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환자 체험 갔다가 하마터면 치질 수술 받을 뻔한 사연

        
환자 체험 갔다가 하마터면 치질 수술 받을 뻔한 사연

등록 : 2012.05.05 13:08 수정 : 2012.05.05 15:30

외과진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하어영. 일산병원./2012.4.25/한겨레21박승화

기획연재 ‘병원 OTL – 의료상업화 보고서’ ① 과잉 진료 권하는 병원]

모의 환자 체험갔던 하어영 기자,
치질 수술 강권한 병원과 필요 없다는 병원 사이에서 고민…
‘국민 수술’ 1위 질환 치질, 양극단 진단 겪으며
환자 불안 키워 수술 건수 늘이는 병원의 기술을 맛보다

만져지지 않았다.

“따뜻한 물에 담그고요. 좌변기에 앉듯 앉아서 조심스럽게 만져보면 만져질 거예요.” 의사의 말대로 조심스럽게 손을 더 깊숙이 넣어봤다. ‘의사가 분명히 만져질 만큼 크다고 했는데….’ 만져지지 않았다. “여보, 뭐해?” 욕실을 20분째 차지하고 있는 남편이 궁금했는지 아내가 밖에서 말을 걸어왔다. “큰 거 봐?” 재차 물었다. “아니, 그냥.”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어쨌거나 만져지지 않았다.

“수술은 5분밖에 안 걸려요. 변기가 빨갛게…”

모의 환자가 되려고 인터넷을 검색한 건 4월 초였다. 키워드를 ‘치질’로 했다. 순식간에 병원 20여 개가 나열됐다. ‘심한 치질, 뿌리까지 모두 제거’ ‘수술 후 걸어나가 당일 퇴원’ ‘외래 진료 21만 건’ ‘보건복지부 지정 대장항문 전문병원’. 치질로 고생하는 일반인들이 어떤 근심을 갖고 있는지가 병원의 선전 문구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한의원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수술 전문이라고 내세우고 있었다. 그 가운데 공공기관의 인증을 앞세운 병원 하나를 골랐다.

서울 강남의 5층짜리 빌딩에 있었다. 치질만이 아니라 하지정맥류, 탈장 등 수술 전문임을 앞세워 선전하고 있었다. 규모로는 2007년 기준으로 전국 5위 안에 드는 치질 수술 병원다웠다. 전날 예약을 받지 않았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진단과 입원, 수술이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대기하고 있는 환자가 6명 정도 있었다. 데스크에 접수를 하고 몇 분 안 돼 의사가 호명했다. 회전수가 빠른 듯했다. 의사는 진료실로 직접 안내했다.

“어디가 불편하세요?”

오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지만 의사는 피로해 보였다. 곧 점심시간이었지만 기자 뒤로 기다리는 환자가 4명 정도 더 있었다. 최근 배변 뒤 휴지에 피가 묻어나왔다고 답했다.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1년에 한두 번 정도였고 고통스럽지도 않았다. 필름이 끊길 정도로 술을 마시고 난 다음날의 횟수와 거의 일치했다. ‘배변시 혈흔이 보인 적이 과거에도 있다’ ‘이 증상이 나타난 지는 1년이 넘었다’ 등의 얘기가 오갔다. 그러고는 진찰실 한켠의 침상에 새우잠 형태로 누웠다. 의사는 손으로 진찰했다. 곧바로 진단이 나왔다.

“치열 자체가 오래됐네요. 항문 뒤쪽을 보면 찢어져 있어요. 치질이 있어서 벽이 얇아져서 찢어진 거예요. 치질이 같이 있으면 잘 찢어지거든요. 항문 질환은 흉터가 생겨서 나을 때쯤 되면 다시 변이 나오면서 찢어지죠. 찢어졌다가 나으려고 했다가를 반복하면 두꺼워져요. 그 부분이 만져졌을 텐데요.”

“글쎄요. 손으로 만져보지는 않았지만, 변을 볼 때는 잘 모르겠던데요.”

“나중에 좌약 하거나 물속에 있을 때 한번 만져보면 두껍게 만져질 거예요. 두꺼운 느낌이 만져질 거예요. 상처가 벌어지니까 아픈 거고. 상처가 생기며 점점 더 두꺼워질 거예요. 치질이 있으니까 약한 거고. 수술하셔야 해요. 자, 그러면 오늘 수술받으시고, 내일모레 퇴원하시면 돼요.” 의사가 자연스럽게 수술 일정을 말했다.

