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EU FTA ‘원포인트 재협상’, 가능한 대안이다”
[인터뷰] 송기호 변호사 “같은 국회가 모순되는 두 제도 허용해서야”
기사입력 2011-04-19 오후 6:49:26
매체를 만드는 일을 하며 누리는 특권이 있다면, 좋은 원고를 독자들보다 조금 먼저 읽는 일일 게다. 일요일이었던 지난 2월 20일, 메일함에서 송기호 변호사의 글을 꺼냈을 때도 그랬다.
다음날인 지난 2월 21일자 <프레시안>에 실린 이 글은, 잘 알려진 대로 한국과 유럽연합(EU) 사이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의 번역오류를 처음으로 지적했다. 글이 실린 당일, 외교통상부는 번역오류를 시인했고, 다음날 <프레시안>은 이를 기사로 소개했다. 이후 관련 보도가 잇따르면서, 국회에 상정된 비준동의안이 두 번이나 철회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 생겼다.
번역오류를 처음 지적했을 때, 외통부 관료들은 그랬다. ‘번역오류는 사소한 문제’라고. 번역오류가 당초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공개사과까지 했지만, 외통부 관료들은 변한 게 없었다. 세 번째로 상정된 비준동의안을 처리하기 위해 국회 외교통상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린 뒤에도 그들은 말한다. ‘번역오류는 사소한 문제’라고.
이런 대답을 들을 때면, 조선 후기 재야 지식인인 성호 이익의 탄식이 떠오른다. 그는 조선과 일본 사이의 외교문서에 쓰인 호칭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했다. 당시 막부의 수장인 쇼군(將軍)을 외교문서에선 ‘대군(大君)’으로 표현했고, 이는 조선 국왕과 대등한 관계였다. 그런데 만약 일본에서 막부체제가 무너지고, 천황이 직접 통치하는 날이 온다면? 이익은 이를 미리 내다보았다. 일본은 천황이 직접 통치하는 나라였으므로 다시 천황이 실권을 쥐는 날이 올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대군’과 동격인 조선의 왕은 일본 천황보다 한 단계 낮은 급이 된다.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익의 지적을 당시 조선의 주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소한 문제’를 너무 확대해석한다는 게다. 하지만 이후 역사가 어떻게 진행됐는지는 후손인 우리가 잘 알고 있다.
이익의 문제제기가 있은 지 불과 한 세기만에 일본에서 막부 체제가 무너졌다. 그리고 천황이 실권을 잡았다. 이른바 ‘대정봉환(大政奉還)’이다. 이익의 문제 제기는 적중했다.
이익은 일본과의 교류가 필요하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일본의 변화 가능성을 내다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송기호 변호사 역시 마찬가지다. 무역이나 시장 개방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정부보다 더 철저한 법률시장 개방을 주장해 왔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19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전체회의가 끝나고, 한·EU FTA 4월 처리 합의설이 흘러 나오는 가운데, 송기호 변호사와 다시 만났다. 송 변호사는 민주당 박주선 최고위원이 19일 국회에서 제기한 한·EU FTA ‘원포인트 재협상’이 매우 현실적이고 가능한 해결방안이라고 밝혔다. (☞18일자 인터뷰: “‘홍정욱 사건’, 헌법 정신 살렸다”) <편집자>
▲ 송기호 변호사ⓒ프레시안(손문상)
“한·EU FTA와 유통법·상생법의 충돌, 대안은 ‘원포인트 재협상’”
프레시안: 19일 국회 통외통위에서 박주선 민주당 최고위원이 한·EU FTA에 대해 ‘원포인트 재협상’을 주장했다.
송기호: 매우 주목할 만하다. 나는 그것이 현실적이고도 가능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아다시피 국회는 FTA 협정문 조문을 만드는 절차에 참여하지 못했다. 그러나 국회는 FTA 협정문 자체를 직접 고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국회는 수용할 수 없는 조항에 대해선 재협상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헌법이 국회에 준 FTA 심의권의 내용이다.
