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 한국 의사의 국제상 수상, 언론에 보도 안된 이유는?

한국 의사의 국제상 수상, 언론에 보도 안된 이유는?
[인터뷰] ‘삼성 백혈병’ 문제제기한 반올림 활동가 공유정옥

기사입력 2010-09-24 오전 9:26:37

2007년 3월 6일, 스물 세 살 여성이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택시기사인 아버지가 그를 태우고 병원으로 달려가던 택시 뒷좌석에서다. 그의 죽음은 단순히 고통의 끝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 입사한 후 불과 2년 만에 병마에 쓰러진 황유미 씨의 죽음에는 많은 물음표가 달려 있었다. 답을 찾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의 탄생이었다. 그 안에는 당시 33살의 젊은 산업의학 전문의가 끼어 있었다.

3년이 흐른 2010년 6월, 이 전문의는 미국 공중보건학회(AHPA)의 ’2010 산업안건보건상(Occupation Health & Safety Awards)’ 국제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공유정옥 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와 반올림은 황 씨의 죽음 이후 비슷한 질환으로 고통 받는 노동자 15명을 더 찾아내 산업재해인정을 신청했고, 100여 명에 가까운 제보를 받고 있는 상태다. 학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반도체 산업의 노동자가 노출되는 작업환경이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활동이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국의 젊은 의사가 국제적인 상을 수상하게 된 일을 보도한 국내 언론은 거의 없었다. 이는 지난 3년 동안 반올림이 걸어왔던 궤적과 비슷하다. 국내 언론의 최대 광고주이자 글로벌 기업인 삼성에 맞서 수십 명에 불과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그들의 활동에 주목하고 중요성을 인식한 이들은 한국 밖에 있었던 셈이다.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그를 만났다. <편집자>

▲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의 공유정옥 전문의 ⓒ프레시안(손문상)

“혼자서 한 일이 아닌데…’진짜 수상자’는 반올림”

프레시안: 이번에 수상한 상에 대해 설명해 달라.

공유정옥: 미국 공중보건학회에서 주는 상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학회 내 26개 분과가 있고, 분과마다 몇 개의 상을 주는데 이번에 받은 상은 산업보건분과에서 수여하는 국제부문 산업안전보건상이다. 다른 4개의 상은 모두 미국인이 받았다. 산업보건학의 대모라 일컫는 앨리스 해밀턴의 이름을 딴 상도 있어서 더 좋아 보이더라(웃음).

프레시안: 공인된 학회에서 주는 만큼 상에 실린 권위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나.

공유정옥: 권위가 있는 지는 잘 모르겠고 개인적으로 뜬금없이 상을 준다고 했으면 기분이 나빴을지도 모른다. 미국 학자들이 모여서 한국 사람한테 상 준다고 하면 좀 그렇지 않겠나. 그런데 역대 수상자를 살펴보니 주로 남미나 아시아 쪽에서 나왔다. 수상 배경을 좀 알아보니 분과 회원으로 활동하는 산업보건 전문가 몇 명이 반올림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우리의 싸움이 중요하다며 노동·인권운동 쪽을 벗어나 좀 더 알릴 필요가 있다고 해서 추천했던 것 같다.

프레시안: 언제 연락을 받았나?

공유정옥: 수상 후보군에 올랐다고 알려온 때가 올해 초였고, 수상이 확정됐다는 통보가 온 것은 6월쯤이었다. 솔직히 그 말을 전해 들었을 때 딱히 기쁘거나 좋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부담스러운 면도 있었다. 처음엔 내가 아니라 반올림 이름으로 선정해달라고 했지만 단체는 수상 대상이 아니라고 하더라. 내가 혼자한 일도 아닌데 좀 이상하게 비춰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남들도 같이 고생했는데 본인 공으로 챙긴다고 할까봐(웃음).

강남 8학군 소녀, 상계동 철거민을 만나다

프레시안: 의사 면허를 가진 활동가는 한국에서 흔치 않은데, 왜 하필 의사가 됐나?

