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유럽의회, 한-EU FTA 수정법안 상정

유럽의회, 한-EU FTA 수정법안 상정
‘긴급수입제한’ 요건 확대…개별국에 발동권 부여
본회의 통과땐 국제분쟁…“한국, 비준동의 중단을”  

  정은주 기자  

유럽의회가 지난 6일 양쪽 통상대표끼리 공식 서명한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을 무력화한 내용의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이행 법안을 해당 상임위원회에서 통과시키고 다음달 23일 본회의 최종 표결만을 남겨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애초 10월 말로 예정된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유럽의회의 비준동의 표결은 12월14일로 연기됐다. 유럽의회가 협정문과 충돌하는 세이프가드 조항을 일방적으로 통과시키면 양국은 재협상에 돌입하거나 국제분쟁에 휘말리게 된다. 반면에 우리 정부는 비준동의를 받으려고 기존 협정을 25일 국회에 제출했다. 세이프가드 조항과 관련해서는 ‘자유무역협정의 이행을 위한 관세법의 특례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 심의 중이다. 한국과 유럽연합이 체결한 협정문의 무역규제 관련 조항을 보면, ‘협정에 따라 관세를 인하하거나 철폐한 결과 국내 산업이 심각한 피해를 입거나, 그럴 우려가 있으면 세이프가드를 발동해 관련 상품에 대한 관세율 추가 인하를 정지하거나 최혜국대우(MFN) 관세율까지 인상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이 협정문을 바탕으로 지난 2월9일 세이프가드 이행법을 입안해 유럽의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발효된 ‘리스본 조약’에 따라 통상정책에 대한 공동결정권(co-decision)을 갖게 된 유럽의회가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세이프가드 수정안을 마련해 심의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스페인 대표인 파블로 살바 비데가인 의원이 지난 3월17일 발의한 수정 법안 내용을 보면, 세이프가드 발동 요건을 ‘경제활동으로 인한 피해’로까지 대폭 확대했다. 예컨대 관세와 직접 관련이 없는 한국의 비관세 장벽이나 무역정책 때문에 유럽 산업이 피해를 보더라도 수입제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이프가드가 발동되면 협정에 따른 관세 철폐 또는 인하 혜택도 함께 정지된다.

살바 비데가인 의원의 입법안은 이외에도 유럽의회도 세이프가드 발동을 위한 조사 권한을 갖고, 유럽연합 27개 회원국이 지역별로 별도의 세이프가드 발동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자동차 분야는 한국의 농산품처럼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해, 완성차는 물론 자동차 부품의 수입량도 정기적으로 모니터하는 시스템을 갖추기로 했다.

이런 세이프가드 이행 수정 법안은 지난 6월 23일 유럽의회 국제무역위원회에서 찬성 27명, 반대 0명, 기권 1명으로 통과해 다음달 23일 본회의 투표만 남겨두고 있다. 유럽의회는 이 세이프가드 이행법안을 처리한 다음 12월14일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 투표를 하기로 했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는 “우리 국회가 한-유럽연합 협정문을 비준동의하고 나서 유럽의회가 세이프가드 조항을 수정하면 기존 협정문은 원점에서 다시 다뤄져야 한다”며 “국회의 비준동의 절차도 유럽의회의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유럽의회의 입법에 관여할 수 없다”면서도 “다만 유럽의회의 세이프가드 입법안이 에프티에이 협정문과 충돌하면 국제분쟁에 회부할 수 있다는 원칙을 이미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쪽에 밝혔다”고 말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