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사설 : 한-미 자유무역협정 졸속 처리는 주권 포기다

[사설] 한-미 자유무역협정 졸속 처리는 주권 포기다
[한겨레]  

등록 : 20111013 19:18 | 수정 : 20111013 21:48                

미국 의회가 어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행법률안을 통과시켜 이제 우리 국회의 비준동의안 처리 여부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이달 안 처리 방침을 밝혔고,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결사 저지’를 선언해 충돌이 예상된다. 단지 미 의회가 통과시켰다는 이유로 우리 국회가 비준동의안을 서둘러야 할 이유는 없다. 졸속으로 처리하면 자칫 국가적 재앙을 맞을 수 있다.
미 의회는 오바마 대통령이 제출한 이행법률안을 회기일 기준으로 6일 만에 통과시켰다. 언뜻 초고속 동의로 보인다. 하지만 그동안의 경과를 되짚어보면 사실은 다르다. 미 의회는 지난 2007년 4월 한-미 협상이 최초 타결된 뒤부터 무역위원회(ITC) 산하 30여곳의 자문위원회 보고서 등을 토대로 협정 내용을 샅샅이 검토해왔다. 필요하면 바꾸게 하기도 했다. 2007년 6월과 지난해 12월의 두 차례 추가협상은 의회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였다.

반면 우리 국회는 시종일관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에 끌려왔다. 외교부가 정보를 제공하지 않거나 허위보고 하면 협정문 내용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실제로 2008년 4월 통일외교통상위원회는 협정문 한글본이 번역오류투성이인 것도 모른 채 한나라당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정부가 번역오류를 수정해 지난 6월 다시 제출한 비준동의안에 대해서도 국회는 ‘묻지마 동의’를 해야 할 상황이다. 외교부가 296건의 번역오류 수정본을 ‘외교문서’라며 제출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국가 제소제 등 이른바 독소조항에 대해서도 국회에서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토론한 적이 한 번도 없다. 협정 발효 뒤 농어민과 영세상인, 중소기업 등에 끼칠 피해 규모도 파악하지 못했다. 정부가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고 있으나 ‘농어민 후계자 적극 양성’ 등 협정과 상관없는 기존 정책을 짜깁기한 수준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은 양국간 교역 장벽을 해소하는 데 그치지 않고 법과 제도를 광범위하게 바꾸는 법안이다. 국회가 비준동의 절차를 마치려면 양허표를 포함해 무려 1259쪽에 이르는 협정문에다 관련 법률 14가지를 심의해야 한다. 헌법적 가치와 사법주권까지 흔드는 조항도 있다. 이런 중차대한 법안을 국회가 내용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처리한다면 주권 포기와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