만 700쪽 분량의 보고서에서 보건진흥원은 ‘사실상 반대’, 한국개발연구원은 ‘찬성’이라는 입장을 드러내며 접점을 찾지 못했다.
보고서처럼 두 부처의 반응도 엇갈렸다. 재정부는 “영리병원 도입 필요성이 더 크다고 나왔다”고 주장한 반면, 복지부는 “보고서만 봐서는 판단할 수 없고 충분한 의견수렴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결론 제각각 보건진흥원은 보고서에서,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일부 경제적 효과가 있지만, 의료산업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이 더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뜩이나 치솟는 국민 의료비가 더 올라가고, 중소병원 의사들이 영리병원으로 빠져나가면 문을 닫는 병원이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건진흥원은 우리나라 인구 3%(150만명)의 고소득층이 평균 진료비의 2~4배에 이르는 고급 의료서비스를 영리병원에서 이용하면 국민의료비가 1조5000억~2조원가량 오르고, 의사 300~420명이 빠져나가 20~28개 중소병원이 문을 닫으면서 농어촌의 의료인력 부족이 심각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리나라는 최근 5년 동안 국민의료비 증가율(5.1%)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4%)에 견줘 3.6배에 이른다. 보건진흥원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유지하고, 기존의 비영리병원을 영리병원으로 전환시킬 수 없다는 조건이 있어도 부작용이 커 영리병원의 신중한 추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반면 한국개발연구원은 영리법인이 허용되면 의료서비스가 늘어나면서 필수의료 부문에서 진료비가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의료서비스 가격이 1% 하락하면 국민의료비가 2560억원가량 줄어든다고 밝혔다. 또 정보기술(IT) 분야와 의료 및 건강관리서비스를 연결시키는 산업이나 첨단의료기술 연구가 활발해지고, 소비자 요구에 맞는 다양한 의료서비스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의료정책의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며 “영리병원을 전면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보건의료계도 입장 엇갈려 보건의료계도 견해가 나뉜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영리병원의 속성상 수익을 내기 위해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을 수 없는 비급여 진료를 늘려, 진료비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며 “영리법인이 도입되면 진료비가 줄 것이라는 한국개발연구원의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보건의료노조는 영리병원을 반대한다며 △16일 노조 간부들의 집단 삭발 △17일 윤증현 재정부 장관 규탄 집회 등의 계획을 밝혔다.
유럽의 여러 나라와 미국·싱가포르 등 다른 선진국들이 모두 영리병원을 도입했다는 한국개발연구원의 주장에 대해서도 ‘우리나라와 처지가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상이 제주대 의대 교수는 “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유럽은 국가 전체 병상의 60~95%가 공공병상으로 공공의료가 중심이 돼 있어, 영리병원이 의료체계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며 “민간의료 공급이 우세한 미국도 공공병상이 30%인데, 우리는 11%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보고서에서도 영리법인이 도입된 싱가포르는 공공병상이 72.6%, 프랑스는 65.1%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