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낙태는 여성의 권리” 주장하는 산부인과 의사들

 ”눈물 뚝뚝 흘리면 낙태 거절 못한다”
“낙태는 여성의 권리” 주장하는 산부인과 의사들

10.02.09 14:49 ㅣ최종 업데이트 10.02.09 14:49  권박효원 (10zzung)  

“아무래도 자궁 건강에 좋지 않기 때문에 되도록 아기 낳으라고 설득한다. 결혼하지 않은 경우엔 ‘아무리 부모가 반대해도 주변에서 도와줄 수 있지 않냐, 요즘 세상에 밥 굶진 않는다’고도 말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눈물 뚝뚝 흘리면서 낙태수술 해달라고 하면 차마 거절하지 못한다.”

산부인과 의사 A씨는 “병원 수지 타산을 떠나서 임신 중절을 원하는 여성이 많은 것이 현실”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의사들이 ‘낙태 합법화’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뉘지만 프로라이프 의사회에 대해서는 ‘너무 심했다’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아예 이번 기회에 낙태를 합법화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석중 분당 연세필 산부인과 원장은 동료 의사들과 함께 모자보건법 개정을 요구하는 공동 활동도 추진할 생각이다.

그는 “현대 민주문명사회들은 초기 임신에 대한 여성의 선택권을 보장한다”면서 “국가마다 다르지만 적어도 12주까지의 낙태는 여성에게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장에서 환자들을 만나보면 태아에 심장기형이 있거나 기형아라서 낙태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아이들을 우리 사회가 충분히 수용하고 있냐”고 반박했다.

30만원 때문에 낙태?… “전면 금지하면 더 비싸질 것”

지금 의료계의 가장 뜨거운 감자는 ‘낙태’다. 지난해부터 낙태근절운동을 펼치던 프로라이프 의사회는 결국 지난 3일 산부인과 병원 세 곳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에 대해 고경심 메이 산부인과 원장은 “최근에 낙태를 안 하거나 해도 ‘쉬쉬’ 하는 의사들이 늘어났다”면서 “그러나 이런 식으로 하면 결국 국민들에겐 의사들끼리 싸우는 것처럼 보인다, 낙태에 대해 사회적 공론화를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석중 원장 역시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여성의 낙태권을 침해한다면 지각없는 행동이다,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여성의 ‘라이프’는 배제하는 것이 진정한 ‘프로라이프’냐”고 반박했다.

프로라이프 의사회는 병원 수입을 위해 낙태수술을 선호하는 의사들의 사례를 강조하면서 ‘자정’을 외치고 있다. 또한 자궁천공·골반염·우울증 등 다양한 후유증을 들어 “낙태가 여성의 건강권을 위협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산부인과 의사들에 따르면, 의료보험에 해당되는 일반적인 진료는 대개 만원(환자 본인분담금 3000원)이지만 낙태수술은 30만원이다.

물론 횟수나 시간·위험성·기술 등을 종합할 때 일반 진료와 낙태수술을 똑같이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저출산 시대에 따라 분만은 꾸준히 줄어들었다. 게다가 산부인과에 대한 여성들의 정서적 거리감도 아직 크다. 웬만한 통증이나 생리불순은 그냥 넘기고 1년에 한번 받는 자궁경부암 검진도 거르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병원에 따라서 낙태가 주요 수입원인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의사 A씨는 “수술비가 3만원 정도 한다고 하면 종교적 신념 때문에 안하는 병원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의사들은 “오히려 낙태가 합법화되고 의료보험 혜택까지 받게 된다면 수술비가 내려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무리하게 낙태를 권하는 병원도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금의 수술비는 낙태가 불법인 의료현실에서 수요와 공급이 만나 형성됐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낙태 전면금지로는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물론 건강권마저 심각하게 해치게 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낙태가 비싸지고 음성화되면 여성 건강에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전망이다.

출산장려+낙태근절? “치명적 결과 낳을 것”
  
특히 낙태근절운동이 정부의 출산장려정책과 시기상 맞물린다는 점에서 의사들의 걱정은 더 컸다.

일단 프로라이프 의사회는 “저출산 문제를 낙태금지로 풀어선 안 된다”고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말 청와대 미래기획위원회 저출산 대응전략회의에 참여해 낙태 해결을 촉구하기도 했다.

게다가 이미 70년대 한국은 인구정책 수단으로 낙태수술을 활용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임신 초기에 자궁내 착상부위를 흡입하는 ‘월경조절술’을 피임법으로 널리 권장한 것이다. 인구를 억제하려 했다는 점에서는 지금과 정반대지만, 여성의 몸을 인구통제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점이 유사하다.

우석균 실장은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낙태근절운동과 현 정부의 출산장려정책이 만나면 정말 재앙적 결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산부인과 의사 A씨는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순수한 취지로 일하는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 보수적인 정부 정책에 이용되고 있다”면서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그러면 낙태 단속을 포함한 정부의 정책이 저출산 문제에 도움이 되긴 하는 것일까. 산부인과 의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정말 출산이 늘어나면 의사 입장에선 얼마나 좋겠냐, 그러나 정부가 뭘 한다는 느낌을 못 받는다”고 잘라 말했다.

산부인과 의사 A씨는 “비혼 여성이나 다양한 형태의 커플은 배제하면서 결혼해서 아기를 낳는 것을 여성의 의무로 강요하는 가족중심주의가 가장 큰 문제”라면서 “출산을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여성들에게 ‘아이 낳는 게 애국’이라고 주장해봤자 먹히겠냐”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