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도체산업 그리고 백혈병
http://www.chsc.or.kr/xe/?document_srl=304712010.05.10 16:43:59 50
얼마 전 23세의 여성 노동자가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고 박지연. 그녀는 열일곱 살 되던 해인 2004년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 입사하였다. 그리고 일한 지 3년도 채 안 된 2007년 백혈병 진단을 받고 3년 여 간의 투병 끝에 지난 3월 31일 사망했다. 이로써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에 제보된 삼성반도체 혈액암 노동자 26명 중 10명의 사망자가 확인되었다. 앞으로 이런 죽음의 행렬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까지 고 황유미, 고 황민웅, 고 박지연씨를 포함해 총 5명의 삼성반도체 공장 노동자와 삼성전자 노동자 1명 등 모두 6명의 삼성 노동자가 산재보험 보상 적용 신청을 했다. 그리고 산재보험 적용 여부를 결정하는 근로복지공단은 한국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역학조사를 의뢰해, 지난 2008년 말에 그 결과를 발표하였다. 결과는 하나였다. 이들의 보상 승인 요구는 모두 기각, 불승인되었다.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이 사건은 다양한 측면에서 많은 문제를 우리 사회에 제기하고 있고,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크게 보아 세 가지 영역에서 문제제기가 이루어졌다. 직업성 암에 대한 사회적 보상 문제, 반도체산업 일반의 문제, ‘삼성’의 문제가 그것이다.
먼저 직업성 암에 대한 사회적 보상 체계의 문제점이다. 다양한 문제들이 여기에 포괄된다. 암에 걸린 노동자가 자신의 암이 일 때문이라고 알 수 있게 만드는 체계의 부재, 보상을 요구한 노동자가 사회적 체계 안에서 정당한 보상을 받기까지의 지난하고 험난한 과정, 보상 여부 판단을 위한 조사와 결정 과정의 편파성 등,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암 보상 신청 과정 속에서 수많은 절차적, 내용적 문제점이 드러났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노동자들의 문제제기는 일 때문에 발생한 암, 이른바 ‘직업성 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일반적으로 일 때문에 발생하는 건강 문제에 대한 관심은 산업구조와 생산기술이 변화함에 따라 변천 과정을 밟아왔다. 농어업, 광산업 등 1차 산업 위주의 사회에서는 각종 사고, 진폐증 등 폐질환이 주요 건강 문제다. 중화학공업을 비롯한 제조업과 건설업 위주의 사회에서는 역시 각종 사고와 더불어 그 악영향이 금방 드러나는 유해물질에 의한 중독이 큰 문제다. 그런데 서비스 산업과 고부가가치 제조업 중심의 사회가 되면 근골격계질환, 과로사, 정신질환, 직업성 암, 직업으로 인한 자살 등이 큰 문제가 된다. 한국 사회는 최근 이런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예방대책 마련이나 보상 구조 개편 노력은 미미하다. 그 와중에 삼성반도체 백혈병 문제도 불거진 것이다.
그렇다면 직업성 암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외국에서 이루어진 여러 연구들에 따르면 아주 보수적으로 추계해도 매년 발생하는 암의 2~8%가 직업성 암에 해당된다. 이러한 연구 결과에 근거해 우리나라의 직업성 암 규모를 예측해 보면, 매년 적게는 3238명, 많게는 1만2954명의 직업성 암이 새로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집계되는 직업성 암 통계인 산재보험 보상 통계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직업성 암으로 인정되어 보상되는 예는 1년에 40~60건에 불과하다. 직업성 암에 대한 인지, 보상 신청 및 인정 시스템에 심각한 허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통계다.
이런 통계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은 여러 가지 문제가 구조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먼저 직업성 암은 환자 본인이 인지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직업성 암은 아주 드문 몇 개 암을 제외하고는 일반 암과 증상이나 형태 면에서 차이가 없기 때문에 환자 본인이 일 때문에 암이 생겼다고 의심하기 힘들다. 백혈병은 그나마 매우 드문 암이기 때문에 백혈병에 걸린 환자들이 내가 왜 이런 암에 걸렸을까 생각해볼 여지라도 있지만 위암, 간암, 폐암 등 흔한 암에 걸린 노동자들이 자신의 암을 일과 관련지어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한편, 환자 본인이 직업성 암 여부를 의심해보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평소에 자신의 작업 환경 및 사용 물질의 암 발생 가능성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의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이런 정보를 교육하기는커녕 제시하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노동자들은 자신이 어떤 물질을 쓰는지도, 그 물질이 인체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도 모르고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삼성반도체 노동자들도 그렇게 많은 화학물질을 취급하면서 그 화학물질의 종류나 유해성 등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증언하는 것이 단적인 예다.
의료인의 무관심도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 환자 본인이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의료기관이나 객관적 체계 등을 통하여 직업성 암을 인지하고, 환자에게 보상 신청을 권유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진료 의사들이 직업성 암에 대해 지식이 부족하고, 일반적으로 치료 방법에는 관심이 많지만 환자의 노동 과정이나 질병의 원인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은 까닭이다. 특수건강진단 등 직업성 암 발생 가능성이 높은 노동자에 대한 정기 건강검진 등으로 직업성 암을 조기 발견할 가능성도 낮다. 많은 직업성 암이 잠복기 등의 이유로 퇴직 이후에 발생하기 때문에, 현직에 있을 때 시행하는 건강검진으로는 발견하기 힘들다. 대부분의 암은 유해물질에 노출된 이후 적어도 5년, 길면 40년 이후에 발생한다.
