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환자 주머니 터는 ‘약값 본인부담률 인상’ 안 된다
보건복지부가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쏠리는 현상을 막기 위해 외래환자의 약값 본인부담률을 대폭 높이기로 했다. 동네의원만 현행대로 30%를 유지하고, 중소병원 40%, 종합병원 50%, 대학병원 등 상급 종합병원 60% 등으로 본인부담률을 올리겠다는 것이다.
대형병원 쏠림 현상을 막아야 한다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우리나라는 주요 선진국 가운데 대형병원 병상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하지만 환자들의 대형병원 선호 현상은 바뀌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정립돼 있지 않은 탓이지 대형병원의 진료비나 약값 부담률이 낮기 때문은 아니다. 실제로 진료비 본인부담률이 이미 30~60%로 차등화돼 있지만 쏠림은 여전하다. 약값 올린다고 환자 쏠림 현상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복지부의 이번 약값 인상 방안은 대형병원 쏠림을 개선하자는 목적보다는 사실상 건강보험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환자 부담을 늘리는 데 주안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형병원 쏠림을 개선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건강보험공단의 급여 부담을 줄이고 환자들이 내는 비용을 늘리겠다는 뜻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쏠림 현상을 개선하려 한다면 대형병원의 본인부담률 인상에 앞서 동네의원의 본인부담률부터 낮추는 게 형평성에 맞다. 동네의원은 그대로 두고 큰 병원들의 부담률을 올려서는 편법으로 환자들의 주머니를 터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약값 본인부담률이 오르면 당장 대형병원에 다니는 암환자나 중증환자들의 부담이 크게 늘어나게 된다. 다른 만성질환으로 약을 장기 복용해야 하는 환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에 대한 배려 없이 일방적으로 본인부담률을 올려서는 안 된다. 이번 논의 때도 애초 경증환자만 본인부담률을 올리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작 모든 외래환자에 대해 예외 없이 본인부담률을 올리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는 중증환자에 대한 보장률을 높이겠다는 기존 방침에 역행할 뿐 아니라 서민층 중증환자들을 깊은 수렁으로 내모는 처사다.
복지부는 건강보험 재정이 어려우면 가입자들 부담을 늘리면 된다는 편의주의적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한 환자 부담을 늘리기에 앞서 주치의제 도입 등 현행 의료전달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안부터 연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