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대재앙의 토대 ‘겐시료쿠무라’, 이제는…”
日 반핵 전문가 “원전 사태 막지 못해 한국민과 전세계인에게 죄송”
기사입력 2011-04-06 오후 1:54:08
“이런 사고가 나기 전에 핵발전소를 없애려고 저희 단체는 35년 전부터, 저 개인은 20년 전부터 운동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역량이 못 미쳐서 이렇게 광범위한 방사능 오염사태를 초래했습니다. 정말 한국민들과 전세계인들에게 폐를 끼치게 되어, 어떻게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반 히데유키 원자력자료정보실 공동대표의 갑작스러운 사과에 5일 ‘일본 반핵운동가로부터 듣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의 진실’ 강연회가 열린 서울 정동 프란체스코 회관 2층 강당은 순간 숙연해졌다.
▲ 반 히데유키 원자력자료정보실 공동대표.
반 히데유키 공동대표가 활동하고 있는 ‘원자력자료정보실’은 다카키 진자부로 박사 등이 1975년 설립한 일본의 대표적인 반핵운동단체로 핵발전소 폐쇄 등을 목표로 ‘원자력시민연감’을 발간하는 등 시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등 꾸준한 활동을 벌여왔다. 국내에는 다카키 진자부로 박사의 책 <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 등이 번역되어 있기도 하다. (관련기사 : 이명박과 김정일이 동시에 사랑한 ‘그것’, 그 정체는… )
“젊은 층이 ‘반핵 운동’에 동참하고 있어”
일본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빚어진 이후 가장 흔한 반응은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일본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일 것이다. 지진, 해일 등의 천재지변에 대응 시스템이 가장 잘 갖춰진 것으로 알려진 일본에서도 원전 사태에 대한 대응은 미숙하고 정보도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등 총체적 난국에 다름 아니었다. 그간 일본 정부가 강조해온 ‘원자력은 안전하다’는 신화가 흔들리고 있는 것은 불문가지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원자력자료정보실로 엄청나게 많은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 그런 전화 중에는 후쿠시마 핵발전소에 관해 알고 싶다는 것과 피난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이 사태를 헤쳐나갈 수 있는지 등을 묻는 내용이 많다.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들은 ‘이제까지는 원전이 안전하다는 말을 정말 믿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못 믿겠다’고 말한다.”
반 히데유키 대표는 사고 이후 반핵 운동, 반 원자력 운동이 젊은이들이 모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매달 반핵집회에 보통 참석자가 몇십 명에 불과했는데 지난 3월에는 1200명이 모였고 체르노빌 사고 25주년이 되는 오는 24일 집회에는 2000~3000명이 모일 것으로 생각된다”며 “이렇게 운동이 활발해지는 흐름”이라고 밝혔다.
“진실을 말하는 전문가 나와…’원자력 마피아’ 붕괴되고 있다”
반 히데유키 대표는 이번 사고를 두고 “원자력에 관한 평가 기준을 완전히 붕괴시켰다”고 평가했다. 일본 정부가 이번 사태를 대비하거나 대응하지 못한 것은 원자력 발전소가 운영되는 한 당연한 귀결이라는 지적이다.
“각 전력회사는 안전을 ‘확률’로 평가해왔다. ‘스테이션 블랙아웃(station blackout, 발전소 내 비상계통을 운용할 전력까지 공급되지 않는 것)’ 사태가 일어날 확률은 1000만 분의 1이라고 한다.이 확률이란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에 맞을 확률과 같아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일본의 원자력 위원회 원장은 사태 이후에 1000만 분의 1에 해당하는 대책을 세워서는 그 방대한 비용 때문에 핵발전소 자체를 세울 수도 없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극히 낮은 확률’이라는 보장은 이미 나타난 재앙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 반 히데유키 대표는 “현재 후쿠시마 발전소의 1~3호기는 모두 노심 용융 상태에 이르렀는데, 그간 일본 정부는 노심 용융은 아주 드문 현상이고 일어날 확률이 제로에 가깝다고 선전해왔다”고 말했다.
‘원자력 신화의 붕괴’는 다른 방향으로도 일어나고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정부와 전력회사 대학에서 원자력을 전공한 전문가 등이 이룬 전문가 집단은 강고한 체제를 갖추고 있다. 일본에서는 ‘겐시료쿠무라(原子力村, 원자력촌)’라고 불리는 이들 집단 내에서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는 전언이다.
반 히데유키 대표는 “‘겐시료쿠무라’의 폐쇄성이 이번 재앙의 토대가 됐다고 생각한다”면서 “폐쇄성은 자기네 조직 내에서 다른 의견을 말하면 그 사람을 배제하고 그들 만의 세계를 이루는 식으로 나타나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자신들과 의견이 다른 반대 의견은 완전히 무시하고 그들 만의 세계를 이뤄왔다. 이런 상황이 이런 재앙의 토대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가 난 이후 숫자는 적지만 핵 시설을 설계했던 사람들이나 결정권을 가지고 일했던 사람들이 ‘나는 반대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기 시작했다”면서 “이 ‘원자력촌’이 무너질 작은 구멍이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원자력 방재 대책? 사고지점 10km까지 밖에 없어”
이러한 폐쇄성은 원자력의 안전성에 관련된 주장에만 그치지 않는다. 당장 후쿠시마 발전소에서 유출된 방사능으로부터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는 문제에서도 ‘폐쇄성’은 그대로 작동한다. 반 히데유키 대표는 “실은 일본의 핵시설 관련 방재 대책은 사고 지점으로부터 10km지점까지 밖에 세워져 있지 않다”며 “방재 대책 자체가 파탄난 상태”라고 지적했다.