“꼭 수술을 해야 하나요? 약으로는 안 되나요?”

“(수술 안 하면) 계속 반복적으로 그렇게(치열 증상과 치질) 되죠. 정 안 되면 1박이라도 하시고, 그것도 안 되면 이번 주말에라도 하세요. 약은 임시방편이에요. 상처가 있을 때 나으려면 그 부위는 안 써야 하거든요.”

그는 말을 이었다. “수술은 5분밖에 안 걸려요. 다만 앞으로는 큰 혈관이 찢어지면 변기가 빨갛게 될 정도로 피가 많이 나올 수도 있어요.”

모의 환자로 병원을 찾았다가 예상치 못한 진단을 받고 당황했다. 수술과 간단한 약물치료의 간극은 비용, 심리적 부담 등 생각보다 넓고 깊었다. 하지만 실제 고통을 느끼는 환자였다면 아마도 수술을 했을 것이다. 병원 벽을 차지하고 있던 병원윤리강령이 아직은 살아 있음을 믿는다. 아직까지는.<한겨레21> 박승화

“입가에 조금 찢어진 상처, 정도예요.”

피가 많이 날 수도 있다는 말에 시각적으로 두려움도 생겼다. 모의 환자로 온 주제에 당장이라도 수술을 해야 할 것만 같은 불안감이 치밀어올랐다. 수술 비용은 37만5천원. 7인실에 입원하면 되니 따로 입원비가 들지는 않는다고 했다. 주말을 이용해서 시간을 잡으라는 권유도 더해졌다.

같은 날 저녁, 아내에게 증상을 설명했다. 아내는 “병원에서 하라고 하면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일반적인 환자 가족의 반응이려니 했다. 하지만 모의 환자인 기자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만약 기자가 강남의 그 병원 앞에 살았고, 그날 피가 나왔고, 혹시나 싶어 들렀다면, 수술을 했을 것이다.

대조군을 찾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운영하는 공공병원으로 갔다. 이곳에도 항문 질환을 담당하는 의사가 있다. 예약을 확인하고 접수를 마치니 간호사가 먼저 찾았다. 어디가 불편해서 왔는지, 증상은 언제부터 나타났는지, 증상은 어느 정도나 지속되는지 등을 물었다. 당뇨·고혈압·결핵 등 주요 병력과 가족력을 물었다. 그리고 내시경실로 인도됐다.

대기자는 오히려 강남의 병원보다 많았다. 전문의가 치질만이 아니라 대장암 등까지 모두 맡고 있어서 그렇다는 게 간호사의 설명이었다. 예약을 하고 갔는데도 6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시경실로 안내를 받은 사람은 기자 혼자였다. 그곳에서 내시경을 통해 진단을 받았다. 의사의 말은 간단했다. “오케이, 입구가 좀 찢어졌네요. 금방 낫겠어요.” 브라운관 앞 의사가 갑자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내시경을 보던 의사도 사무실을 나섰다.

“따로 수술이나 치료가 필요 없는 건가요?”

2박3일 동안 입원해 수술을 해야 한다는 먼젓번 의사의 소견과 너무도 달랐으니 취재를 하는 모의 환자도 당황스러웠다.

“보세요. 입가가 찢어지면 조금만 상처가 나도 아프죠. 그 정도예요. 됐죠?”

“다른 곳에서는 수술하라고 하던데요?”

얼굴을 찡그리는 듯하더니, 간호사를 보며 “다음 분 들어오시라고 해요”라고 말한 뒤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약을 다 먹으면 다시 와야 하는 건 아닌가요?”

의사에게 이미 눈앞의 환자는 관심 사안이 아니었다. 무심한 눈빛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간호사가 팔을 끌어 안내데스크로 이끌었다.

“내시경을 보고 수술이 판단되면 바로 날짜를 잡으시거든요. 선생님이 대장·항문 쪽으로는 경험이 많은 분이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약을 먹고 바르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다만 “술을 많이 마셨거나 피곤하면 항문은 바로 반응을 한다”고 말했다.