ⓒ프레시안(손문상)
공유정옥: 중학교 때 의대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이유는 아니었고, 대학을 졸업하면 바로 독립을 하고 싶어서였다. 교회를 다니고 있어서 그랬는지 약간 청교도적인 기질이 있었던 것 같다. 여성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자립할 수 있게끔 하는 직업 중에 의사가 눈에 띄었다. 게다가 좋은 일을 하는 직업이기도 하고.

프레시안: : 모범적으로 학창 시절을 보낸 것 같다..

공유정옥: 말썽을 부리진 않았다. 겉으로는(웃음).

프레시안: 그 시절에 노동 이슈에 관심을 둔 적이 있었나?

공유정옥: 전혀 몰랐다. 사립 중학교·고등학교를 나왔는데 거기엔 전교조 선생님도 몇 없어서 학교 밖 이야기를 거의 듣지 못했다. 몇몇 선생님이 조금씩 이야기 해주긴 했지만 크게 관심이 가지 않았었다. 그 당시가 1980년대 후반이었으니 알 법도 했을텐데…. 창피한 얘기지만, 강남 8학군에서 편안한 학창시절을 보낸 것 같다.

프레시안: 대학 시절 무료 진료 활동을 했다. 그게 지금하는 일의 계기가 됐나.

공유정옥: 처음 입학하면 소모임에 들기 마련인데, 무료 진료 활동이라니까 그저 좋은 일이려니 했다. 그런데 첫 모임부터 선배들이 ‘우린 의료 봉사가 아니라 도시 빈민을 지원하는 운동을 하러 가는 거다’라고 하더라(웃음).

당시 상계동 철거민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부자까 지는 아니었지만 내가 살아왔던 삶이 저들보다는 훨씬 편했고, 그런 편한 삶이 소수의 것이었다는 생각. 당시 만났던 한 할머니를 보면서 ‘저 할머니는 나와 무슨 차이가 있어서 저 연세에 폐지를 줍고, 13만 원 정도 했던 생활보조금으로 만날 라면만 끓여먹는 삶을 사는가’, ‘저 분은 자기 집도 없는데, 살아오면서 제대로 한 것도 없는 난 내 방이 있고…’ 이런 걸 느끼게 된 거다.

의약분업 사태가 준 충격…”겉보기와 다른 의사 집단”

프레시안: 진보적인 활동을 했던 의대생들도 졸업하면 대부분 평범한 의사로 살아간다. 혼자서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결심하는데 망설임은 없었나.

공유정옥: 더 행복한 길을 택한 거라고 생각했다. 산업의학을 하는 게 다른 걸 전공하는 것보다 많은 걸 놓치는 일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인턴 기간 때 외과에 진학하고 싶다는 생각은 몇 달 해 봤다. 수술이 너무 좋아서. 그것 말고는 망설인 기억이 없다.

프레시안: 의대를 다니려면 돈도 만만찮게 드는데 ‘본전 생각’은 안 났나.

공유정옥: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에서 학자금을 지원해줬다. 마지막 학기에만 등록금을 내서 큰 부담은 없었다. 학교 다닐 때도 용돈을 마련하려 과외 정도만 했다. 집이 많이 어려웠으면 다시 일으키기 위해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을 거다. 아마 애초에 이런 일 하라고 정해졌던 게 아닐까.

졸업을 앞두고 인턴을 어느 병원에서 할지 고민했다. 학연이나 전근대적인 인간관계가 가장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소중한 20대를 그런 곳에서 치이면서 보내기 싫었다. 그래서 학교병원이 아니라 원자력 병원으로 갔다.

거기서 의약분업 사태를 겪었다. 그때 ‘일반적인 의사’라는 사람들이 사실은 별로 행복해보이지 않다는 걸 알았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른 의사 사회의 닫힌 모습을 많이 봤다.

ⓒ프레시안(손문상)

“기형적인 의사 문화,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들과 섞이기 싫었다”

프레시안: 산업의학 전문의를 선택한 과정이 궁금하다.

공유정옥: 음…가랑비에 옷 젖듯? 기술자가 장인이 되려면 깨우침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2000년 의약분업 사태를 겪으며 지켜본 의사들은 이런 깨우침과 한참 거리가 있었다. 최소한의 인문사회과학 소양도 없는, 그저 돈밖에 모르는 집단 같았다.

