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먼저 보험료 자진 인상? 그건 좀…
건보재정 증가해도 보장성 불변 우려… 의료민영화 반대와 함께 가야
10.06.23 11:49 ㅣ최종 업데이트 10.06.23 11:49 이은경 (sesayon)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준)(이하 시민회의)는 국민건강보험료를 소폭 올려 병원비의 대부분을 해결하자는 취지로, 보험료를 현재보다 1인당 월 평균 1만1000원을 더 올려야 한다는 정책을 주장하고 나왔다.
7월 14일 발족을 목표로 발기인을 모으고 있는 ‘시민회의’의 주장은 보편적 복지국가로 나가기 위해서는 사회연대정신에 입각해서 국민들이 먼저 보험료를 인상하는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은 국민의 95%가 내는 돈보다 더 많은 혜택을 받는 구조이기 때문에 건강보험을 인상하게 되면 국가와 기업, 부유층의 부담은 자연스럽게 증가한다. 따라서 국민이 적극적으로 보험료를 더 내자는 운동을 하는 것이 사회연대의식을 확산 시키고 보편적 복지국가로 나가는 길이 된다는 주장이다.
물론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강화되어야 하고 이를 위한 재정마련은 현 의료 시스템을 개혁하는 데 핵심적인 사안이다. 하지만 재정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국민이 먼저 보험료를 인상하자고 제안하는 방식이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판단이다.
71%까지 건강보험 규모 확대… 환영할 만하지만
‘시민회의’의 주장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시민회의’는 OECD 국가들의 의료비 평균 공적지출 수준인 71%까지 건강보험 규모를 확대하자고 주장한다. 현재 전체 의료비의 55% 수준인 건강보험 재정 규모를 71%까지 올리기 위해서는 16% 포인트가 증가돼야 한다. OECD 국가들은 대부분 90%에 달하는 보장률을 보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건강보험 규모를 16% 포인트 올리면 선진국 수준의 의료보장을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에 필요한 예산이 12조 5천억 원인데 그 중에서 직장 가입자가 3조 6천억 원, 지역가입자가 2조 6천억 원을 더 내면 정부와 기업부담이 자연스럽게 6조 3천억 원 증가해 전체 의료비 중에서 71%를 공적자금으로 충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현 건강보험의 구조가 직장보험료 절반이 기업이 내고 있고 전체 보험료의 20%를 정부가 부담하고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전국민건강보험 제도를 갖고 있지만 보장성이 낮아 민간의료보험 가입이 활성화되는 등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건강보험 하나로 모든 의료비를 해결하자’는 시민회의의 주장은 매우 시의적절하며 광범위한 사회운동으로 확산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건강보험 하나로 모든 의료비를 해결하기 위한 조건들을 검토하고 보다 적합한 정책으로 만들어 가는 전체 진보세력의 노력이 필요하다.
보험료 인상, 병원과 보험회사의 먹잇감이 되지 않기 위해
먼저 검토해 봐야 할 부분은 건강보험료 인상이 보장성 강화로 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5년 동안 건강보험재정은 2003년에 16.8조 원에서 6년 만인 2009년에 거의 2배에 이르는 약 31.3조 원으로 증가한 반면 보장성은 55~60% 사이에서 큰 변화가 없었다.
한마디로 증가한 건강보험료가 보장성 확대로 쓰이기 보다는 의료 이용 증가로 인한 자연증가분과 의료기관의 이윤으로 돌아간 것이다. 국민이 직접 낸 보험료율도 2009년 현재 지난 10년간 연평균 15.57%이었고 지난 5년 동안은 증가율이 둔화되어 평균 약 12.18% 수준이었으나 재정악화로 인한 큰 폭의 보험료 인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반면 보장성은 건강보험 통합 이후 10% 정도 증가한 후 정체상태에 빠져있다. 특히 몇 년의 경험을 보면 인상된 보험료는 대부분 대형병원으로 흡수되고 있고 비급여가 같은 속도로 증가하고 있어 건강보험 규모의 확대가 보장성 강화로 바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우리나라의 의료시스템이 지나치게 민간주도적이고 효율적인 공급자(의료기관과 의료인)에 대한 규제책이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질환은 보험급여가 되고 있지만 병의원마다 필수적으로 강요하는 비급여 때문에 비싼 의료비를 지불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료공급구조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보험규모만 확대할 경우에 의료비의 폭등과 더불어 오히려 보장성은 악화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는 미국의 역사적 경험에서 잘 드러난다. 미국은 1960년대에 일정 계층에 대한 공적 보험을 도입함과 동시에 의료산업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진행했다. 하지만 공급자에 대한 규제는 도입하지 못했고 오히려 민간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는 시장적 방식을 선택했다.
