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와 성찰 : 사회포럼 2002″ 공동선언문
우리 사회의 개혁과 진보, 민주주의를 위해 분투해온 사회단체들은 2002년 3월22일부터 24일까지 충청남도 천안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에서 “연대와 성찰 : 사회포럼 2002″를 개최하였다. 행사를 마치면서 우리는 지금까지의 실천에 대한 깊은 성찰과 열띤 토론을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우리 사회가 직면한 총체적 위기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사회운동에 제기된 공동 과제를 함께 해결하기 위해 이 선언을 채택한다.
지난 세기 내내 인간적 가치의 실현을 억눌러 온 시장 만능의 가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우리들의 삶을 옭아매고 있다. 이윤 창출만을 목표로 하는 상품생산, 대량소비가 국경을 뛰어넘어 우리 삶의 가장 미세한 곳까지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개발독재 시절 고도성장이라는 미명 아래 억압되었던 민주주의 기본권을 채 회복하지도 못한 우리는 경제적 효율만을 중시하는 시장질서라는 이름으로 다시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다. 우리가 그 동안 민주화 운동을 통해 체득한 평등과 상생의 가치는 여전히 실현되지 못하고 있으며 갈등과 무한한 경쟁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우리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장을 위한 성장이 아닌 인간 자신의 발전, 자연과 인간의 공생, 공공의 이익에 봉사하는 사회·경제제도를 수립하려는 우리의 노력도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그 첨병 노릇을 하는 정치집단에 의해 뿌리가 채 내리기도 전에 고사할 위기에 직면해 있다.
또한 지난 세기의 비이성적인 대립과 전쟁, 억압과 수탈을 극복하고자 했던 우리의 끊임없는 노력은 새로운 평화와 민주주의의 시대를 여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냉전은 끝났으나 평화의 시대는 오지 않았으며, 세계는 미국의 일방적 패권에 휘둘려 전쟁과 대량학살, 군비경쟁이 가속화되는 군사적 세계화의 시대로 뒷걸음질치고 있다. 분단에서 통일로 나아가려는 우리의 노력도 이 같은 사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지금 우리는 전쟁의 위협을 피부로 절감하고 있다. 경제적·사회적 불평등, 환경 악화와 생태 위기, 성차별과 권위주의적인 사회문화는 이러한 정세 속에서 오히려 위력을 더해가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려는 우리의 노력은 새로운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를 뛰어넘어 평화와 평등, 인간의 존엄과 참여와 상생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우리의 노력을, 바로 이 전환의 시점에서 새롭게 성찰하기 위하여 우리는 이 자리에 모였다. 되돌아보면 87년 6월 항쟁과 97년 노동자 총파업투쟁을 거치면서 민중의 역량은 정치·조직적으로 발전하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시민사회운동도 크게 확산되어 우리 사회 속에 확고히 자리잡게 되었다. 하지만 운동의 전체적인 확산과 부문별 발전에도 불구하고, 위기에 대한 사회운동 진영의 총체적 대응력은 그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따라서 상호 이해의 부족에서 기인한 부문 운동간의 분리와 자기중심주의가 강화된 것 또한 사실이며, 그 결과 우리는 공통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지금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때늦은 감이 있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를 심화하고 위기에 대한 공동의 인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모든 운동분야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긴급한 과제라는 사실에 모두 의견을 함께 하였다. 이에 우리 사회의 민주·개혁·진보 세력은 위기의 본질을 분명히 하고 사회운동의 분화에 대한 자기성찰과 애정어린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대안적 연대를 모색하기 위하여 ‘연대와 성찰: 사회포럼 2002′라는 집중적인 교류와 토론의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한국사회운동의 성찰과 과제’, ‘신자유주의와 공공성 담론’, ‘미국패권과 한반도 평화’, ’2002년 양대 선거와 사회운동의 과제’라는 주제를 가지고 전체가 참가하는 열띤 토론을 벌였다. 뿐만 아니라 각 부문별로, 또 쟁점별로 우리 사회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중요한 과제들도 깊이 있게 논의하였다. 우리는 2박 3일 간의 집중적인 토론을 통해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며 기본적인 권리를 억압하는 위기의 본질에 대한 공통의 인식을 확대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기반 위에서 각 부문에서 진행되는 운동의 쟁점과 과제, 중요성을 이해하게 되었다.