나도 그 집단의 일원이었지만 되도록이면 그런 이들과 섞여 살고 싶지 않았다. 임상하면서 환자를 보고 싶단 생각은 한 적이 있지만 그 덫에서 나를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현장에서 활동하던 선배들이 조금씩 변해가는 이유도 20대라는 굉장히 중요한 시기를 그런 집단에서 보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24시간 병원 안에 차단된 채 자신들만의 이상한 조직문화와 인간관계, 다른 직종에 대한 권위의식에 똘똘 뭉쳐 있는데 어떻게 버티겠나.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어떤 일을 해서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생각보다 나를 지키려면 그런 의사들과는 거리를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우리와는 다르게 사는 사람들과 관계 맺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 그래서 자연스럽게 산업의학을 선택했다. 지금도 가끔씩 임상하면서 진보적인 활동을 하는 의사들을 보면 정말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환경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근골격계 질환, 철도 노동자 공황장애…싸움은 진행형”

프레시안: 반올림에 합류하기 전까지는 어떤 활동을 했었나?

ⓒ프레시안(손문상)
공유정옥: 금속 노동자 중심으로 일어났던 근골격계 싸움이 있었다.

근골격계라는 건 내장이나 피부 등을 제외한 모든 조직을 말하는데 힘을 많이 써야 하는 직무, 반복적이고 고정적인 업무, 오래 앉아있는 사무직까지 모두 걸릴 수 있다. 그런 질환을 갖고 있는 노동자들을 만나서 진찰하고, 수십 명씩 산재를 신청해 치료를 요구했다.

회사에는 근골격계 질환 예방을 위해 인원을 충원하고 작업 속도를 늦추라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 다음에 큰 사건이 서울도시철도공사 노동자들이었다.

정말 어려웠다. 유래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싸움 자체가 공황장애나 우울증 등을 일으킨 노동자들이 자살하면서 시작됐기 때문에 분위기도 무거웠다. 노동조합의 상황도 어려웠고 공기업이다 보니 사측의 태도도 훨씬 더 경직돼 있었다. 환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산재는 인정 안 되고.

고통스러웠고, 오래 끌었다. 지금도 당시 만났던 이들 생각이 난다. 당시 환자 모임을 기록한 다이어리를 보고 최근 근황을 물어보면 대부분 건강을 되찾지 못하거나 회사에서 한직에 밀려나 있더라. 7~8년이 지난 일인데도 그렇게 지낸다. 무거운 숙제다.

젊은 노동자의 죽음, 반올림의 탄생

프레시안: 그 뒤에 반올림에 들어 갔다.

공유정옥: 2007년 11월 20일에 반올림 조인식을 가졌다.

프레시안: 처음에 어떻게 제안을 받았나?

공유정옥: 이 사건을 처음 알았던 건 2007년 초다. 당시 황유미 씨가 숨지면서 가족들과 산재 신청을 준비하 던 (반올림의) 장안석 활동가가 조언을 구해왔다. ‘주변에 물어보니 다 직업병은 아니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라고 하기에 ‘직업병일 수도 있겠다’라고 했다. 당시 중론은 암이 불과 2년 만에 생길 리가 없다는 거였다. 나도 잘 몰라서 그렇게만 대답하고 잊고 있었는데 나중에 같이 하면 좋겠다는 제안이 와서 일단 대책위원회를 꾸리는 게 좋겠다고 하고 넘어갔다. 몇 달 지나서 9월경 수원에서 다산인권센터 등을 중심으로 반올림이 꾸려지면서 다시 참여 제안이 왔다.

프레시안: 다른 전문가들이 아니라고 하는데, 직업병일 수 있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었나?

공유정옥: 전부에게 물어본 건 아니었으니까. 다행히도 나중에 보니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던 이들이 몇몇 있었다. 암은 보통 10년, 길게는 20~30년 지나야 생긴다는 게 지금까지 경험적으로 확인된 바다. 그래서 발병 기간이 너무 짧으면 그건 직업병이 아닌 다른 원인에서 오지 않겠냐는 거다.