프레시안: 원포인트 재협상이란 무엇인가?
송기호: 한·EU FTA가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과 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상생법)과 충돌하지 않도록 이 부분을 고치는 원포인트 재협상을 하자는 것이다. 그 충돌은 정부도 인정하고 있는 문제이다.
프레시안: 과연 원포인트 재협상이 가능한가? 이미 EU 의회도 통과하지 않았는가?
송기호: 절차적 문제는 없다. 한·EU FTA 15장에는 한국과 유럽 양 쪽의 의회의 동의가 없이는 발효되지 않는다고 돼 있다. FTA는 양자주의이므로 EU와 한국이 합의해서 고치면 된다.
프레시안: 상대국의 의회를 통과한 이후에 FTA 재협상한 사례가 있는가?
송기호: 지난해 12월, 미국은 한국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를 통과한 한·미 FTA의 주요 골격을 고쳤다. 미국·페루 FTA의 경우, 페루 의회는 2006년 ‘찬성 79, 반대 14′로 통과시켰다. 그러나 미국의 요구로 다시 재협상되었다. 미국·콜롬비아 FTA도 마찬가지이다.
프레시안: 과연 원포인트 재협상이 가능할까?
송기호: 나는 가능하다고 본다. 이번 FTA는 EU에 유리하다. 게다가 EU는 한미 FTA를 의식해야 한다. EU의 입장에서는 유통법과 상생법은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 19일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원포인트 재협상이 WTO 개방을 후퇴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답변했다.
송기호: 동의하지 않는다. 먼저 한·EU FTA를 보면 소매 유통업 개방 업종 자체가 WTO보다 크게 늘었다. WTO에서는 개방하지 않았던 축산물, 계란, 육류, 빵, 사탕, 식용유, 소금, 커피, 차, 설탕 등 소매업 업종을 추가 개방했다. 게다가 한국이 EU에 대해서만 유통법과 상생법을 적용한다고 해서, 이것이 WTO의 다른 회원국에게 개방을 후퇴하는 것도 아니다.
프레시안: EU가 한·EU FTA에서 WTO보다 개방을 후퇴한 것이 있는가?
송기호: 있다. WTO 협정을 보면, 포르투갈은 WTO 협정에서는 2000 제곱미터 이상의 대규모 백화점에 대해서만 경제적 수요심사를 해서 선별적으로 개방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번 한·EU FTA에서는 모든 백화점으로 그 대상을 오히려 확대했다.
“같은 국회에서 모순되는 두 제도 허용?…법치주의 아니다”
프레시안: 평소 유통법과 상생법의 중요성을 여러 번 강조했다.
▲ 송기호 변호사. ⓒ프레시안(손문상)
송기호: 그렇다. 지난해 11월 국회를 통과한 유통법과 상생법이다.
지금 한·EU 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하기 위해 모인 국회와 지난해 유통법과 상생법을 합의 통과 시킨 국회는 서로 같다. 똑같은 국회의원들이 모인, 같은 국회다. 같은 국회에서 서로 모순되는 두 개의 제도를 허용하는 것은 법치주의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쪽을 택해야 한다. 지난해 통과된 유통법과 상생법이 살아 남아야 한다. 이들 법안은 당시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프레시안: 한국은 자영업 비중이 높은 나라다. 대기업 퇴직자들이 흔히 택하는 진로 역시 자영업이다. 한·EU FTA가 중소 자영업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안을 무력화한다는 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송기호: 지난해 11월 통과된 유통법은 동네 재래시장을 ‘전통 상업보존구역’으로 정해서 그로부터 500 미터 안에서는 대기업 슈퍼마켓을 못하게 했다. 또 당시 함께 통과된 상생법은 대기업 직영뿐 아니라, ‘프랜차이즈’ 형태의 대기업 슈퍼마켓이 진입하는 것을 조정하도록 했다. 중소 상인들의 경영 안정에 현저하게 나쁜 영향을 주는 경우 사업조정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중소기업청장은 해당 대기업 등에 사업의 개시 시기를 연기하거나 축소하도록 할 수 있다. 그런데 한·EU FTA가 발효되면, 이들 법을 EU 27개 국의 유통 회사들에게 적용할 수 없게 된다. 한국은 한·EU FTA 협정문에 중소상인 보호 조치를 명시하지 않았다.
