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오바마에 의한, 오바마를 위한 ‘재협상’이었다

오바마에 의한, 오바마를 위한 ‘재협상’이었다

한-미 FTA 재협상 문제점
한국차 관세 4년간 더 연장 ‘핵심이익’ 내줘
내용·절차 모두 미국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녀
오바마 “획기적 딜…7만 일자리 창출” 자축

  정은주 기자  

  

  

지난 3일(현지시각) 마무리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은 내용과 절차 면에서 모두 미국에 일방적으로 끌려간 ‘퍼주기 협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게 됐다. 정부가 2007년 협정 타결 당시 대표적인 ‘성공작’으로 내세우던 자동차 분야는 결국 미국 쪽에 큰 양보를 했고, 농업 등에서 우리가 ‘얻은 것’도 생색내기에 그친다는 지적이 많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 대통령의 승리”라는 말로 이번 재협상 결과를 평가했다.
■ 자동차 ‘양보’ 인정 자동차 분야에서 ‘양보’가 이뤄졌다는 데 대해선 정부도 인정한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자동차는 그럴 수밖에 없다”며 “우리가 너무 많이 팔고 미국이 너무 적게 판다는 시각이 있어서”라고 말했다.

두 나라는 이번 재협상에서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4년간 유지하다 5년째 철폐한다는 데 합의했다. 반면 2007년 6월 공식 서명 때 우리 정부가 민감품목으로 분류해 10년 뒤 관세를 철폐하기로 했던 미국산 전기자동차도 일반 자동차처럼 발효일에 4%를 즉각 인하하고 나머지 4% 관세는 4년간 단계적으로 없애기로 했다.

외형적으로 두 나라의 관세 철폐 기한을 ‘4년간’으로 맞추는 듯했으나 내용적으로는 한국에 훨씬 불리하다. 한국의 수출량이 월등히 많은데다 일본 차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에프티에이 가격경쟁력’을 갖게 되는 시점이 5년 뒤로 늦춰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은 미국에 47만6857대의 자동차를 수출한 반면에 미국산 자동차는 국내에서 7663대만 팔렸다. 농축산업이나 금융, 서비스 분야 등은 두루 손해지만, 자동차 분야는 큰 이익이라던 정부의 주장이 무색해졌다.

■ 페루와는 삭제, 우리는 수정 두 나라는 또 의약품 허가와 특허를 연계하는 의무를 협정 발효 이후 3년 동안 유예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 기간에는 보건당국이 복제약 시판을 막아야 한다는 것인데, 복제약 비중이 높은 우리한테는 의약품값을 상승시키는 독소조항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오바마 정부는 2007년 ‘신통상정책’을 발표하며 이 조항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고, 결국 페루와 콜롬비아 등과의 에프티에이 재협상 과정에서 이들 조항을 삭제했다. 그런데 우리와는 일부 수정하는 데 그친 것이다.

이번 재협상은 시기나 절차 면에서도 큰 오점을 남겼다. 실제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협상을 처음 요구한 지난 6월26일 캐나다 토론토 한-미 정상회담은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이 논의된 자리였다.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시점을 1차 마감시간으로 정한 것도 오바마 대통령이었고, 2차 재협상도 북한의 연평도 포격으로 한-미 동맹이 강화되는 시점인 지난달 30일부터 진행됐다. 이러한 ‘속전속결’은 중간선거에서 패배하고 재협상까지 타결하지 못해 궁지에 몰린 오바마 대통령을 구출하기 위한 배려였다는 분석이다.

또 우리 정부는 국내 의견 수렴 절차나 타당성 검토는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통상당국이 협상 진행 상황을 국회에 보고하도록 규정한 ‘자유무역협정 체결 절차 규정’을 위반하며 국회를 완전히 따돌렸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자동차 업계, 노동계의 의견을 몇 주간 모아 재협상에 나서고, 미국 하원 세입위원회 관계자와 협상장에 동행해 수시로 재협상 내용을 논의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런 가운데 ‘이익의 균형’이 무너진 것은 예고된 결과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재협상 타결 뒤 성명을 내 “획기적인 딜”(landmark deal)이라며 “이번 합의로 미국의 수출을 110억달러가량 늘리고 일자리 7만개 이상을 창출하는 효과를 줄 것”이라고 자축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