일 견 타당한 얘기다. 그런데 거꾸로 ’1~2년 만에 암이 생길 수가 없는가’라고 물으면, 그건 모르는 일이다. 통계의 함정이다. 보통 사람의 기대 수명이 77세면 다 그렇게 사는 건 아니지 않나. 그런 여지가 남아 있어 직업병일 가능성이 있겠다고 생각한 정도였다. 그 뒤에 더 많은 피해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아,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 다 젊은 노동자들이었으니까.

“백혈병이 우연? IBM, 삼성. 왜 하필 반도체 공장에서만…”

프레시안: 반올림이 몇 차례에 걸쳐 공개한 산재신청 내용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이 젊은 나이고 입사 당시 특별한 건강상 문제가 없었다. 희귀병과 관련된 특이한 가족력도 없었고 입사 이후 사 측이 실시한 건강검진에서도 별 다른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문제가 불거졌을 때 삼성 측은 수만 명이 근무하는 공장에서 몇 명이 발병했다고 직업병과 관련지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사실들이 삼성의 주장대로 우연의 산물일 수 있나?

공유정옥: 당연히 우연일 가능성을 ‘제로(0)’라고 하진 않는다. 제로에 수렴할 뿐이다. 상식선에서 생각해보자. 당시 같은 라인에서 같은 업무를 맡았던 故 황유미·이숙영씨가 함께 발병한 사례를 우연이라고 치자. 그 공장에서 라인은 각기 달랐지만 엔지니어 팀에 속한 4명 중 3명이 희귀병이 걸린 것도 우연이라고 치자. 그들과 똑같은 일을 했던 미국 IBM 공장에서도 연구원 12명 중 10명이 암에 걸린 것도 우연이라고 치자. 그 중에 4명은 똑같이 뇌종양이 생겼다는 것까지.

그 럼 결론을 ‘참 희한하게도 반도체 공장에서는 이런 우연한 일들이 너무 자주 일어나는 구나’라고 내고 끝내야 하나? 우연일 수도 있는데 그런 우연한 사건들이 겹치기 시작한다면 우연이 아니라 뭔가가 있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겠나? 그걸 규명해야 하는 이들이 예컨대 배운 사람들, 정부에서 세금으로 월급받으며 일하는 사람들이다. 그게 제대로 풀리지 않아 갑갑한 거다.

“‘몇만 명 중 수십 명’이 아니라 ‘몇천 명 중 수십 명’이다”

여기까진 상식적 판단이고 삼성의 주장에 대해 말해보자면, 우리가 계속 얘기하는 대상은 삼성에 일하는 수만 명의 노동자가 아니다. 최근 증축된 신규라인이 아닌, 초기 라인을 거쳐 간 이들이 정확히 몇 명인지를 알고 싶은 거다. 사무직원을 빼면 몇만 명 중에 수십 명이 아닌 몇 천 명 중의 수십 명으로 범위가 좁혀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숫자를 계속 추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측에다 ‘다 까고 얘기하자’고 했다. 예컨대 3라인이면 지난 10년간 거기에 드나든 인원현황을 제시해라. 같이 계산해보자. 그게 산업안전보험공단의 역학조사 당시 우리 측의 요구였다. 우리도 참여할 테니 회사도 오라고 하자, 공단이 같이 해서 3자가 모여 시간이 걸려도 토론하며 하나하나 확인해 가자. 그럼 믿을 수 있지 않겠냐고 했는데 ‘(조사의) 효율이 떨어진다’며 받아주지 않더라. 그래서 논란이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고 있는 거다.

ⓒ프레시안(손문상)

프레시안: 그런 논란이 이어진 가운데 피해 노동자 16명이 산재 신청을 했고, 지금까지 8명이 불승인 처분을 받았다.

공유정옥: 나머지 8명도 불승인 처분 대기 중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프레시안: 불승인 처분을 받은 이들 중 6명은 행정소송을 제기했다가 한 명이 취하한 상태다. 그런데 처분을 내릴 수 있는 판단 근거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아 논란이 되는 상황에서 행정 편의적인 조치라는 지적이 있다.

공유정옥: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하면 산업안정보험공단에 역학조사를 의뢰한다. 그런데 그 역학조사에 문제가 많다. 하나는 결과가 나올 때가지 공개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도 조사 결과가 아니라 산재 신청에 대한 처분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공개를 안 한다. 그래서 불승인 처분이 되면 정보공개청구를 해서 자료를 받아본다. 그것도 조사에 관련된 모든 자료가 아니라 결과 보고서만 딱 준다. 투명하지 않은 거다.

