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고 죽음의 집적 절망의 클러스터

죽음의 집적, 절망의 클러스터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이는 상징도 아니고 비유도 아니다. 2011년 한국, 지금 여기에서 아포리즘을 넘어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는 한 표현이 되었다.

2009년 4월부터 2011년 4월까지 2년 동안, 2646명의 특정 인구 집단에 소속된 이 중 6명이 자살했고, 5명이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사망했다. 2명의 가족 또한 자살을 선택했다. 2년 만에 노동자와 가족을 포함해 8명의 자살자와 5명의 뇌심혈관계 질환 사망자가 생겨 죽음의 이미지가 깊게 드리워진 이름이 바로 쌍용자동차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의 자살률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일반 인구에 견줘 3.7배 높고, 심혈관계 질환 사망률은 18.3배 높다. 죽음의 집적이고 절망의 클러스터이다.

쌍용차 심혈관계 사망, 평균의 18배

기업의 구조조정이 노동자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보고나 연구는 많다. 전 지구적으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판을 쳤던 지난 30여 년간, 한국뿐 아니라 많은 나라의 노동자들이 구조조정으로 해고되거나 직장을 옮겨야 했다. 그 결과 그들은 건강이 나빠지고 생명을 잃었다. 하지만 이런 일반론과 구별되는 쌍용자동차 사례의 특수성이 존재한다. 다른 나라 사례와 비교해도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은 이례적으로 너무 많이 죽고 있다.

구조조정으로 인한 해고는 확실히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 상대적으로 사회 안전망이 잘 갖추어진 나라라고 평가받는 스웨덴·핀란드 등에서 이루어진 연구에서도 구조조정을 당한 노동자가 심혈관계 질환이나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비율이 높다고 밝혀졌다.

구조조정은 해고된 노동자뿐 아니라 이른바 ‘살아남은 자’들의 건강과 생명도 위협한다. 구조조정을 겪고 생존한 노동자들도 높은 사고율, 정신질환 등에 시달린다. 구조조정 자체는 해고된 노동자뿐 아니라 ‘생존자’에게도 트라우마를 남긴다. 이들은 해고 노동자에게 늘 미안한 감정을 가지게 되고, 자신도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에 떤다. 이렇게 되면 회사에 대한 신뢰와 충성심이 떨어져 생산성이 떨어지고,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과로에 시달려 개인의 건강도 해친다. 이를 가리켜 ‘생존자 질환 증후군’이라 표현한다.

해고로 인한 실직은 소득 감소를 동반한다. 해고로 인한 고통은 1차적으로 경제적인 것이다. 그나마 사회보장이 잘된 사회에서는 위험이 감소할 수 있다. 기존 가계 부채가 적거나 저축률이 높은 가정, 가족이나 친지 등 사회적 지지 네트워크가 발달된 가정 역시 위험이 줄어들 수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가정에 주된 소득을 담당하던 가족 구성원의 해고는 경제적으로 큰 타격이 되고, 이는 해고 노동자 본인뿐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큰 스트레스가 된다.

정신적·육체적 파괴

심적 스트레스와 무력감은 우울과 불안 같은 정신병리적 증상을 낳음과 동시에 직접적으로 육체적 건강도 파괴한다. 스트레스가 많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은 인체의 면역 기능을 떨어뜨리고, 몸을 항상적인 긴장 상태로 만들어 심혈관계 기관에 많은 부담을 준다. 혈압을 높이고, 혈중 콜레스테롤이나 혈당 같은 성인병 위험 요소를 증가시킨다. 그 결과 인체의 신진대사에 장애가 생겨 대사증후군이라는 질병에 걸리거나 비만해지는데, 이 모든 것은 심장병이나 뇌혈관 질환의 발생 위험을 높인다.

이런 상황이 건강에 좋지 않은 습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 또한 큰 문제다. 해고 노동자들은 일반적으로 스트레스와 무력감을 떨치기 위해 술과 담배에 의존한다. 잠을 설치면서 수면제에 의존하는 이가 많아진다. 식사를 거르거나 제대로 먹지 않게 되고 활동량이 줄어들어, 이중 삼중의 건강 위험 상황에 빠진다.

관계의 악화… 건강 위험 악순환

경제적 상황이 나빠짐에 따라 가족 관계와 다른 친분 관계에 금이 가는 것도 문제다. 심한 스트레스와 무력감, 우울감과 불안감의 증가, 그로 인한 생활습관 변화 등은 본인의 건강뿐 아니라 관계의 건강도 해치기 쉽다. 무력감과 우울감에 젖어 불면과 수면 과다에 시달리며, 술과 담배를 많이 하고, 대화가 줄어들 뿐 아니라 신경질이 많아진 남편과 아버지를 언제까지나 참고 기다려줄 아내와 자녀는 많지 않다. 많은 가정에서 해고는 가족 관계의 파탄과 친구 관계의 단절로 이어진다. 이런 파탄과 단절은 상황을 더욱 나쁘게 만든다. 악순환의 고리에 들어서는 것이다.  낮은 자아존중감, 자기애 감소, 미래에 대한 불안, 자포자기 등을 낳고, 이런 모든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 최악의 상황이 연출된다.

특히 가족 및 친구 등 사회적 지지망의 손실과 단절은 치명적인 효과를 낸다. 관계가 손상된 이는 사회적으로 더욱 고립되고, 자아 정체성의 혼란을 낳는다. 자포자기 상태에 빠지게 되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이 두려워진다. 이들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낙인’과 배제가 이들을 극한 상황으로 몰고 간다.

이와 같이 구조조정은 해고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명을 파괴한다. 일반적인 수준에서 진리이지만, 일반적인 진리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의 경우를 다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반적인 사례에 비춰보더라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죽음은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이 상황을 이렇게 나쁘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확실한 답을 얻으려면 면밀한 조사와 분석이 필요하다. 그 작업에 앞서 몇 가지 측면에서 가설적 설명을 시도해볼 수 있다.

