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기지 고엽제 오염, 조사도 보상받기도 어렵다
주둔군지위협정 따라
미군쪽 동의 없인 못해
조사착수에 시간 걸릴듯
피해사실 확인된다 해도
미 ‘오염자 부담’ 인정안해
주민 보상받기 쉽지 않아
주한미군이 1978년 고엽제를 대량 매립한 장소로 추정되는 경북 칠곡군 왜관면 캠프 캐럴 내부 헬기장의 모습. 칠곡/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환경조사 전망 및 문제점
20일 환경부와 경북도 등이 경북 칠곡군 왜관읍 ‘캠프 캐럴’의 고엽제 오염 여부를 조사하기 시작했지만 앞으로 오염 실태와 환경 피해 조사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환경부는 이날 미군기지에 들어가지 않고 주변에서 하천과 지하수 위치 등 오염 경로를 파악하기 위한 사전조사를 벌였다. 환경부 관계자는 “주둔군지위협정(SOFA) 때문에 미군기지 내 조사는 한국 정부 혼자서 착수할 수 없다”며 “시급한 문제인 만큼 주한미군과 공동조사를 하기 전까지 우선 주변 조사를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한미군도 이날 내부조사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은 보도자료를 통해 “(고엽제 매립에 대해) 주장을 한 사람들과 연락하고 환경·군수 담당 전문가들과 과거 자료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한·미 양국의 움직임이 곧바로 실효성 있는 공동조사로 발전할지는 미지수다. 이날 샤프 사령관도 “만약 발굴작업이 필요하다면 한국 정부 관계자들도 참관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공동조사를 언급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주둔군지위협정이 환경오염에 대한 미군의 소극적 태도의 든든한 ‘배경’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협정에 따라 미군기지 땅은 주한미군에 제공된 ‘공여지’로 규정돼, 미군이 이 땅을 배타적으로 사용·통제할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다뤄질 주둔군지위협정 환경분과위에서도 공동조사 여부와 방법, 시기 등을 결정하는 주도권은 미군이 쥐고 있다. 고이지선 녹색연합 정책위원은 “과거 사례를 봐도 기지 안이 오염된 증거가 없으면 미군은 최대한 조사를 미뤘다”며 “서울 녹사평역 일대의 토양 오염도 처음 의혹이 제기된 이후 공동조사가 본격화되기까지 1년 가까이 걸렸다”고 말했다.
한·미 공동조사가 진행되고 고엽제 매립과 환경오염이 확인돼도 넘어야 할 장애물은 많다. 주둔군지위협정에 따라 한국과 주한미군이 맺은 ‘환경보호에 대한 특별양해각서’가 ‘오염자 부담 원칙’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오염자 부담 원칙은 오염 발생자가 환경 피해를 복구해야 한다는 환경법체계에서 통용되는 원칙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전세계에 주둔한 미군은 ‘건강에 대한 급박하고 실질적인 위험’(KISE)에 대해서만 환경정화비용을 부담한다는 입장”이라며 “2009년 한국 정부가 실시하는 오염위해성 평가에 따른 오염도도 반영하기로 합의했지만, 환경정화비용을 산정하면서 한국과 미군의 의견 차는 여전히 클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환경정화에 합의해도 미국 연방의회에서 예산 승인을 받아야 하는 등 실제 정화작업을 마치는 데까지는 수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주민들의 피해 보상 절차도 마찬가지다. 주둔군지위협정에 따라 주민들이 보상을 받으려면 먼저 한국 정부를 상대로 피해배상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주민들이 법원에서 승소하면 한국 정부는 배상금을 우선 지급하고,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에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미군이 주변 환경피해를 인정하고 일괄적으로 배상금을 지급한 예는 없다.
오염된 미군기지의 사후 절차는 느림보에 가깝지만, 환경오염은 이와 관계없이 확산된다. 땅속에 매립된 고엽제는 지하수를 타고 하천으로 유입되면 암 발생률 증가 등 공중보건상 막대한 피해를 일으킨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성명을 내 “주한미군은 주둔군지위협정에 상관없이 환경오염 조사를 전향적으로 수용하고, 한국 정부는 미군과 협의가 잘 이뤄지지 않더라도 국민 건강 보호를 위해 강제적으로라도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기사등록 : 2011-05-20 오후 08:37:02 기사수정 : 2011-05-21 오전 01:2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