다른 하나는 사실 백날 역학조사를 해봤자 별 소용이 없다는 거다. 피해자들은 현재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5년 전, 10년 전 작업장을 복원해 조사를 하지 않는 한 근거가 안 나오는 게 당연하다. 안 나올걸 알기 때문에 불승인 처분을 위한 수순 밟기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놓고 조사를 했더니 발암물질이 없으니 괜찮다고, 직업병이 아니라며 불승인 받는다. 피해자들이 통보를 받으려면 짧아도 몇 달, 길면 2년도 기다려야 한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며 자료를 요구하면 정해진 절차를 밟으라고 한다. 그래서 그렇게 하다 보니 소송까지 가게 됐다.

이런 과정을 (올해 3월 백혈병으로 숨진) 박지연 씨 가족과 같은 경우는 기다리지 못한다. 회사가 돈 주겠다는 거 받고 정리한다(故 박 씨의 가족은 최근 삼성으로부터 위로금을 받고 행정소송을 철회했다).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도덕적으로도 문제될 수 없다. 사실상 정부가 산재보험금이라는 엄청난 돈을 손에 쥐고서 시간을 지체하면서 피해 노동자들이 포기하도록 만드는 꼴이다. 우리 측에서도 최근에는 일단 조사보다는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보상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반올림에 국한된 게 아니라 다른 직업병도 마찬가지다. 30년 전에 석면을 사용하던 조선소에서 일하다 지금 중피종에 걸려 죽어가는 노동자가 있다고 치자. 그러면 지금 조선소에 가서 석면 있는지 조사할 건가? 아니다. 국가에서 특별법을 만든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보상 해준다. 피해 노동자 제대로 치료받고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해 준 다음 원인을 찾아야 하는게 순서다.

“노조 없는 삼성, ‘눈 가리고 아웅’ 식 조사 막을 방법 없다”

프레시안: 단순히 반도체 또는 삼성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가 산재를 인정받는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건가.

공유정옥: 그렇다. 거기에 ‘삼성’이 추가되니 일종의 ‘미션 임파서블’이 된다. 다른 노동자들은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노무사도 찾아보고 하는 식으로 알음알음 도움을 받아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삼성 노동자들은 그 성 안에 딱 갇혀있는 꼴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업장에 역학조사를 온다고 했는데 사측이 전날 작업장을 청소했다고 치자. 그럼 노동조합이 문을 걸어 잠그고 조사단을 못 들어오게 한다. ‘청소 다 해놓고 무슨 조사를 하는가, 청소 안했을 때 다시 와라, 우린 평소에 청소 안 하고 일한다’라면서. 삼성은 이런 것도 안 된다. 누가 와서 뭘 보고 갔는지도 모른다. 제대로 조사를 하게 만들거나 눈 가리고 아웅 식 조사를 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는 집단이 없다. 우리도 못 하긴 마찬가지고. 산재에 얽힌 기본 배경도 너무 후진적인데 거기에 삼성의 폐쇄적인 태도, 그리고 힘과 권력이 더해지니 정부 기관에서도 이를 돌파할 만한 용기가 없는 거다.

▲ 지난 3월 백혈병으로 숨진 박지연 씨의 사진 앞에서 오열하고 있는 유족 ⓒ이상엽

도청에 기자 사칭까지…”소름이 확 끼쳤다”

프레시안: 개인 입장에서는 이 싸움이 힘들 거라던가 삼성이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나?

공유정옥: 힘들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들었다. 사실이니까. 시작한 이후에도 속 터지는 일이 많았다. 보다보다 이런 회사는 처음 봤다.

혼자 집에 있거나 밤에 사무실에서 일할 때 ‘누가 날 관찰하고 있는 건 아닐까? 도청하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집에서도 커튼을 닫고 산다. 피해망상 오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사실 실제로 제보 전화가 도청되는 일이 있었다.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에게 반도체 공정을 잘 아는 삼성 관계자가 전화한 적이 있었는데 이 노무사가 통화를 마치고 나서 내게 알리려 하는 사이에 그 제보자에게 바로 삼성이 전화를 걸었단다. 왜 그 노무사를 만나려고 하냐면서.

