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김용익, 조홍준 교수에 대한 징계 결정은 철회되어야 한다.
대한개원의협의회(대개협) 등 의협 일각에서 제기한 김용익, 조홍준 교수에 대한 징계 논란이 계속 번지더니, 결국 대한의사협회 3차 윤리위원회 회의는 “두 회원이 실패한 현행 의약분업을 입안, 추진하는데 깊게 개입”했다는 이유로 두 교수에게 각각 2년과 1년 동안의 회원 자격을 정지하는 징계를 결정하였다.
지난 7월 11일, 대개협은 “사유재산제도의 부정”, 시민단체를 통한 “반의료계 행위”, “의료계 매도”, “건강보험 재정파탄”, “의보통합 주장”, “의약분업 강행”, “수가인하 주장”, “건전한 의학교육 왜곡” 등의 책임을 사유로 위의 두 교수의 징계를 건의하였지만, 2차에 걸친 의협 윤리위원회는 “회원의 정책적 판단”은 윤리위원회의 심의 대상이 아님을 표명하였다. 그러나, 대개협은 윤리위원회에서 징계대상자와 동문 관계가 있는 사람은 제외되어야 한다거나, 두 교수에 대한 징계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10월 27일로 예정된 의사결의대회 불참은 물론 현 윤리위 해체를 거론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압력을 행사하였고, 결국 징계 결정이 관철되었다. 우리는 대개협의 집요한 “징계론”과 윤리위원회의 굴복이 보건의료정책의 합리적인 의견수렴과 결정, 전문가의 정당한 영향력과 권위에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데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첫째, 대개협이 제기한 두 회원의 징계 사유가 구체적인 사실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 의보통합은 전 국민에게 균등한 보험급여를 제공하고자 하는 국민적 열망을 반영한 것으로 여야합의로 추진되었으며, 명백히 대한의사협회의 요구사항이었다. 의약분업도 이미 95년 입법화된 약사법에 명시되어 있는 것을 법적 절차에 따라 진행된 것이었다. 대개협은 구체적인 사실 확인이나 원인과 결과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 없이 의보통합과 의약분업을 의료계의 각종 문제점들의 원인으로 돌리고, 나아가 김용익, 조홍준 회원을 이 모든 것의 근원인 것처럼 호도하였다. 우리는 의사란 국민과 함께 할 때 존재의 의의가 있고, ‘의료계의 이익’이란 다름 아닌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의료와 의사의 미래를 생각할 때, 우리는 두 교수의 행위를 반의료계 행위라는 데 절대 동의할 수 없다.
둘째, 인의협과 두 회원이 많은 의사들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과 의사로서의 명예와 권위에 손상을 주었는지에 대한 판단은 다른 문제다. 학자적 신념과 양심에 따라 사회가 허용하는 합법적 범위 내에서 사회적 실천 행위를 하는 것은 당연한 시민적 권리다. 의사로서의 사회적 실천 행위가 이해집단의 사회적 이해관계를 넘어서 전체 공동체구성원의 보편적 이해를 추구하기 위한 행위라면 이는 의사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윤리적으로 정당한 행위다. 이것을 특정 이해집단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의사들이 스스로 자신의 권위와 정당성을 훼손하는 일이 될 것이다.
세째, 두 회원의 근거가 된 대개협의 주장은 우리 사회를 수십 년 전으로 퇴행시키려는 듯 이념적 왜곡이 가득하다. 대개협은 징계 사유서에서 아무런 근거 없이 김용익, 조홍준 회원이 사유재산제도를 부정한다고 주장하였고, 내과개원의협의회는 두 회원이 의료계를 사회주의화 내지 공산주의화하는데 앞장서 왔다고 주장하였다. 견해와 주장의 실체를 공정하게 보려하지 않고 다른 견해와 주장을 가진 개인을 근거 없이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재단하는 것은 이젠 버려야 할 구시대의 악습이다. 이런 악습에 의존하여 다른 견해와 주장을 억누르고 반사적으로 자기 정당성을 획득하려 한다면 의료계에서 합리적인 의견 수렴과 결정은 불가능할 것이며, 대외적으로는 낙후된 폐쇄집단으로 비쳐질 것이다.
다른 생각과 견해를 펼친 개인과 단체에 대한 구시대적 사상 검증적 태도와 근거 없는 정치적 공세는 한국 의사와 의료계가 해결할 문제를 더욱 어렵게 할 뿐이다. 우리는 이번 김용익, 조홍준 회원의 징계 조치에 동의할 수 없으며, 이번 사태가 의료계의 합리적 견해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첫걸음이 될 것임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윤리위의 징계 결정은 의협이 의약분업의 파행에 대해 스스로 져야 할 사회적 책임을 두 회원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삼아 전가하려는 행위일 뿐이다. 우리는 우리 사회의 존경받아야 할 모든 의사들을 대표하는 의사단체로서 의협이 의료계의 산적한 문제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토론을 통해 해결해 나갈 것을 제안한다.
김용익, 조홍준 교수에 대한 징계는 부당하며, 징계는 철회되어야 한다. 우리는 합리적인 상식을 지닌 동료 의사들과 함께 징계 철회를 위한 모든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난관에도 국민을 위한 의료개혁의 노력을 더 많은 의사들과 더 많은 국민들과 함께 해 나갈 것임을 다시 한번 밝힌다.
2002년 10월 10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