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는 예고편…’명박본색’은 6월부터다”
[우석균 칼럼] 한나라당의 수상한 건강관리서비스법
기사입력 2010-05-28 오후 4:25:47
천안함 침몰이나, 촛불을 반성하라는 대통령 말씀 등으로 어수선한 사이 법안 하나가 국회에 상정되었다. 변웅전 의원이 대표 발의한 ‘건강관리서비스법(안)’이 바로 그 법안이다. 우리가 이 법안에 대해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명박 정부가 지방선거 후 추진하려는 의료 민영화 정책이 무엇인지를 매우 잘 보여주고 있는 법안이기 때문이다.
건강관리서비스법은 지난 17일 변웅전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을 대표로 11명의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이다. 하지만 사실 그 내용은 올해 3월 이명박 정부가 발표한 것과 똑같다. 정부가 직접 발의하면 법안 공청회 등을 거쳐야 하고, 지난 의료법 개정안 때와 마찬가지로 국민들의 반대에 부딪칠 것을 우려해 아예 정부가 법을 만들어 주고 의원 이름으로 발의 형태를 취한 것이다.
이번 건강관리서비스법을 의원 발의한 국회의원은 한나라당, 선진한국당, 미래희망연대의 11명 국회의원이다. 이들은 의료 민영화 법안이자 건강에 위험하기까지 한 법안을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목전에 두고 의원 발의할 정도로 무지하든지 아니면 국민을 아예 무시하겠다고 작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 법안은 내가 지금까지 본 의료 민영화 법안 중 가장 황당하고 노골적이다. 한마디로 이번 건강관리서비스법은 치료 행위를 제외한 모든 의료 행위를 국민건강보험에서 제외하는 법안이다. 혈압을 재고 당뇨에 대한 식이요법 등의 건강 상담을 받는 것은 이제까지 당연히 국민건강보험 적용 대상이었다. 그런데 이 법안에 의하면 이러한 건강 관리 서비스를 국민건강보험에서 제외한다. 즉 “건강에 대한 정보 제공, 교육, 상담, 점검 및 관찰” 등을 ‘건강 관리 서비스’로 재규정하고 이를 국민건강보험 항목에서 제외하고 가격을 자유화하겠다는 것이다.
대다수 정상적인 선진국, 즉 미국을 제외한 선진국은 이러한 건강 관리 서비스를 국민건강보험이나 국가 의료 체계를 통해 정부가 보장한다. 예를 들어 생일날 ‘고혈압 약 잘 챙겨 드십니까?’ 이런 카드를 보내는 정도는 기본이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대상으로 건강 관리, 건강 검진, 교육, 상담 등도 이루어진다. 국민건강보험의 적용을 받는 당연한 국민의 권리인 셈이다.
우리도 당연히 이런 방향으로 가야한다. 수명이 늘어나면 ‘치료’로 끝날 급성 질환보다 ‘관리’ 해야 할 만성 질환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은 치료비조차 다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이번 법안으로 건강 관리 분야로 보장성을 확대하기는커녕 그나마 보장하던 건강 상담, 검진, 심지어 혈압 측정과 같은 의료 행위조차 국민건강보험 적용에서 아예 배제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 적용 범위를 대폭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에서 이런 서비스가 제외되면 그 다음에는 여러 곳에서 이를 이용해 돈 버는 일만 남았다. 물론 그 돈은 서민의 주머니에서 나간다. 국민건강보험에서 제외된 서비스는 가격이 ‘자율화’ 된다. 병원들이 현재 국민건강보험으로 보장되는 의료 행위인 상담이나 검사 결과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고 연계된 건강 관리 회사에서 받으라고 하면 어쩔 것인가? 의료비 상승은 불을 보듯 뻔하지만, 이 의료비 상승이 곧 새로운 성장 동력 산업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명박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이다.
또 건강관리서비스법에 의하면 민영 보험회사를 포함한 사기업이 개인의 가장 민감한 개인 질병 정보를 관리할 수 있게 된다. 건강관리서비스법은 개인 질병 정보를 민간 영리기업과 민영 보험회사에 유출하는 법안이다. 이 법안에 의하면 엄격한 개설 기준도 없는 민간 영리기업에서 개인 질병 정보를 포괄적으로 다루게 된다. 개인의 가장 민감한 질병 정보에 대한 영리적 이용이나 악의적 활용을 막을 도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지금 민영 보험회사들이 가장 눈독을 들이는 것이 바로 이 개인 질병 정보다. 개인 질병 정보를 알면 삼성생명과 같은 재벌 민영 보험회사가 영화 <식코>에 나온 대로 ’5년 전에 무좀 걸렸다’는 이유로 이번에 걸린 암에 대해서는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겠다는 식처럼 보험금 지급 거절이나 보험 가입에 있어 가족력이 있거나 병력이 있는 환자들은 아예 가입 차단할 수 있게 된다.