소름이 확 끼쳤다. 이종란 노무사의 전화가 도청되고 있지 않으면 삼성이 알 리가 없지 않겠나. 반올림 활동 초기에 공장 앞 기자회견에서는 삼성 직원이 지역신문 기자로 위장하고 취재진에 끼어 있다가 적발된 일도 있었다. 그런 일을 겪고 나니 무서웠다. 지금 지나가는 사람 중에 삼성 직원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나. 공적인 일이야 상관없지만 그들이 내가 사적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일들까지 차곡차곡 정보를 모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언젠간 활용할 수 있을 테니까.

프레시안: 올해 박지연 씨가 숨지고 나서 삼성도 공개적으로 이 사건을 언급하는 등 조금 태도가 바뀌었다. 언론에 공장을 공개한다고 나서기도 했고, 전문가들을 섭외해 역학조사를 벌여 나가겠다고 한다. 혹시 반올림 측에도 참여 제안이 들어왔나?

공유정옥: 전혀 없었다. 삼성이 대외적으로 밝힌 건 피해자들이 신뢰할만한 기관을 추천하면 참여시키겠다는 거였다. 대학 교수 중에 개인적으로 우릴 돕는 이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소속된 조직 차원에서 누가 우리의 추천을 받고 들어가려 하겠나.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이가 참여를 제안한 적도 있다. 나와 내가 추천하는 전문가가 있으면 끼워주겠다는 거였다.

안 한다고 했다. 공식화하라고 했다. 이런 식으로 들러리처럼 들어가서 정작 중요한 조사는 참여도 못하게 될 게 뻔했다. 그래서 삼성이 공개적으로 반올림 측에 참여 요청을 하고 전문가를 공모하라고 했다. 그렇게는 안하더라.

프레시안: 삼성이 자체적으로 벌일 역학조사는 의미가 없다고 보나.

공유정옥: 시작부터가 틀린 거다. 아무리 훌륭한 전문가가 들어가도 운영하는 주체가 삼성이라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삼성엔 오류 없다’…그들의 생각은 낡았다”

프레시안: 삼성은 한편으로는 대외적인 ‘소통’에 나서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피해 노동자 가족들에게 개별적으로 접촉해 위로금을 제시하며 산재를 취소하거나 반올림과 접촉하지 말라고 종용하기도 했다.

공유정옥: 삼성의 태도 변화의 직접적인 계기는 아마 박지연 씨가 숨지면서부터일 것이다. 이전과 달리 현직 노동자가 숨졌기 때문이다. 기업이 자기 직원이 병들었을 때 치료를 돕고 생활비를 보조하기 위해서 돈을 주는 건 당연한 거다. 다만 그런 건 돕는 데 그쳐야 하는데 삼성은 조건을 단다. 그 돈을 위로금이라고 얘기하는데 조건을 달면서 주는 건 위로금이 아니라 일종의 보수다.

산재 신청을 하지 말라는 것이 조건인 것도 문제고, 더 악독한 건 삼성이 이미 산재를 신청하고 인정받기 위해 싸우는 분들에게 접근한다는 점이다. ‘봐라, 이렇게 (산재 신청이) 오래 걸리는데도 승인 안 되지 않나, 어차피 안 될 거다. 차라리 우리가 그 돈을 주겠다’라는 식이다. 많지도 않다. 산재 승인 시 나올 금액 정도다. 빨리 받아먹고 산재 신청을 접으라는 거다.

ⓒ프레시안(손문상)
이런 식으로 나오는 이유는 현재 드러난 피해자들이 위력을 갖기 때문이다. 처음엔 한 명이었지만 이제 16명이 됐다. 그게 부담스러웠을 거다. 포기하게 하려고 위로금을 조건으로 매수하는 건데 윤리적이지도 못하고 사실 산재 인정 자체가 삼성과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니다. 산재보험기금에서 나오는 거고 회사에 손해가 가는 것도 아니다.