그 결과 공적 보험을 도입한 지 10년도 되지 않아 정부의 재정지출은 두 배 가까이 늘어났고 재정압박으로 인한 공적 보험체계의 취약성은 다시 민간 보험시장을 활성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고도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규모가 가장 크며 건강 수준은 가장 떨어지는 미국의료의 심각한 모순이 오히려 공적 보험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시민회의’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공급자를 의료개혁에 동참하게 하기 위해서도 다른 부분의 수가를 올려주는 방식 등 재정을 통한 유인책을 선택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미국이 의료개혁의 시기에 선택했던 방식이고 그 결과 수년 사이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의료비가 폭등해 버렸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의료공급을 민간이 주도하고 있고 의료공급자에 대한 규제방안이 거의 없는 조건에서 재정만 확대할 경우 나타나게 될 미래는 심각할 수 있다. 따라서 건강보험 하나로 모든 의료비를 해결하기 위한 선결조건은 ‘의료공급시스템의 개혁’이 되어야 한다. 현재의 민간중심 의료공급체계와 비급여 진료 등에 대한 어떠한 규제도 갖지 못한 조건에서 건강보험 재정만 확충하는 것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연대 전략, 먼저 정부와 기업의 책임을 말해야 한다
두번째로 문제가 되는 것은 정부와 기업의 부담비율을 확대시킬 수 있는 방안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앞서도 설명했듯이 현 건강보험의 구조에서는 정부의 책임이 20%에 불과하다. 그나마 세금이 아닌 담배에 부과되는 건강증진기금이 6%를 책임지고 있어서 정부의 부담은 14%뿐이다.
정부 산하 연구원인 보건사회연구원에서 나온 보수적인 연구결과에서도 현 8:2 구도를 깨지 않고서는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고 보고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건강보험 재정안정화의 방향은 지속적으로 건강보험료를 인상하는 것에 맞추어져 왔고 정부는 약속한 20%도 지출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의료개혁운동집단에서는 지속적으로 정부 부담을 적어도 30% 수준으로는 인상해야 함을 주장해왔다. 이번 시민회의의 제안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은 국민들이 먼저 인상을 요구하자는 점에 있다. 만일 정부와 기업의 부담비율이 현재보다 확대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협상 테이블에서 국민들의 보험료 역시 일정 수준 인상하는 것을 검토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 부담증가에 대한 어떤 국민적 압박도 없는 상황에서 국민부담을 늘리겠다고만 하면 정부에서 알아서 8:2 구도를 개선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명확하다.
‘시민회의’의 주장에 대해 보수언론이 기업과 정부의 부담이 증가하기 때문에 문제있는 제안이라고 공격하고 있는 것은 정부와 기업의 책임을 에둘러 가면서 국민들의 책임만을 강조하고 의료이용에 제한을 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고자 하는 의도에 이용되게 될 가능성마저 있을 수 있다.
이는 시민회의 측이 주장하고 있는 ‘사회연대전략’에 대한 고민이 더욱 심화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원래 ‘사회연대전략’이란 북유럽 국가에서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강력한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의 힘에 기초해 노동자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애쓰고, 경영자는 해고를 자제하며 정부는 복지에 힘을 쏟는 노사정 타협 체제가 구축된 것을 의미한다.
물론 사회연대의 구체적인 표현은 나라마다 역사적 배경, 상호간의 역학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당연하지만 사회연대가 국민간의 연대만이 아닌 것은 명확하다. 강력한 국민들의 요구에 근거해 정부와 기업의 양보를 이끌어내고 그 과정에서 국민과 노동자들도 어느 정도의 양보에 합의하는 과정을 고민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연대의식을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야 할 대상은 국민이 아니라 국가와 기업이 되어야 한다. ‘시민회의’의 건강보험으로 모든 의료비를 해결하자는 주장은 국민들 사이에 정부와 기업의 부담비율을 높이고 법인세 등 증세를 통해 사회복지영역에 투자해야 함을 주장하는 운동으로 확산되어야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고용, 산재 보험개혁에도 국민부담 높이자고 해야 하나?
사회연대 전략에서 더 중요한 문제는 현재의 경제상황과 여타 다른 부분의 복지상황이다. 경제위기 이후 정부에서는 출구전략을 이야기하고 있고 기업들은 개선된 수출환경 덕분에 제조업의 활성화와 더불어 해외에서의 시장을 확대하면서 오히려 경제위기 전보다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은 모두 세금과 공적자금, 국민들의 부담으로 전가되었다.
재정적자는 급속도로 증가하여 세계에서 가장 빠른 증가속도를 나타내고 있고 이는 각종 복지예산의 축소로 나타나고 있다. 가계부채는 유래가 없을 정도로 증가하고 있고 각종 사회정책에서 배제된 비정규직과 청년, 자영업자들은 사회의 밑바닥으로 지속적으로 밀려나고 있다. 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과 정부의 책임을 높이는 것과 경제시스템을 복지와 노동자의 생산성에 기반한 복지국가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문제이다.
