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사설 영국 시위사태, 복지 무너뜨린 재정정책이 부른 재난

[사설] 영국 시위사태, 복지 무너뜨린 재정정책이 부른 재난
[한겨레]  

등록 : 20110810 19:00                

영국 시위사태가 심상찮다. 지난 4일 런던 북부 토트넘에서 시작된 폭력시위가 삽시간에 수도권 전체로 확산된 데 이어 제2도시 버밍엄을 비롯해 리버풀, 맨체스터 등 영국 전역으로 번졌다. ‘루퍼트 머독 스캔들’로 흔들린 캐머런의 보수연립정권으로선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복지비 삭감 중심의 긴축정책이 촉발한 이번 사태를 복지논쟁이 한창인 우리 사회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토트넘의 29살 흑인 가장이 경찰 검문 과정에서 사살당한 사건으로 촉발된 소규모 지역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번 시위의 중심세력은 10대와 젊은이들이다. “우리는 일자리도 없고 돈도 없다”는 이들은 “다른 사람들은 공짜로 물건을 얻고 있는데, 왜 우리는 안 되나”라며 자동차와 건물을 무차별 불태우고 가게를 습격·약탈했다. 이들의 난폭행위는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그것을 통해 자신들의 처지와 저항의지를 세상에 알리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도 불안하고 미래도 불확실한 젊은이들이 길거리로 몰려나온 것이다.

이번 사태는 지난겨울 3배나 오른 등록금에 항의하는 학생시위와 올해 봄 노동자 시위에서 이미 그 조짐이 보였다. 이는 지난해 5월 집권한 캐머런 정권이 공공부문을 최대 30%까지 줄이는 긴축정책을 편 결과다. 올해 국가부채가 처음으로 1조파운드를 넘어 국내총생산의 76.5%에 이른 상황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지만 사회복지비 대폭 삭감이 부를 파국적 상황은 이미 오래전에 예고됐다.

빈곤율 14%(2006년)인 영국의 지난해 실업률은 7.9%였고 청년층 실업률은 20%가 넘었다. 이런 상황에서 취해진 긴축정책은 가난한 청년들을 ‘분노의 세대’로 바꿔놨다. 토트넘에선 지난해 실업수당 청구자가 10% 이상 늘었지만, 올해 청소년 프로그램 예산은 최고 75%나 깎였다. 부자 감세는 유지한 채 복지비 삭감을 기조로 긴축정책을 취함에 따라 가진 자들은 갈수록 부를 늘리는 대신 약자들은 더욱 고통스러워지는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마거릿 대처의 신자유주의 이래 시들해졌던 영국 사회·노동운동을 캐머런이 되살려주고 있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이번 시위사태는 고통분담 없는 무차별적인 복지비용 삭감 정책이 공동체 분열 등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영국의 교훈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