회사를 너무 사랑했기에 더욱 취약

첫째, 급격히 변화된 경제적 상태가 영향을 주었다. 대부분의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은 해고 이전에 도시가구 노동자 평균을 상회하는 소득을 올렸다. 그런데 이들이 하루아침에 소득 기준으로 빈곤계층으로 전락하면 그 충격이 더욱 크다. 이들은 해고 이전에도 자녀 사교육 부담, 주거 부담 등으로 이미 상당한 가계 부채가 있을 수 있다. 이들은 쌍용자동차에서 장기근속하며 이 부채를 해결할 계획이었을 것이다. 그 계획과 예상이 하루아침에 무너졌을 때, 낭패감과 상실감은 더욱 클 수 있다.

둘째, 미래의 고용에 대한 불안감이 상황을 더욱 나쁘게 만들었다. 많은 이들이 2001년 대우자동차 해고와 쌍용자동차 해고를 비교한다. 2001년 대우자동차 해고 때도 1750명이나 되는 노동자들이 대량 해고됐는데, 그때와 지금이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각도로 분석해야 한다. 그런데 거시적 측면에서 보면, 2001년과 2009년은 확실히 다른 측면이 있다. 2001년은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의 구조조정을 겪은 뒤 경제가 회복 국면을 보이던 때다.  1998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한국 경제는 1999년 9.5%, 2000년 8.5%의 실질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빠르게 IMF 위기의 파고를 넘고 있었다. 하지만 2009년은 달랐다.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로 한국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고, 상황은 아직까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런 거시 경제지표가 해고자 개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전반적 경제 상황이 그리 나쁘지 않을 때와 최악의 상황일 때, 개인이 느끼는 장래 고용 전망의 불확실성은 확실히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은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한국의 불안정한 고용시장을 복합적으로 고려하면서, 장래의 고용 가능성을 더욱 비관적으로 인식했을 수 있다. 이런 비관적 장래 인식이 영혼을 갉아먹은 것이다.

셋째, 회사에 대한 신뢰 상실과 배신감이 악영향을 주었다. 외국의 연구에 따르면, 회사와 직업에 대한 헌신성이 큰 이들일수록 구조조정에 따른 악영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이들일수록 그 배신감과 신뢰 상실의 여파가 커서 건강에 더 악영향을 받는 것이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그간 몇 번의 위기 속에서 나름대로 회사를 위해 희생하고 노력해왔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위기의 책임을 노동자에게만 전가하는 회사 경영진에게 큰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배신감은 노동자 개개인의 마음속에 깊은 상처를 냈다.

넷째, 관계의 파국 정도가 극심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 중 많은 이들이 가족 관계 파탄, 지역사회에서의 소외, 이전 친분 관계의 단절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의 관계 단절, 소외, 낙인, 배제의 문제는 광범위하다. 1차적으로는 경제적 어려움, 우울과 불안 등에 따른 정신적 자아존중감 감소로 인해 부부 관계와 부자 관계에 금이 간다. 공장 점거 농성 등으로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한 여파로 지역사회의 눈길도 이전과 다르다. 지역에서 일상적인 소외가 발생하고, 이전에는 친하게 지내던 다른 쌍용차 노동자들과의 관계가 서먹서먹해진다. 점거 농성 와중에 적과 아로 나뉘어 욕을 하고 싸웠기 때문이다. 술자리에 가서도, 다른 직장을 구할 때도, 자신이 쌍용차 해고 노동자임을 드러내기 힘들어진다. 자꾸 자신을 감추고 사람들과의 소통을 멀리하게 된다. 몇몇 노동자에게 들은 상황과 증언을 종합해볼 때, 관계 단절과 소외, 배제, 낙인, 인간과 사회에 대한 신뢰 상실의 문제는 예상보다 크다.

구조조정 계획이 발표된 뒤 실제 구조조정이 행해지기까지 3명이 자살하고, 2명이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사망한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들. 구조조정 뒤 지금까지 5명이 추가로 자살을 선택했고, 3명이 심혈관계 질환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이런 죽음의 행렬을 멈추려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먼저 상처의 원인을 진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들이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고 아파하는지 실체적 진실이 아직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다. 필자를 비롯한 몇몇 연구자와 작가들이 사례를 인터뷰하고 상담한 것으로는 치명적 죽음의 원인을 드러내는 데 한계가 있다. 이들이 겪고 있는 아픔과 어려움, 더불어 그 원인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한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 늦은 감이 있지만 경기도 평택시가 나서 이런 작업을 수행할 예정이라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조사 과정이 그들의 아픔을 오히려 헤집고 아픈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 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회사가 ‘존재적 복권’에 나서라

지방자치단체, 회사 등은 이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쌍용차 해고 노동자 마음의 상처와 육체적 질병을 보듬고 돌볼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 처음은 약속을 지키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신뢰 상실과 배신감은 그들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다. 회사와 사회에 느끼는 배신감을 치유하기 위해 회사와 사회가 나서야 한다. 다음으로 지자체와 회사가 이들의 경제적 문제와 고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장서야 한다. 결자해지라 하지 않았던가. 가족 관계, 동료 관계, 지역사회에서 일상적인 단절, 소외, 배제, 낙인 등에 시달리는 이들의 존재에 대한 ‘존재적 복권’ 역시 절실하다. 인간이 살기 위해서는 밥뿐 아니라 존재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 필요하다. 범죄자, 낙오자, 관계 파괴자 등으로 낙인찍힌 이들 존재에 대한 긍정과 사회적 재호명이 필요하다.

이상윤(건강과대안 책임연구원/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