현 시점에서 국민들에게 제안하고 함께 해야 하는 운동의 방향은 신자유주의 경제운영의 실패와 그로 인한 양극화에 대한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국민들의 희생에 따른 경제적 성과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과 국민들의 요구 수준에서 나와야 한다. ‘시민회의’의 안이 매력적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이러한 문제점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제공한다. 현재 우리나라 복지국가의 건설이 어떤 원칙과 방향에 의해 진행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건강보험은 10년 전 직장과 지역의료보험의 통합을 이루어내면서 전국민을 포함하는 보편적 복지수준을 달성하였고 다른 연금이나 복지시스템과 비교해 봤을 때 정부와 기업부담이 상대적으로 높다.
반면 다른 사회보험영역과 복지부문의 수준은 매우 형편없다. 따라서 실업보험이나 연금, 산재보험 등 다른 사회보험과 기타 다른 복지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하는가 하는 문제가 현 복지제도 개선의 핵심 과제가 되어야 한다. 또한 산업구조와 인구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시점에 처한 상황에서 복지국가로의 근본적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 따라서 더더욱 중요한 점은 어떤 복지국가를 건설해야 하는 지에 대한 사회적 논쟁과 합의이다. “어떤 복지든 의미있다”는 것이 아니라 복지국가의 내용과 방향을 초기에 제대로 잡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건강보험제도가 어떤 방향으로 개선되는가 하는 점은 더욱 중요하다. 만일 건강보험을 개혁하는 방향이 국민들의 책임을 우선적으로 강조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서비스 공급구조의 공공성보다는 민간에 의존하는 방식이 된다면 이는 우리나라 전체 복지국가 건설의 방향이 유사하게 갈 가능성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복지 수혜자의 책임과 공동부담을 강조하고 서비스 공급와 관리 시스템을 민간이 주도하는 이러한 방식은 미국식 자유주의적 복지국가의 대표적 방식이다. 앞서 복지국가를 건설한 나라들의 예를 보더라도 강력한 국민들의 지지에 기반하여 국가와 기업의 책임을 늘리면서 국민 모두를 포함하는 보편적 복지국가를 건설한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들이 가장 안정적이면서도 경제적으로도 효율적인 사회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시민회의의 건강보험 개선운동은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고 보편주의적 원칙을 견지하며 서비스 공급의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의 모색으로 이어져야 한다. 수혜자의 책임만을 우선적으로 강조하는 방식은 보편적이고 역동적인 복지국가의 목표에 맞지 않는 전략인 것이다.
공공성 강화, 민영화 반대 운동과 함께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시민회의의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에는 이 시기 의료운동의 핵심과제인 의료민영화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 대기업을 비롯한 의료자본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의료산업의 상업화에 사활을 걸고 있으며 의료민영화는 이명박 정부 2기의 핵심 추진 전략이다. 그를 위해 건강관리서비스 법안, U-HEALTH 법안, 의료법 개정 등 줄줄이 기다리고 있는 의료민영화 법안 처리, 의료민영화에 적극적인 인사들의 전진배치 등의 사전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다.
반면 국민들의 의료민영화에 대한 거부감은 매우 높은 수준이어서 만약 정부에서 국민의 동의없이 민영화 정책을 추진한다면 쇠고기 개방보다 더 큰 사회적 파급력을 지닌 사안이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지금은 각종 의료민영화 법안에 대한 대응과 시도에 맞서 어떻게 대안을 준비하고 국민들과 함께 할 운동을 만들어 낼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에서 핵심적인 과제는 시장중심의 의료시스템으로 갈 것인지, 공적 규제와 보장성의 확대라는 의료공공성의 회복으로 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많은 영역에서 의료상업화가 진행되었지만 전국민건강보험이라는 훌륭한 제도 덕분에 의료공공성이 상당 수준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의료민영화에 대한 국민적 반대를 통해 의료민영화로 대표되는 의료의 상업화 현상을 극복하고 건강보험강화와 의료공급체계의 공공성 확보를 통한 의료공공성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획득하는 운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 역시 이러한 큰 틀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정리해 보면 건강보험 하나로 모든 의료비를 해결하자는 운동은 매우 중요하다. 민간의료보험에 내는 국민들의 보험비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고 민간보험회사들은 민간의료보험을 건강보험을 대체할 수단으로 만들자고 주장하고 있다.
건강보험이 이대로 필수적 영역을 보험급여화하지 못한다면 갈수록 취약해질 가능성이 높고 의료급여 수준의 보충적 공적보험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건강보험을 강화하고 건강보험으로 대부분의 의료비가 보장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이다. 하지만 필요한 전제조건들이 있다. 영리화된 민간의료공급체계의 공공성과 공적 규제의 확립, 정부와 기업의 책임강화에 대한 국민적 압박, 다른 영역의 사회보험 및 복지시스템의 올바른 구축 방향과 함께 진행되는 의료개혁, 현실적 당면과제인 의료민영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 등이 그것이다.
이는 단순한 전제조건이 아니라 필수적인 내용이다. 이런 것들이 같이 해결되어야지만 보다 보편적이고 역동적인 복지국가 건설이 가능해 질 것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지금은 우리나라가 어떤 복지국가로 가야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논쟁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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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 민이 먼저 보험료 자진 인상? 그건 좀… –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