“원전에서 20km 이내 지역은 정부에서 피난시켰으나 20~30km 지역은 ‘옥내 피난’을 권고하고 있다. 집안에서 문 닫고 창문 틈새 막고 있으라는 거다. 그러나 택배가 오거나 쇼핑을 갈 때 어떻게 해야한다는 이야기인가. 물건을 주문해도 운전수가 무서워해서 이 지역에 가려하지 않는다. 말로만 ‘옥내 피난’일뿐 이지역 사람들은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특히 최소한 임산부나 아동은 강제 피난을 시켜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 일본 정부는 이번 원전 사고에 투입되는 인원의 총수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반 히데유키 대표는 “사고에 투입되는 이들 중에는 도쿄전력의 정직원도 있을 것이나 많은 수의 하청 직원이 있고, 바닷물을 주입하기 위해 전국에서 동원된 소방대원과 자위대원, 미군 등도 있다”며 “상당히 많은 수의 사람들이 수습 대책에 동원되고 있으나 숫자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이 방사능 양의 차이는 있으나 다 피폭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정한도 상 핵발전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피폭선량 한도는 연간 50밀리시버트로 5년 동안 100밀리시버트를 넘으면 안된다는 규정이 있다. 급박한 상황의 경우 총리가 인정하는 경우에 한해 연간 100밀리시버트까지 허용할 수 있다고 나와있다. 그런데 이번에 사고대책을 세우면서 지금까지 보다 2.5배나 높여서 250밀리시버트까지 인정한다고 한도를 완화시켰다. 아직까지는 작업원 중에 250밀리시버트까지 피폭된 이는 없으나 누적 피폭량이 100밀리시버트를 넘은 사람이 17명이고 이중 2명은 200밀리시버트까지 피폭을 당한 상태다.”
일본의 언론 역시 주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반 히데유키 대표는 “정부가 매스컴을 직접적으로 통제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매스컴에서 자체적으로 바른 정보를 보도하면 주민이 패닉에 빠질 것으로 염려해서 자기네 자체 규칙을 만들어서 보도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공할 재앙 앞에 방사능의 위험을 경고해온 시민단체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가령 비교적 단순해 보이는 ‘방사능에 오염된 식품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의 문제에서도 판단은 쉽지 않다.
“체르노빌 사고때 일본의 수입 규제 기준은 세슘 370베크렐이었는데 이번에 자국내 오염된 식품 폐기 기준은 500베크렐로 높였다. 그간 자체적으로 오염 식품 기준을 정해온 생협 등의 기준은 37베크렐이었다. 정부 기준과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생협의 목표는 농민과 소비자를 함께 보호하자는 것인데, 37베크렐을 기준으로 폐기하자고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한마디로 혼란 상태다. 어떤 기준을 적용해서 어떻게 헤쳐가야 할지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체르노빌 때 ‘안전하다’던 일본, 후쿠시마 때는 한국이”
반 히데유키 대표가 전한 일본 정부의 행태는 역시 ‘안전하다’는 주장만 되뇌고 있는 한국 정부와 비슷하다. 그간 ‘편서풍이 불기 때문에 한국으로는 방사능 물질이 오지 않는다”고 주장하던 한국 기상청은 독일 기상청이 시뮬레이션 결과를 공개한 이후 예보를 바꿨다.
반 히데유키 대표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한국의 원자로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는 모르나 체르노빌 사고가 났을 때 일본의 핵발전소를 추진해온 쪽에서는 ‘일본에서는 사고 안난다’고 했는데 일본에서 사고가 나니 이제는 한국에서 그런 주장을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한국에서는 대형 쓰나미가 없을지 모르나 ‘노심용융’은 아무리 가능성이 낮다고 해도 아무도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면서 “‘노심용융’은 여러 요인에 인해 일어날 수 있고 한국에서도 같은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 확률이 낮다고 해서 잃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렇게 오염된 상황에서도 일본 전문가들 역시 ‘어떤 문제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에서 ‘방사능 비’에 대한 우려가 높은 것을 두고 “한국에서 이번 사고로 인해 1밀리시버트에 달하는 피폭을 당하는 사람은 없으리라고 본다. 비를 맞는다고 해도 당장 구체적인 증상이 나타나리라 볼 수는 없다”며 “그러나 장래에 암환자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성인에 비해 감수성이 높은 아동의 경우 더욱 그렇다”면서 “비가 오면 먼저 우산 마스크 쓰시고 아무쪼록 자신을 잘 지키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