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진보 ‘100년숙원’ 실현…중산층 반발 ‘정치부담’
[미국 의보개혁안 통과] 역사적 의미와 한계
3200만명 추가혜택 ‘국민95%’ 보험대상
저소득층 수혜불구 공공보험 제외 ‘한계’
권태호 기자
» 역사적인 의료보험법안 통과를 위해 한 표가 아쉬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21일 밤 표결 직전까지 램 이매뉴얼 비서실장 방에서 참모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민주당 반대의원들을 설득하는 전화통화를 계속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21일(현지시각)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1세기에 걸친 미국 진보 진영의 숙원인 ‘전국민 의료보험’을 실현한 영웅이 됐다. 역사가들은 이번 의보개혁을 1935년 사회보장제 시행, 1965년 메디케어 도입 및 1950~1960년대 민권법 관련 입법과 같은 반열로 평가한다. 그러나 오바마는 ‘일요일 밤의 승리’를 즐길 겨를도 없이, 의보개혁안 통과를 위해 떠안은 정치적 리스크라는 또 하나의 큰 산을 넘어야 한다.
미국 의료보험 개혁 100년 역사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1912년 전 국민 의료보험을 공약했다가 낙선한 이후, 패배의 연속이었다. 1934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사회보장제도를 구축하면서 전국민 의료보험을 포함시키려 했으나, 미국 의학협회의 반대가 심하자 사회보장제도를 지키기 위해 이를 철회했다. 이후에도 해리 트루먼, 존 에프 케네디, 지미 카터, 빌 클린턴 등 1940~90년대까지 주로 민주당 소속 대통령들이 끊임없이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대부분 재선 실패, 암살, 중간선거 참패, 탄핵 등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지난 100년간 1965년 린든 존슨 대통령이 고령자 의료보험인 메디케어와 저소득층 무상의료인 메디케이드 제도를 도입해 오늘날 미국 사회의료보장제의 근간을 마련한 게 유일한 성과였다.
오바마의 의료개혁안은 전국민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다는 상징성이 크다. 현재 5400만명 수준인 무보험자 중 3200만명이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고, 이중 4인 가족 기준 연소득 2만9327달러(3334만원) 미만 1600만명은 2014년부터 메디케이드에 가입된다.
그러나 이번 개혁안은 수혜 대상이 저소득층에 집중돼 보험료에 시달리는 중산층의 애로사항을 제대로 수렴하지 못한 한계를 갖고 있다. 애초 공공의료보험인 ‘퍼블릭 옵션’으로 민간보험사와 경쟁을 벌여 보험료를 낮추겠다는 복안이 있었으나, 보수파의 거센 공격과 보험업계의 로비로 무산됐다. 이때문에 중산층 이상은 세금 부담, 보험료 인상, 실업난, 재정적자 확대 등을 떠안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또 50인 이상을 고용하는 사업주들에게 직원들의 의료보험 비용 부담을 안겼는데, 사업주 뿐 아니라 고용불안을 우려하는 노조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하는 모순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이때문에 의보개혁안 통과는 민주당의 11월 중간선거 패배로 귀결될 것이라는 예상이 현재까진 지배적이다. 이미 대통령 지지율은 50%를 밑돌고, ‘티파티’라는 보수층 시민운동까지 나와 국론은 첨예하게 분열됐다. 현재 상·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이 중간선거에서 지면,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장악력은 급격히 훼손될 뿐 아니라, 2012년 재선 가도에도 치명상을 입는다.
<워싱턴 포스트>는 1960년대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 관련 개혁을 이룩한 린든 존슨 전 대통령과 오바마를 비교했다. 당시 존슨 대통령은 정치적 손실 가능성을 무릅쓰고 올바른 일을 추진해 성사시켰다. 그러나 존슨은 68년 재선 출마를 포기했고, 민주당은 이후 워터게이트 사건 여파로 지미 카터가 4년 단임 대통령을 지낸 것을 제외하곤, 1992년 빌 클린턴 이전까지 20여년간 계속 야당으로 지내야 했다. 그러면서도 전문가들은 이번 개혁안의 성공이 가시화돼 민주당의 주장이 옳았다는 것이 판명된다면, 장기적으론 오히려 공화당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하고 있다. 오바마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