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정부가 숫자놀음으로 광우병 진실 호도… 받아쓰는 언론도 문제”

정부가 숫자놀음으로 광우병 진실 호도… 받아쓰는 언론도 문제”
이호준·이재덕 기자 hjlee@kyunghyang.com

ㆍ미국 광우병 긴급 토론회

“정형, 비정형 광우병 이야기는 하고 싶지도 않다. 왜 우리 국민들이 이런 것들을 알고 논의해야 하나. 이런 것들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의 비극이다.”

광우병 전문가인 우희종 서울대 교수(수의학)는 경향신문 등 4개 언론사 공동주최로 2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미 광우병 발생, 한국 정부의 대응과 문제점’ 토론회에서 이렇게 입을 뗐다.

우 교수는 “우리나라가 유독 광우병 문제에 민감한 것은 미국을 미워하거나 반대하는 혹은 이념적 문제 때문이 아니라 과학과 국제기준 문제를 정치경제 논리로 풀어간 현 정부 때문”이라고 못박으면서 “이미 끝난 위험성 논란을 다시 다루는 것은 뼛속까지 친미인 정부가 (쇠고기 시장을) 완전 개방한 뒷수습에 이용되는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를 위한 대규모 촛불시위가 열린 지 꼭 4년 만에 개최된 토론회에서는 “2008년 쇠고기 협상 때부터 지금까지 미국산 쇠고기와 관련된 진실을 호도하고 혼란을 부추긴 정부와 주류언론의 ‘혹세무민 네트워크’ ”(이강택 언론노조 위원장)를 질타하는 발언들이 쏟아졌다. 토론회에는 우 교수를 비롯해, 조능희 광우병편 책임PD(프로듀서), 박상표 국민건강을위한수의사연대 정책국장, 송기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 등 촛불시위 2년 뒤인 2010년 이명박 대통령이 “(광우병 관련) 많은 억측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음에도 당시 참여했던 지식인과 의학계 인사 어느 누구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고 힐난했던 주역들이 모두 모였다.

경향신문·한겨레신문 등 4개 언론사가 2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미국 4번째 광우병 발생, 한국 정부의 대응과 그 문제’를 주제로 공동주최한 긴급토론회에서 박상표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정책국장이 정부의 광우병 졸속 대응을 지적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우희종 서울대 교수, 박상표 정책국장,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 |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 안전문제를 이념으로 왜곡
수입중단 권한 법률로 보장
농장 출입 미국에 요구해야

■ 달라지지 않은 현실. 반복되는 정부와 주류 언론의 진실 호도

박상표 정책국장은 “2008년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쇠고기도 안전하다며 촛불 시민들을 난동이라고 표현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30개월 미만만 수입하니 안심하라고 이야기하는 촌극을 목도하고 있다”면서 “미국의 광우병 검역체계는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하나 없는 허점투성이인데도 또다시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연간 3400만마리를 도축하는 미국에서 0.1% 수준인 4만마리만 광우병 검사를 받고, 소 육골분을 소에게 직접 먹이지는 않지만 다른 가축을 거쳐 다시 소로 이어지는 동물성 사료 사슬의 문제점 등이 하나도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서 “안전성” 운운은 또 다른 진실 호도라는 설명이다.

박 국장은 “광우병 발표 당시 미 정부 당국자는 죽은 젖소가 사육됐던 농장과 연령 등 간단한 정보조차 공개하지 못했지만 당시 미 서부지역 낙농협회장은 구체적인 정보를 언론을 통해 공개했다”면서 “미 정부가 광우병 소에 대한 기본적인 이력정보조차 확보하지 못했다는 뜻으로 미 광우병 검역체계의 허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광우병 보도로 홍역을 치렀던 조능희 PD는 “정부의 거짓말과 관변학자의 이상한 숫자놀음 그리고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쓰는 언론의 합작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조 PD는 “ ‘미국의 광우병 검역 점수가 우리나라에 비해 13배나 높다’는 기사가 대표적인 진실 호도 기사”라며 “국제수역사무국(OIE) 점수는 검역한 마릿수당 점수를 계산하는 방식인데 연간 3400만마리를 도축하는 미국의 점수를 300만마리인 우리와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 같은 자료를 배포하고 언론이 그대로 받아쓰는 것을 보고 정부 담당자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 것”이라면서 “이런 식의 진실 호도 기사가 한둘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광우병이 확인된 소는 우리나라에서 수입하지 않는 젖소’라는 기사나 ‘정형 광우병은 이제 사라졌다’는 식의 보도 역시 정부 관계자나 관변학자의 주장을 확인도 없이 사실인 양 보도한 기사라고 꼬집었다. 살아 있는 젖소는 당연히 수입되지 않지만 우리나라는 젖소와 육우에 관계없이 ‘쇠고기’를 수입하고 있으며, OIE 홈페이지만 확인해도 정형 광우병이 지난해까지도 발병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런 사실을 확인조차 하지 않고 언론이 정부에 유리한 여론형성을 돕고 있다는 지적이다.

■ 수입중단은 명시된 권리, 재협상까지 이끌어내야

송기호 변호사는 “지금 우리가 낸 세금을 가지고 조사단이 미국에 가 있지만 농장주가 열쇠를 안 주고 있다는 이유로 현장에도 못 들어가고 있다”며 정부의 무능을 비판했다. 그는 “못 가고 있는 게 아니라 안 가고 있는 것”이라며 “농장 출입권을 가진 미국 정부에 당당히 요구하고 미국 정부도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 변호사는 특히 “우리 국회가 가축전염병예방법을 지정해 정부의 수입 중단 권한을 고시가 아닌 강력한 법률로 보장했다”면서 “정부는 아니라고 하지만 분명히 수입을 중단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권한을 행사해서 미국의 사료조치 및 이력추적 제도가 완비될 때까지 우선 쇠고기 가공제품의 수입을 일시적으로 중단한 뒤, 수입위생조건을 재협상하는 절차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재협상을 통해 수입위생조건에 수입중단조치를 명문화하는 한편, 현재 민간자율에 맡겨진 30개월령 미만 쇠고기 수입도 위생조건에 못박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정부가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들어오기 때문에 우리는 안전하다고 하면서 홍보를 하는데 사실 촛불시민 덕분에 30개월 이상에서 30개월 미만으로 재협상을 하게 되지 않았느냐”고 꼬집었다. 그는 “당시 정부가 촛불난동이라고 표현했던 것에 대해 반성하고 촛불시민들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