그날 저녁, 아내에게 증상을 설명했다. 아내는 “병원에서 하라고 하면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일반적인 환자 가족의 반응이려니 했다. 하지만 모의 환자인 기자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만약 기자가 강남의 그 병원 앞에 살았고, 그날 피가 나왔고, 혹시나 싶어 들렀다면, 수술을 했을 것이다.

치질 수술 의문 제기 의사, 만나지 못해

손으로 만져보는 것이냐, 내시경으로 보는 것이냐의 차이만은 아니었다. 하나의 증상을 두고 수술이냐, 약 처방이냐는 환자 처지에서는 큰 차이다. 일단 병원에 낸 돈은 1만3250원이었다.

병원에 다녀온 지 보름이 지났다. 결과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아무렇지 않다. 정말 괜찮다. 아내는 여전히 묻는다. “정말 괜찮은 거지?” 그래도 가족의 불안은 계속된다.

같은 질환에 대한 병원의 태도가 이토록 다를까. 주승용 민주통합당 의원실을 통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를 받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운영하는 병원은 지난해 외래 환자 718명 가운데 87명을 수술했다. 8명 가운데 1명 꼴이다. ‘치질’이라는 검색어로 무작위로 추출한 치질 관련 병원 6곳의 통계도 봤다. 수치는 널을 뛰었다. 수술 비율이 가장 낮은 곳에서는 외래 환자 3명 가운데 1명이 수술을 받았다. 수술이 가장 ‘적극적’인 곳에서는 외래 환자 10명 가운데 무려 8명이 수술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표 참고).

치질 수술도 과잉 진료를 두고 논란이 되는 대표적인 분야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를 살펴봤다. 2000년을 전후해 치질 수술 시장은 한마디로 ‘빅뱅’을 겪었다. 1999년 6만 건이던 치질 수술은 2001년 18만4천 건으로 늘었다. 불과 2년 사이에 시장은 3배로 늘었다. 당시 보도를 보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기현상’을 이렇게 해석했다. “갈수록 서구화하는 식습관의 영향도 있으나, 최근 몇 년 사이에 외과 병·의원들이 경쟁적으로 항문외과를 개설하고, 과잉·중복 수술을 한 것이 큰 원인이다.”

한번 팽창한 시장은 줄어들지 않았다. 2006년부터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내놓는 ‘주요 수술 통계’ 자료를 보면, 치질 수술은 국내 수술 시장의 ‘왕좌’에서 오래 군림했다. 수술 건수 기준으로 한국인이 가장 많이 수술을 받은 질병이었다. 2006~2009년 해마다 27만 명이 넘는 치질 환자가 수술대에 올랐다. 2010년 치질 수술 환자가 25만2천 명으로 감소해, 29만 명이 수술을 받은 백내장 수술에 처음으로 ‘왕좌’를 넘겨줬다. 그렇지만 지난 10여 년 사이 누적치만 어림잡으면 인천시의 인구(280만 명)에 육박한다.

정말 이렇게 많은 환자에게 수술이 필요했을까? 지난해 10월18일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의생명공학연구원에서 흥미로운 행사가 열렸다. ‘한국의 의료, 과연 적정한가?’라는 제목의 심포지엄에서 박규주 서울대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가 한 발언은 의료계의 시선을 끌었다. “우리나라 입원 진료 1~2위를 다툴 정도로 치질 수술이 흔하게 이루어지지만 과연 수술이 필요한 환자에게 수술이 이뤄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한겨레21>은 박 교수를 만나려고 10여 차례 통화를 하고 한 차례 학교를 방문했지만 박 교수는 인터뷰를 정중히 거절했다. 문제의 발언을 한 뒤 관련 학계에서 거센 반발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의료 현실을 알려주는 씁쓸한 일화다.

포괄수가제 시행에 반발하는 의료계

정부도 한참 뒤늦게 나섰다. 보건복지부는는 맹장·탈장·백내장·편도·제왕절개·자궁부속기 수술과 함께 치질 수술에 대해 7월부터 포괄수가제를 시행하기로 지난 2월 결정했다. 포괄수가제를 적용하면 치질 수술 1건에 대해 미리 정해진 일정액만을 병원이 부과하게 된다. 새 제도가 도입되면 수술 1건의 평균 가격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이미 크게 늘어난 수술의 총량을 줄이는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새 제도에 대한 의료계의 반발도 적지 않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 등은 “제대로 된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김기태 기자 kk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