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미, 쇠고기 전면개방 요구 예고: “한국 수입시장 점유율 상승 등 전제조건 달아”

미, 쇠고기 전면개방 요구 예고
“한국 수입시장 점유율 상승 등 전제조건 달아”
4가지 세부방안 등 담은 의회 보고서 발표
기존 합의서 놔둔 채 ‘서한 교환’ 방식 추진

  정은주 기자  

  

» 미 의회 한국 쇠고기시장 전면개방 전략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몇가지 전제조건을 달아 쇠고기 시장의 전면 개방을 보장하는 약속을 하도록 요구할 것임을 보여주는 미국 의회 문서가 공개됐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지난 3일 발표한 ‘한-미 쇠고기 분쟁: 이슈와 현황’ 보고서를 보면 “한국 소비자가 미국산 쇠고기를 더 많이 구입하고 광우병 확산을 막는 미국의 조처가 효과적이라고 확신하면 미국이 한국 정부에 쇠고기 시장을 전면 개방하도록 강력히 요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돼 있다.
보고서는 “두 나라의 수출·수입업자가 합의해 현행 자율규제를 없애거나 세부 전제조건을 달아 시장 전면 개방을 한국 정부와 합의할 수 있다”고 지적한 뒤, 미국 농무부가 2009년 8월 내세운 4가지 ‘세부 전제조건’을 제시했다. ‘한국 소비자의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라는 기존 자율규제를, 이 세부 전제조건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2008년 4월 이명박 대통령의 첫 방미 때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전제조건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허용과 검역 주권 포기를 합의하고, 이를 반영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고시로 채택했다.

그런데 촛불집회로 국민적 저항이 일자 ‘한국 소비자의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라는 전제조건을 붙여 미국 육류수출업자와 한국 수입업자가 자율규제로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을 제한하기로 했다.

미국 쪽은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의 대한국 수출액이 전년보다 140%나 늘어난 5억1800만달러어치로, 시장 점유율이 32%까지 오른 것을 신뢰 회복의 ‘신호탄’으로 해석한다.

보고서를 보면 미국은 우선 3년, 5년, 10년 등 미래의 일정 기간 미국에서 광우병이 추가로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조건을 붙여 쇠고기 시장의 개방 확대를 한국 정부에 요구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또 수입검역 조건을 위반한 사례가 일정 기간 나타나지 않을 것 또는 현행 민간 자율규제를 일정 기간으로 제한할 것을 조건으로 내세울 수도 있다. 미국산 쇠고기의 한국 수입시장 점유율이 일정 정도에 이를 경우 미국 육류수출업자가 한국 소비자의 신뢰가 회복된 것으로 보고 쇠고기 시장을 전면 개방시키겠다는 조건도 제시했다.

  

»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지난 3일 발표한 ‘한-미 쇠고기 분쟁: 이슈와 현황’ 보고서 중 일부.

  

이밖에도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서 ‘광우병 위험 통제국’으로 등급을 매긴 미국이 한 단계 높은 ‘광우병 청정국’ 등급을 받으면 쇠고기 시장을 전면 개방하는 조건도 가능하다고 명시돼 있다. 보고서는 우리 정부가 이런 조건에 합의하면 2008년 4월 서명한 쇠고기 합의서는 그대로 둔 채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 때처럼 통상당국자간 ‘서한 교환’(exchange of letters) 방식으로 기존 자율규제를 수정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박상표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정책국장은 “우리 정부는 미국 쪽이 제시하는 꼼수에 이끌려 미국산 쇠고기를 전면 개방할 것이 아니라, 일본이나 대만과 동일한 조건으로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도록 되레 재협상을 요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과 달리 일본은 미국이 ‘광우병 위험 통제국’ 지위를 얻은 뒤에도 20개월 미만의 쇠고기만 수입하고, 대만은 자국 법령으로 내장·분쇄육 등 특정 부위의 수입을 여전히 금지하고 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