인간과 환경을 한갓 이윤창출의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세계를 전쟁으로 몰아가는 패권적 군사주의 정책은 우리의 모든 부문운동을 동시에 규정하고 있는 요소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각 부문운동의 노력도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부문운동 간의 차이는 오히려 구체적인 쟁점을 심화하고 우리 각자가 이러한 문제의 해결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함께 제기하고 토론한 문제들이 어느 한 단체, 어느 한 부문의 몫이 아니며 함께 짊어지고 해결해야 할 모두의 과제라는 데 우리는 인식을 함께 하였다. 뿐만 아니라, 각 부문 운동의 발전과 강화가 곧바로 전체운동의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2박 3일간의 ‘연대와 성찰’을 통해 이제 우리는 우리 모두가 함께 온 몸으로 밀고 가야할 공통의 과제를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거세게 밀려오는 시장만능의 이윤추구가 우리가 키워온 그 어떤 가치도 대체하거나 억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 자리에서 확인하였다.
이제 우리는 다음의 과제들을 공동의 과제로 인식하고 그 해결을 위해 연대할 것을 결의한다. 첫째, 공공의 이익은 어떠한 경우에도 이윤추구를 가로막는다는 이유로 희생될 수 없다. 사회적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경제와, 생존권을 보장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복지정책은 결코 시장의 논리를 넘어 우리 함께 지켜야할 고귀한 가치이다. 우리는 이러한 공공의 영역을 오히려 개혁하고 확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나아가 공공의 가치를 위협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에 함께 맞설 것이다.
둘째, 민주적인 기본권은 어떤 경우에도 보장되어야 하며 인간의 사회적 권리는 더욱 더 확대되어야 한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 집회 및 결사의 자유는 결코 양도할 수 없는 우리의 권리이다. 또한 참여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자치를 실현하는 것은 최선을 다해야 할 우리의 과제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을 향상하기 위해 부문과 영역을 뛰어넘어 연대할 것이다. 성평등, 장애인의 권리, 외국인 노동자의 권리 및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위한 노력은 우리 모두의 과제인 것이다.
셋째,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앞으로도 더욱 더 강화될 것이다. 미국의 군사적 패권주의에 맞서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다각도로 진행될 것이다. 우리는 부당한 패권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행되는 그 어떠한 이름의 전쟁에도 단호히 반대하며, 국가안보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진행되는 모든 군사적인 정책을 철저히 감시할 것이다. 또한 한반도가 다시는 군사적 대립과 전쟁에 희생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비장한 각오로 국내활동을 강화, 확대할 뿐 아니라, 국제 반전평화 운동과의 연대도 더욱 강화할 것이다.
넷째, 미래의 복지와 생존을 위해 개발일변도의 정책을 거부하고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를 실현하는 것 역시 우리의 어깨에 걸린 공통의 과제임을 밝힌다. 이를 위하여 무한한 욕망충족이라는 반시대적 가치를 떨쳐버리고,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이 서로 나눔을 통해 상생하는 사회를 우리는 함께 추구하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서 구시대적인 가부장적 권위주의 문화와 자기이익에 안주하는 욕망의 문화를 나눔과 평등의 문화로 바꾸기 위하여 우리는 함께 노력할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단기간에 결실을 맺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연대와 성찰’을 위한 이 자리는 우리가 위에서 확인한 과제들을 공동으로 해결하기 위한 연대에 주춧돌이 될 것이다. 그 동안 국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저항하는 뽀르뚜 알레그레 세계사회포럼, WTO 반대 국제연대 등의 숱한 연대행동이 추진되었고, 국내적으로도 민주주의와 개혁, 평화와 평등, 환경을 지키기 위한 많은 노력들이 연대를 통하여 이루어져왔다. 하지만 2박 3일간의 열띤 토론을 통해 정세에 대한 공동의 인식과 함께 추구해야할 공통의 과제를 확인한 이상, 지금부터의 연대는 우리 모두에게 더욱 더 절실하며 치열한 실천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부문운동의 강화를 위해 서로 함께 노력할 것이며, 사회적 현안이 되는 과제들을 공동의 노력으로 해결할 것임을 밝히는 바이다. 각자 쟁점이 되는 문제를 서로 올바르게 인식하고, 나아가 공동으로 해결하기 위해 연대의 틀을 더욱 강고하게 마련해 나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성찰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상호이해를 심화시키고 함께 짊어져야 할 과제를 인식하게 한 ‘연대와 성찰’ 모임을 매년 정례화할 것이며 공동의 실천이 요구되는 모든 자리에 오늘 우리가 확인한 ‘연대와 성찰’의 정신이 깃들도록 노력할 것임을 밝힌다.
2002년 3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