프레시안: 어떻게 하면 한국도 FTA에 이를 반영할 수 있나?
송기호: 이 부분은 재협상을 통해 고칠 수 있다. 벨기에, 프랑스, 이탈리아, 덴마크 등 유럽 국가들이 백화점의 입점 심사를 하겠다고 한 것처럼 한국은 기업형 슈퍼에 대해 입점 심사를 하겠다고 표시하면 된다.
“지금 상황에서 우리 농산물만으로 학교 급식하면, 한·EU FTA 위반”
프레시안: 정치권에서 복지 논쟁이 달아올랐다. 무상급식 공약의 성공이 발단이었다. 그런데 한·EU FTA가 발효되면 무상급식은 어떻게 되나?
송기호: 상당수 시도 교육청이 우리 농산물로 친환경무상급식을 시행 중이다. 국내 농산물로 학교 급식을 하는 것은 복지 차원만이 아니라 환경과 농업을 살리는 일이다. 매우 의미가 깊다. 그런데 한·EU FTA가 발효되면, 유럽이 한국의 무상 급식에 한국산 농산물을 사용하는 것이 FTA 위반이라고 문제삼을 수 있다.
프레시안: 왜 그런가?
송기호: 무상급식에는 FTA 정부조달조항이 적용된다. 그런데 유럽은 학교급식에서는 유럽산만을 써도 되도록 예외를 두었다. 그러나 한국은 그런 예외를 두지 않았다. 이런 불평등을 이번 한·EU FTA에서 바로잡지 못했다.
프레시안: 정부는 WTO 정부조달협정 협상에서 이를 반영할 수 있다고 했다.
송기호: 바로 그 점이 문제다. 한국이 학교급식에서 한국산 농산물을 사용하겠다고 하는 것은 아직 WTO 정부조달협정에서 타결되지 않았다. 현재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번 한·EU FTA에서부터 학교급식에는 한국산을 쓰겠다는 내용을 명시적으로 포함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게 없다. 지금 상황에서는 한국이 학교급식에서 국내산 농산물만을 쓰면, 한·EU FTA 위반이 된다.
프레시안: 지난 2005년에 전북 의회가 전북 급식에 전북 농산물을 우선적으로 쓰도록 조례로 만들었는데 WTO 규정 위반이라고 제소당했다.
송기호: 그렇다. 당시 대법원은 급식조례에 우리농산물을 쓰도록 하면 WTO 위반이라고 했다. 한·EU FTA에서 우리 농산물을 무상급식에서 사용할 수 있다고 해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학교 급식에 EU 농산물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제소당할 수 있다. 정부 설명처럼 현재 WTO 협상에서 그런 방향으로 이야기되고 있다는 것으로는 막을 수 없다.
“원포인트 재협상, EU가 거부할 명분 없다”
프레시안: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송기호: 이 역시 원포인트 재협상을 통해 바로잡아야 하는 부분이다. EU 역시 이를 거부할 명분이 없다. 자신들이 보호 받는 부분에 대해 동등한 보호를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 설명에 의하더라도 EU 역시 한국과 같은 입장이라고 하므로 원포인트 재협상은 매우 쉬울 것이다.
프레시안: 만일 위와 같은 원포인트 재협상이 이루어진다면 한·EU FTA에 대해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송기호: 나는 원칙적으로 농업 강국과 맺는 FTA에는 반대한다. 그러나 원포인트 재협상이 이루어지고 국회가 합의하여 처리한다면, 그것은 국회의 적법한 권한 행사라고 생각한다.
/성현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