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마켓 박카스는 치유할 수 없다
[34호] 2011년 07월 11일 (월) 17:21:37 우석균 info@ilemonde.com
올해 초 보건복지부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에서는 (일반의약품을) 슈퍼에서도 살 수 있다던데”라고 한 발언으로 시작되었던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 문제가 최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언론에서는 ‘제2의 의약전쟁’이라 부르고 있고, 겉으로는 의사와 약사 간의 갈등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문제를 단순하게 직능 간 ‘밥그릇 싸움’으로만 바라보면 핵심을 놓칠 우려가 있다.
애초 이 문제는 대한의사협회가 가정상비약을 슈퍼에서도 구입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을 펼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원래 의약품 오남용을 가장 우려해야 할 대한의사단체가 ‘편리성’에 초점을 맞춘 주장을 한 것부터가 납득하기 어렵다. 의사협회가 그런 주장을 하려면 전문의약품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하자는 대한약사회의 주장에도 동의했어야 한다. 그러나 의사협회는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을 늘리자는 주장에는 갑자기 약의 안전성 문제를 들어 반대했다.
의사·약사 모두 모순된 주장
약사회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일반의약품의 슈퍼 판매는 약의 부작용을 들어 반대하다가, 의사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의 일반의약품 전환을 주장하고 있다. 안전성이 문제가 되어도 말이다. 일관되지도 않고, 국민건강을 위하는 태도도 아니다. 이런 양극단의 주장 때문에 국민의 눈에는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가 의사와 약사 간의 밥그릇 싸움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애초 의사협회는 왜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를 주장했을까? 그 답은 의사협회가 지난 10년간 주장해온 ‘의약분업제도 철폐’ 주장에서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가 보건복지부의 방침으로 결정되자 일부 의사들은 분업 철폐를 외치며 거리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의원이나 병원에서 진료도 하고 약도 지으면 편리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의사협회의 주장이다. 그야말로 의약분업을 무로 돌리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주장하려면 병원에 갈 필요도 없이 약국에서 웬만한 약은 다 지을 수 있게 하자고 주장하는 약사회의 주장에도 반대할 명분이 없는 것 아닐까? 10년간 정착된 의약분업을 허물겠다는 의사협회의 주장은 약품의 오남용을 막는 데 가장 앞장서야 할 전문가로서 할 이야기는 아니다. 여기에 약 선택과 판매에 대한 불법적인 금전적 대가(리베이트 등 이권) 문제가 있는 것을 고려하면, 의사협회의 주장은 국민 편익을 내세운 노골적인 직능이기주의라고 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의사-약사 간의 갈등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번에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 결정이 급하게 이루어진 배경에는 또 하나의 당사자로 조·중·동 보수언론이 있다. 복지부가 “시중에 약을 깔아놓을지가 문제가 아니라 약국이 문 닫는 시간에 발생하는 응급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에 관한 문제”라는 인식하에 의약품 재분류 등을 8월부터 시행하겠다고 하자 보수언론들은 ‘복지부가 아니라 약사부냐’라는 등의 반응을 보이며 복지부를 비난했다. <조선일보>는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가 “이번 정부가 총력을 기울여 추진해온 ‘서비스 선진화 방안’ 중 대표적인 것”이며 “이명박 대통령까지 상비약의 슈퍼 판매를 언급”한 사안이라 했고, <중앙일보>는 아예 사설에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아니라 약사회를 위한 정부라는 비아냥”이 나오고 있다면서 “시민들은 십수 년 전부터 가정상비약 정도는 슈퍼에서 팔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고 “약품에 관한 규제가 강한 미국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다”면서 “대통령의 결단을 다시 한번 촉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나섰다.
▲ <환자>, 2000-이정우
결국 6월 8일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진노’했고, 복지부는 일반의약품 약국 외 판매를 허용하고 전문-일반의약품 분류체계를 상시화하며, 전문의약품 20개 성분을 일반의약품으로 바꾸는 것을 검토하겠다는 태도로 선회했다. 대통령이 국민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직접 나서니 오랜만에 좋은 일을 했다고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핵심은 국민 불편 해소가 아니다. 바로 종합편성채널(종편) 나눠주기다.
