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백혈병 근로자 잇단 사망, 삼성은 책임 느껴야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투병해온 근로자가 또 사망했다는 소식이다. 23살 꽃다운 나이의 박지연씨다. 그는 고교를 졸업하기 직전 큰 꿈을 안고 삼성반도체에 입사했지만, 3년도 안돼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고 지금까지 32개월간 투병생활을 해왔다. 이로써 2007년부터 불거진 삼성반도체 백혈병 근로자 문제가 또 다시 사회적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다.
지금까지 백혈병, 림프종 등 조혈계 암이 발병한 삼성반도체 근로자는 약 30명, 이 중 박씨처럼 숨진 사람은 9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처럼 반도체 공장 근로자가 집단적으로 암에 걸린 만큼 산업재해가 아니냐는 의구심이 이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이들이 방사선이나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에 직접 노출되는 작업환경에서 일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박씨가 앓은 급성골수성백혈병은 젊은 사람에게는 인구 10만명당 1~2명이 걸리는 희귀병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백혈병 진단을 받은 근로자들이 근로복지공단에 집단 산업재해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들의 질병과 작업환경 사이에 연관성을 찾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 삼성 측도 이들의 발병은 우연히 개인적으로 일어난 질병이라고 주장한다. 발병한 근로자와 유족들은 기가 찰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숨진 근로자 유족들과 투병 중인 근로자들은 현재 산업재해 인정을 놓고 근로복지공단과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쟁점은 백혈병 발병과 직업 간 관련성 여부다. 현재 두 개의 다른 연구 결과가 나와 논란 중이라고 한다. 공단 측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의뢰한 역학조사에서는 작업장의 발암물질이 인체에 영향을 미칠 수준이 아닌 것으로 나온 반면, 뒤 이어 나온 서울대 산학협력단의 연구는 이를 전면 부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반도체 공장의 백혈병 발병 근로자들의 산업재해 인정 여부는 법정에서 가려질 것이다. 길고도 지루한 과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투병 중인 근로자들에게는 더 불행한 일이 닥칠지 모른다. 삼성은 산업재해 인정 여부와 관계없이 발병 근로자들에 대해 도의적 책임을 지는 자세를 보여주길 바란다. 아울러 우리는 산업재해 입증 책임을 근로자에게 지우고 있는 현행 제도의 불합리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근로자의 발병과 작업환경 간 ‘연관성 없음’을 입증하지 못하면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쪽으로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