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의료 민영화 여론반발로 ‘유턴’
[한겨레] 이정애 기자
캐머런, 재정적자 해결 위한 건보개혁안 수정키로
‘공급자 완전경쟁→환자 이익때만 경쟁’ 여론 수용
영국 정부가 경쟁체제 도입·효율성 향상 등을 뼈대로 추진해온 국민건강보험(NHS) 개혁안을 수정하기로 했다. 의료 민영화를 부추겨 공공 의료 시스템이 악화할 것이란 민심의 우려를 수용한 것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14일 정부의 건보 개혁안에 대해 전문가들이 내놓은 검토 보고서의 핵심 권고사항을 모두 수용한 새 개혁안을 내놨다고 <비비시>(BBC) 방송이 보도했다.
‘건강보험 미래 포럼’이 내놓은 이 보고서는 의료 공급자끼리의 완전 경쟁을 도입하는 정부의 개혁안에 대해 환자에게 이익이 되는 경우에만 경쟁을 적용하도록 제한하는 등의 방안을 담았다. 의료 서비스에 무한 경쟁 체제를 도입하려고 했던 영국 정부의 건보 개혁안이 상당히 ‘물타기’된 안이다. 영국 정부는 다음주께 이런 내용이 담긴 건보 개혁안을 하원 보건위원회에 제출해, 논의를 거쳐 내년 5월께까지는 법제화한다는 방침이다.
캐머론 총리의 이런 ‘유턴’은 의료 민영화에 대한 반발 여론을 수용한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그는 이날 <데일리 메일> 기고에서 “(보건·의료 업계 등의 얘기를 들어보니) 환자들의 선택권 강화, 의료전문가들의 자유와 권한 강화, 불필요한 관료체계 축소 등을 뼈대로 한 우리의 (개혁) 방향은 옳지만, 일부 세부 사항에서 잘못된 게 있었다는 점을 알게됐다”며 “솔직히 국민들의 우려와 상관 없이 밀고 나갈 수도 있었겠지만, 이런 식으로 정부를 운영하고 싶지는 않았다”며 후퇴의 이유를 밝혔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만성적자에 시달리는 건보 재정을 해결하고 환자 중심적으로 의료 서비스를 현대화한다는 명분으로 60여년간 지속돼온 영국의 무상 의료시스템의 핵심인 건보 수술에 착수했다.
그 결과로, 일선 의사들에게 최대한 자율성을 부여해 관료적 간섭을 최소화하고, 민간 병원이 정부에서 운영하는 건보 병원과 환자를 놓고 폭넓게 경쟁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크게 완화하는 내용 등이 담긴 건보 개혁안을 내놨다. 경쟁을 통해 의료 서비스 질을 향상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올해 초 이런 건보 개혁안이 의회에 제출된 뒤, 보건·의료업계는 물론 공공노조 등에서 의료 민영화의 길을 터줄 뿐만 아니라 건보재정으로 민간기업의 배만 물리게 될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돼왔다. 이에 캐머런 총리는 10주 동안 보건·의료업계 관련자 수천여명을 만나 의견을 청취하는 한편, 건보 미래 포럼을 구성해 개혁안을 재검토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