이들 신문사의 방송 진출이 다가오면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광고시장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1월에 내놓은 방안이 광고를 할 수 없는 전문의약품을 일반의약품으로 바꾸겠다는 것이었다.(1) 이후 기획재정부는 ‘서비스 선진화 방안’을 통해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의 8 대 2 비율을 6 대 4로 바꾸고, 의약품 분류체계를 상시화하겠다고 밝혔다.(2) 그리고 지금 복지부는 20개 성분을 일반의약품으로 바꾸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한다.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 종편의 돈줄
약품 20개 정도로 광고시장이 넓어질지에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전문의약품 광고가 허용된 미국을 보면 2005년 상위 20개 의약품의 총광고액은 22억 달러(약 2조3천억 원)로 전체 의약품 광고시장의 반이 넘는다.(3) 여기에 지금 복지부가 검토하는 의약품은 가장 잘 팔릴 수 있는 약 20개 성분이고,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것과 유사한 약들이 상당수다. 게다가 상시적으로 전문-일반의약품을 분류하는 체계를 만들면, 앞으로 일반의약품이 얼마나 많아질지 모른다. 종편을 위한 방송광고시장 넓히기로 보는 것이 결코 과장된 이야기가 아니다.
더욱이 방송광고가 허용되면 가장 많이 팔리는 약은 제네릭, 즉 중소제약회사의 값싼 동일 성분의 약이 아니라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비싼 약들이다. 이들이 가장 광고를 많이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약국에 가서 “타이레놀 주세요”라고 하지 “아세트아미노펜 주세요”라고 하진 않는다. 또 일반의약품으로 재분류하는 것을 검토 중인 약 중에는 현재 병원에서도 내시경검사를 할 때나 쓸 수 있을 정도의 비싼 약들도 있다. 이런 약들이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되면, 속 아플 때 먹는 약으로 GSK의 잔탁이나 아스트라제네카의 로섹이 가장 많이 팔릴 것이다. 이 약들은 모두 세계 10대 제약사의 제품이다. 국민은 다국적제약사의 잔탁이나 로섹과 성분명이 동일하지만 더 저렴한 국내 중소제약사의 약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지 못하게 될 테고, 이것이 일반적인 약 이름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직능 밥그릇 싸움, 피해자는 국민
또한 이 브랜드 약품들의 광고가 늘어나는 만큼 조·중·동의 방송광고는 늘겠지만, 그 광고비는 의약품 가격에 포함되어 고스란히 국민이 지불해야 할 것이다. 약사회를 비판하던 <조선일보> 등은 이미 약사회의 일반의약품 전환 요구를 다룬 기사를 비중 있게 싣고 있다. 보수언론들도 이번 ‘의약품 전쟁’의 숨은 이해당사자일 뿐이다.
이런 이해당사자들의 싸움 속에서 국민의 고충 문제는 사라지고 말았다. 우선 의약품의 분류 문제는 약의 안전성과 접근성을 따져 하나하나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전문-일반의약품 분류나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 문제도 그렇다. ‘약은 독’이라는 말도 있듯이 흔히 안전하게 생각하는 약 가운데 나중에 심각한 부작용이 밝혀지거나 승인이 취소되는 경우도 많다. 어린이들에게 라이 증후군(Reye Syndrome)을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밝혀진 아스피린이 대표적이다. 박카스만 해도 그렇다. 카페인 함유 드링크를 슈퍼에서 팔지 말지는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 박카스에는 카페인이 30mg이 들어 있는데, 지금은 금지됐으나 예전에는 잠 안 오는 약의 대명사였던 ‘타이밍’의 카페인 함유량이 50mg이었다. 미국에서는 이미 카페인 함유 드링크 때문에 청소년의 카페인 음료 과잉 다이어트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카페인이 든 커피와 무엇이 다른가라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커피를 어린이에게 먹이지는 않지만 슈퍼에서 팔리는 음료수는 누구나 먹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일반의약품(약)과 음료수는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의 핵심 논점인 국민의 고충은 밤이나 주말에 아프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밤에 아이가 열이 나거나 배가 아픈 경험을 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심야나 주말에 큰 병원 응급실에 가지 않고 해결하는 방법, 이것이 약을 슈퍼에서 판다는 이야기에 사람들이 솔깃한 이유였다. 다시 말해 해결해야 할 문제는 전세계적으로 공통된 문제, 병의원과 약국을 이용하기 어려운 시간에 아프면 어떻게 하는가 하는 문제, 즉 야간과 주말 ‘진료 공백’ 문제다. 다른 나라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진료공백을 메울 방법, 얼마든지 있다
네덜란드의 예를 들어보자. 네덜란드는 야간과 금요일 저녁부터 월요일에 동네의원들이 문을 열기 전까지 전국 105개의 ‘시간 외 진료센터’를 중심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이 진료센터들은 오후 5시부터 아침 8시까지, 그리고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까지 주치의 서비스를 대신한다. 최소 두 명의 당직의사와 보조인력, 응급이동차량과 운전사가 있다. 당직은 해당 지역 의사들이 돌아가면서 맡는다.