이번에 건강 관리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준비할 기업 집단도 바로 이런 민영 보험회사들이다. 재벌 보험회사가 보험 상품에 건강 관리 서비스를 포함시켜 또 다른 상품을 팔거나 건강 관리 서비스 기업을 직간접적으로 운영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영리 기업인 건강 관리 서비스 기업이 개인 질병 정보를 관리하는 것 자체도 큰 문제다. ‘결혼 정보 회사’의 필수 서비스 중의 하나가 ‘그 집안에 정신질환자가 있는지’, 배우자 될 사람이 ‘성병에 걸린 적이 있는지’가 될 수도 있다. (그 외에 이 법안에는 유헬스 관련 규정도 있는데 이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다루기로 하자.)
건강관리서비스 법안만이 아니다. 이 건강관리서비스 법안이 지방선거 전에 도둑질하듯 슬그머니 국회에 상정된 것은 지방선거 후, 이명박 정부가 곧바로 전면적인 의료 민영화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신호다. 정부는 지방선거 후에 전국적으로 전면적으로 영리 의료법인 허용을 하겠다고 한다. 촛불이 무서워서 의료 민영화는 없다던 이명박 정부가 이제 아예 대놓고 나서서 이러한 정책 의지를 여러 경로를 통해 밝히고 있다. 그 중 하나의 보도만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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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춤했던 영리 병원 ‘지방선거 후 본격 추진’
여권 핵심 관계자는 “영리 의료법인 도입을 오는 6월 지방선거 이후 본격 추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 집권 중반기를 넘어선 현 시점에서 정권 출범 당시부터 추진해왔던 영리 병원 도입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 여권 관계자도 “영리 병원에 대한 이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하다”고 밝혔다. (<노컷뉴스>, 2010년 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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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자본이 움직이고 있다. 지난 5월 19일 머니투데이(MTN) 방송은 “의료 민영화 현실화되나. 수혜주는”이라는 내용이 다음과 같이 방송되었다. 그 첫머리가 이렇다. “우리들이 모르고 있는 사이 의료 민영화의 격변의 시기에 놓여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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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들은 체감하지 못하고 있지만 국내 의료 산업은 ‘의료 산업 민영화’를 두고 격변의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신지원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 ‘의료 산업 민영화는 의료 부문에 대한 민간 자본의 투자 유입과 함께 ‘MSO 사업자’(병원 경영 기업) 등장에 따른 헬스케어 산업 지형 변화를 초래할 전망’”
“정효진 한화증권 애널리스트 ‘국내 병원 산업(은) 투자 개방형 의료법인(영리 의료법인) 및 의료채권법 도입 등 끊임없이 의료 서비스의 선진화 방안이 검토되고 있어 국내 의료 분야의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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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5월 18일 미래에셋증권이 펴낸 의료 시장 지각 변동을 예고한 보고서. ⓒ프레시안
정부가 의원 발의 형태건 직접 발의한 형태건 지방선거 이후 국회에서 처리할 예정인 법안은 이번 건강관리서비스법 말고도 촛불로 막혔던 조항을 거의 다 집어넣은 의료법 개정안, 비영리병원의 채권 조달을 가능케 하는 병원채권조달법, 제주도에 국내 영리 병원의 개설을 허용하는 제주도특별자치법 개정안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것만으로도 전국적인 의료 민영화의 본격적 추진이 분명한데 아예 전국적 영리병원 허용까지도 전면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한다.
촛불에게 반성을 하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은 그냥 반성만 하라는 말이 아니다. 촛불로 추진이 막혔던 이명박 정부의 정책들, 언론 장악, 공기업 민영화, 교육 ‘개혁’(국립대 법인화나 대학 등록금 완전 자율화 등), 4대강으로 이름만 바뀐 대운하, 그리고 의료 민영화를 이제는 더 이상 앞뒤 가릴 것 없이 전면적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다시 말해 대통령에게 이제 촛불은 정치적 고려 대상에서 제외되었고 이제 이명박 정부의 원래 정책이었던, 여러 시장 만능주의적이고 비민주적 정책을 의료 민영화 정책과 더불어 전면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선언이다. 지방선거 후 우리에게 닥칠 모습이다.
그래서 말한다. 지방선거는 이미 결론이 나있다고, 희망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기억해 보자. 우리가 한 목소리로 외쳤던 이 구호를. “촛불들아 모여라 될 때까지 모여라!” 촛불에게 반성을 요구한 정권이 우리가 ‘광장’으로 모이는 것을 물리력으로 가로막고 있는 지금, 우리는 투표장으로라도 모여야 한다.
나도 촛불의 한사람으로 이번 지방선거에 참여할 것이다. 나는 진보적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 그리고 진보적 후보가 없다면 심지어 내가 지금까지 지지하지 않았던 후보일지라도 이 정부의 역주행 정책에 반대표의 의미로 그에게 표를 주기위해 투표를 ‘꼭’ 하려고 한다. 지방선거 이후에도 나는 한국 사회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