최고 경영진들이 구식 생각을 하고 있는 거다. ‘삼성에서 직업병 환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 ‘삼성에서 오류가 생겨서는 안 된다’라는 식이다. 대단히 오해하고 있다. 생각을 좀 바꿨으면 좋겠다. 내가 이건희 회장을 만날 수 있다면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산재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앞으로 얼마나 산재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는지 보여줘라. 그게 훨씬 삼성의 이미지에 도움이 될거다’라고.

하지만 그들은 그 정도로 공을 들일만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운이 나빠서 병 걸린 사람들이나 도와주자’ 정도지 불특정 다수의 노동자를 보호하는데 비용과 노력을 기울려고 하지는 않는 것 같아 유감이다.

“반올림이 매국노라니, 그게 사회의 성적표”

프레시안: 국제 투자자 그룹이 삼성에 이 문제를 직접 거론하기도 하고 반올림 역시 외국의 단체와 연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등 오히려 한국 밖에서 화제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반면에 국내에서는 이슈화가 잘 되지 않고 일각에서는 보상을 노린 ‘떼쓰기’나 글로벌 그룹의 발목을 잡는 반기업 성향의 불순 세력 정도로 매도하는 시각도 있는데.

공유정옥: 한 마디로 우리가 매국노라는 거다(웃음), 사회의 성적표인 거 같다. 그래서 이 활동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아’라고 말하면 누구나 ‘아’라고 얘기하고 그 말을 믿고 귀 기울이면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다.

병원에 가서 건강보험이 적용되는지 걱정하지 않는 것처럼 사람이 일하다 병이 들면 산재보험으로 치료를 받는 게 당연하다. 산재보험은 사회보장제도지 로또가 아니다. 산재를 인정받는 게 무슨 상 받는 것도 아니고 인정 못 받는 게 벌 받는 거다. 보편적인 복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조차 민영화되면 끝이겠지만.

‘ 보상을 받으려 떼쓴다’라는 말도 떼를 써야만 보상을 받는다는 게 문제인 거다. 이건 복지다. 그냥 줘야 한다. 그런 말들이 속상하고 답답하지만 거꾸로 그 얘기를 계속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그런 말들은 기사로 안 써주더라.

“‘아시아 반올림’ 만들 것”

프레시안: 반올림의 향후 계획은.

공유정옥: 이 활동은 처음엔 대책위원회 형식으로 출발했다. 그 이름을 반올림으로 바꿨고, 내년에는 상설기구로 만들 계획이다. 피해자 수가 100명에 가까워지면서 해야 할 일도 많아졌을 뿐더러, 3년간 활동을 하면서 우리의 싸움이 국제적으로도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미국에서 시작돼 지난 30년 동안 풀리지 않았던 의혹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산업은 그런 상태로 애꿎은 사람들의 목숨만 가져갔다. 이제 디지털 강국이라 불리는 한국, 그리고 전 세계의 전자 공장이 되어가는 대만과 중국이 있는 아시아가 더 중요해졌다. 기구를 상설화하고 아시아 노동자와의 국제 연대를 구축하 는 것. 우리는 농담조로 ‘아시아 반올림’이라 부른다. 이 안에서 계속 피해자를 찾아 산재를 인정받기 위해 애쓸 것이다. 사측은 작업환경을 공개하지 않으니 당사자들 증언을 바탕으로 공장 밖 사회에 공장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알려서 그 얘기가 다시 공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프레시안(손문상)
“전문의 직함보다 노동보건 운동가의 삶이 더 소중하다”

프레시안: 본인은 어떤 장래를 그리고 있나?

공유정옥: 반올림에서 전문가 이름을 더 많이 걸치게 됐지만 개인적으로는 전문의라는 직함보다는 전문의 자격이 있는 노동보건 운동가로 살고 싶었다.

이 문제를 조용히 도와주고 있는 전문가들이 있다. 이들을 더 체계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함께 공부하고 책도 써보고 싶다. 산업의학 교과서에서도 반도체에 관한 항목은 조금밖에 다뤄지지 않고 있다. 아직은 모르는 게 더 많은 분야다. 노동자들이 싸워가면서, 죽어가면서 남긴 기록들이 사회에 남을 수 있게, 더 이상 악순환하지 않고 축적될 수 있게 도울 것이다.

/김봉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