시간 외 진료센터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전화 상담이다. 밤이나 주말에도 몸이 아프면 전화로 상담 받을 수 있다. 전화로 해결이 안 되면 의사가 왕진을 가기도 한다. 심각한 상태라면 큰 병원으로 가도록 해준다. 영국이나 노르웨이 등도 비슷한 제도를 운영한다.(4) 놀라운 것은 시간 외 진료센터를 이용해도 환자들의 본인부담이 없다는 사실이다. 왜냐, 무상의료제도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도 인구 5만 명당 ‘휴일야간질병센터’ 1곳을 지방공공단체 등이 운영하고 동네 의사·약사들이 당직을 서며 진료 공백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5)
한국은 어떤가? 밤에 아프면 큰 병원 응급실이 아니고서는 해결할 곳이 없다. 전화 상담할 곳도 없는데 왕진은 꿈같은 이야기다. 한국에서도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당장 시간 외 진료센터를 열 수 있다. 도시 지역에서 인구 5만 명당 혹은 10만 명당 1개꼴로 주민센터 등의 공간에 시간 외 진료센터를 열어 야간과 주말에 의사와 약사들이 진료도 하고 약도 주고 전화 상담도 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것이다. 물론 그의 말대로 ‘미국에서는 슈퍼에서 약을 판다’. 그러나 미국은 아무런 의료보험이 없는 사람이 인구의 6분의 1가량인 4800만 명이나 되고, 의료보험이 있어도 의사 한 번 만나려면 수백 달러가 드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중앙일보> 주장과는 달리 미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의약품 규제가 약한 나라이고, 슈퍼에서 약까지 팔 수밖에 없다.(6)
일반의약품을 슈퍼에서 판다고 야간과 주말의 진료 공백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는 국민의 고충 해결이 아니라, 안전성을 포기하면서까지 국민 건강을 시장에 내맡기는 것일 뿐이며, 정부가 할 일을 시장에 떠넘기는 무책임한 행위일 뿐이다. 정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주말과 야간의 진료 공백을 해결할 의료시스템을 만들고, 거기에 의사와 약사를 앉히는 것이다.
글·우석균
의사, 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 부대표.
<각주>
(1) ‘방송광고 금지품목 규제 완화 관련 방통위 의견’, 2011년 1월 11일.
(2) 기재부, ‘서비스산업 선진화평가 및 향후 추진방향’, 2011년 제9차 경제정책조정회의, 2011년 4월 27일.
(3) 우석균, ‘병원 및 전문의약품 방송광고는 왜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가?’ 토론회 발제문, 2011년 1월 11일.
(4) 조홍준, ‘노르웨이 주치의제도 도입:구체적인 내용과 한국에 대한 함의’, <대한가정의학회지>, 2001. 건강보험공단, ‘유럽일차의료의 현황과 주치의 제도 연구보고서’, 2007년 2월.
(5)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휴일 및 야간진료 활성화 방안 연구보고서’, 2005년 6월.
(6)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건강과 대안 이슈페이퍼, 2011년 6월 1일, www.chs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