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 ‘세계은행 총재 김용’ 반대, 왜?
보건 전문가보다는 ‘친서방’ 제3세계 후보가 낫다?
김봉규 기자
세계은행(WB) 총재 자리에 적합한 인물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총재직을 독식해 온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계 이민 1.5세대이자 개도국 보건 전문가인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을 총재 후보로 지명하자 신자유주의 진영에서 불편한 시각을 보이는 등 국적 문제를 떠난 논쟁으로까지 비화되는 양상이다.
영국에서 발간되는 세계적인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난달 31일자 기사에서 김 총장을 깎아내리고 나이지리아의 재무장관 응고지 오콘조웨알라를 최적의 후보로 추켜세운 것도 이러한 논쟁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
이 잡지는 “빈곤국가를 방문한 세계은행의 경제학자들은 정부에 사적인 인사를 자제하고 중요한 공직을 최고의 후보로 채우라고 조언한다”며 “세계은행은 그 조언을 (스스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잡지는 오콘조웨알라를 세계은행 총재직에 필요한 공직 경험, 경제·금융지식을 모두 갖춘 정통 경제학자로, 또 다른 후보인 콜롬비아의 전 재무장관 호세 안토니오 오캄포를 유엔(UN) 근무 경험이 있는 관료 출신으로 구분했다. 그러면서 이 두 후보가 세계은행 총재에 맞는 재능을 갖춘 후보라고 평가했다.
▲ 제3세계 출신 세계은행 총재 후보인 나이지리아의 응고지 오콘조웨알라 재무장관. ⓒ로이터=뉴시스
<이코노미스트>는 김용 총장에 대해서는 “(그가 설립한 파트너스 인 헬스(PIH)는) 자선단체지 개발은행이 아니다”라며 “오바마가 그를 지명하지 않았다면 그는 누가 작성한 어떤 세계은행 총재 후보 리스트에도 오르지 못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잡지는 또 “그는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직에 크리스틴 라가르드를 꽂아 넣었던 서방의 오만함을 더 나쁘게 드러낸 예”라며 “(라가르드의 전 직책인) 프랑스 재무장관직은 총재직에 적합한 경력이다”라고 덧붙였다.
잡지는 이어 오콘조웨알라가 정통 경제학자로서 나이지리아의 부패를 청산하고 빈곤을 극복해려 노력해왔다면서, 반면 김 총장의 개발 이슈에 대한 관점은 예측하기 더 어렵다고 주장했다.
잡지는 그 근거로 김 총장이 2000년 공동 저술한 <성장에 목숨 걸기>에서 성장 위주 정책이 많은 이들의 삶을 악화시켰다는 주장을 펴는가 하면 쿠바를 두고 ‘사회 평등을 우선시했다’라고 칭찬했다는 사실을 환기시켰다. 이어 “김용 총장이 ‘월가 점령 운동’을 이끌길 바랐다면 그런 관점은 특별할 게 없었을 것”이라며 “성장은 가난한 이들을 돕기 때문에 은행은 성장을 촉진한다. 이에 김 총장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의술에 매진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잡지는 기사 말미에 세계은행과 IMF의 총재를 각각 미국과 유럽이 독차지해온 “낡은 전통”을 오콘조웨알라를 내세운 ‘능력주의’로 깨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잡지가 오콘조웨알라 적합론을 내세운 것에는 다른 ‘본심’이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은 ‘신자유주의의 대변지’라는 평가를 받는 <이코노미스트>가 제3세계 출신 후보를 지지한데 대해 “오히려 잡지의 보수적인 면을 드러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수 십 년간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나 금융가, 관료 출신으로 채워져 오던 총재직에 ‘익숙하지 않은 존재’인 보건 전문가가 들어서는 것보다는 제3세계 출신이지만 ‘기존 질서’에 편입되어 있는 사람이 더 낫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정승일 위원은 “이코노미스트가 ‘정통 경제학자’라고 평가한 인물이라면 대부분 미국, 유럽에서 공부한 사람들로 (출신국의 사정을 토대로 한) 의식을 가진 이들이 전혀 아니다”라며 “1970년대 이후 ‘장사’에 집중하던 세계은행이 기존의 보건복지 인프라 사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데 상대적으로 적임자인 김 총장에 대해 감정이 불편한 유럽 측의 관점이 기사에 반영됐을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도 “개도국 출신이라고 개도국 이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미국의 고위 관료나 기존 금융질서에 소속된 이들의 ‘회전문 인사’라는 비판을 받던 총재직에 상대적으로 연관성이 적은 김 총장이 지명된 것은 신선한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의 이해관계에 좌우되어 오던 세계은행의 수장을 관료나 금융가 출신이 아닌 인물을 내세워 전반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은 서방 내 진보 진영에서 꾸준히 제기한 문제다. 김 총장이 지명되기 전 출사표를 던졌던 제프리 삭스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개도국 개발 분야의 전문가로 대중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미국 등 일부 ‘대주주’의 입김에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내릴 적임자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이후 진보 진영 내에서도 삭스 교수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로 악명을 떨쳤던 과거가 있음을 들면서 김 총장에게 기대를 거는 이들도 나왔다. 삭스 교수는 김 총장의 지명 소식이 들리자 지지 의사를 밝히며 출마를 철회했다.
/김봉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