이런 난관을 뚫고 환자 혹은 진료 의사가 직업성 암을 의심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보상을 요구해도 그것이 인정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 우리나라 산업재해보상보험 체계상 노동자의 암이 직업성 암으로 인정받으려면 몇 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과거 일했던 직장에서 ‘발암물질’을 취급했다는 객관적 증거가 있어야 한다. 또 충분한 농도와 시간 동안 발암물질에 노출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암의 종류가 그런 발암물질에 의해 발생한다고 알려진 것이어야 한다. 삼성반도체에서 일한 백혈병 노동자들도 그랬지만, 대부분의 직업성 암 환자들이 이 모든 것을 자신의 힘으로 입증하기란 하늘에서 별 따기다. 일단 과거에 취급한 물질에 대한 정보가 남아있는 경우가 드물다. 남아있더라도 회사가 ‘경영상의 비밀’을 이유로 정보 제공을 거부하면 이를 강제할 수단이 없다. 과거에 취급했던 물질이나 작업과정이 문제이기 때문에, 현재 쓰고 있는 물질이나 작업과정을 조사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삼성반도체의 경우도 역학조사 과정에서 당시 쓰였던 물질에 대한 조사와, 현재 작업 공정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으나, 발암물질이 쓰였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수행한 조사에서 ‘벤젠’이라는 발암물질이 검출된 사실이 국회 국정감사를 통해 공개되었지만, 이에 대한 자세한 자료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회사가 자발적으로 공개하지 않으면 공공기관이 직권으로 조사할 수도 없는 현실이다.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이런 조사와 동시에 특별한 경우에는 ‘집단 역학 조사’를 수행하기도 한다. 이는 비슷한 일에 종사한 노동자들 전체를 조사하여, 이들 중 암 환자가 일반인들보다 더 많이 발생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발생건도 이런 조사가 수행되었다. 삼성반도체뿐 아니라 우리나라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백혈병, 림프종 등 흔히 ‘혈액암’으로 불려지는 암의 발생이 많은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여성 노동자의 경우 림프종 발생이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백혈병에 대해서는 증가 경향만 확인되었을 뿐 확정적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문제는 조사 시작부터 예상 가능한 결과였다는 사실이다. 이런 ‘집단적’ 역학 조사로 암 발생 원인을 밝히는 작업은 쉽지 않다. 집단적 역학 조사라는 조사 방법이 가지고 있는 한계 탓이다. 흔하게 발생하는 질환이거나, 조사 대상 집단이 매우 많거나, 유해물질에 노출된 뒤 많은 시간이 경과한 경우 등이 아니면 그 관련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방법론적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조사 결과가 주는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다. 이 결과에 근거해 반도체산업에서 일한 것과 백혈병 발생은 관련이 없다고 결론내릴 수는 없다.
두 번째 문제제기는 반도체산업의 유해성에 대한 것이다. 그간 반도체산업은 이른바 ‘클린 산업’으로 불리며 환경오염도 덜 하고, 노동자 건강에도 안전한 산업인 것처럼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지’일 뿐이다. 반도체산업은 반도체 원료를 구하는 과정부터 반도체 완제품을 생산하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환경과 노동자에게 악영향을 끼친다. 반도체 원료가 되는 광물을 생산하기 위해 희생되는 제3세계 광산 노동자에 대한 책임까지 짊어지라는 요구는 억지라는 반도체산업 관계자들의 주장은 넘어간다고 치자. 하지만 반도체 생산과정에서 쓰는 많은 화학물질로 인해 반도체산업 노동자들에게 암뿐 아니라, 여성의 생식기계 건강 이상, 피부 질환, 신경계 이상 등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반도체산업이 흥했던 나라들의 공장에서는 예외 없이 이런 보고가 나오고 있다. 미국의 IBM 공장, 영국의 반도체 공장, 대만의 반도체 공장 등에서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다. 이 대열에 한국의 반도체 공장도 낀 것이다. 반도체산업을 포함한 전자산업의 폐기물 덤핑 문제도 주요 이슈 중 하나다. 전자산업 기업들은 반도체 기판 등 각종 유해물질이 포함된 폐기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채, 제3세계에 버리거나 재처리를 맡겨버림으로써 환경 피해와 더불어 제3세계 노동자들에게 막대한 건강 피해를 입히고 있다.
세 번째 문제제기의 영역은 ‘삼성’에 대한 것이다. ‘삼성’의 잘못된 경영 행태로 인한 문제는 여러 가지다. 이러한 상황에서 삼성반도체에서 일했던 수십 명의 노동자가 백혈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는 사실은 삼성 비판의 도화선이 되었다. 백혈병 피해자들이 증언하는 삼성반도체 공장 안의 문제는 과거의 일로 그냥 덮어버릴 수 없는 것들이다. 우리나라 수위의 기업이, 그리고 매년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기업의 공장이 기본적인 노동자 건강 예방대책조차 지키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노를 넘어 허탈함을 느끼게 한다. 삼성조차 이럴진대 우리나라 다른 기업은 어떠하겠는가?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책임져야 할 사업주의 의무, 자신이 어떤 노동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가를 알 노동자의 권리 등이 철저히 무시된 상태에서 삼성의 이윤이 창출되었던 것이다. 이 또한 무노조 경영의 폐해라고 지적하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삼성에 노동조합만 있었더라도…”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히는 피해자 및 유족들의 한은 근거 없는 응어리짐이 아니다. 많은 관련 연구가 노동조합이 있는 기업 노동자가 좀 더 건강하고 안전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와 유족들은 우리 사회에 많은 문제를 던지고 그에 대한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문제제기가 다차원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그만큼 문제의 골이 깊고 넓다는 것을 의미한다. 삼성은, 반도체 기업은 그리고 우리 사회는 피해자와 유족들의 한 서린 요구와 외침에 성실히 답할 의무가 있다.
이상윤(건강과대안 상임연구원,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