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글 기업도시법은 의료사유화 정책의 표본

기업도시법은 의료 사유화 정책의 표본

최용준 한림대 의대 교수

최근 건설교통부는 ‘민간 투자 활성화를 위한 복합 도시 개발 특별법(일명 기업도시법)’ 제정안의 주요 내용을 공개했다. 때마침 대통령은 시정 연설에서 기업도시 건설 등을 골자로 하는 ‘뉴딜형 종합 투자 계획’을 수립, 경기 활성화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정부의 결연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이를 바라보는 눈이 곱지만은 않다. 이미 민주노총 등 13개 사회 단체들은 기업도시법에 대한 반대 성명을 내놓았다.

이들의 반대 성명 내용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은 ‘기업도시법은 국가의 공공서비스 기능을 포기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대목이다. 정부가 밝힌 기업도시법안은 자족성 강화와 생활 여건 개선의 명목으로 병원과 학교의 설치상의 특례를 인정하고 있다. 사업 시행자인 기업, 즉 영리 법인이 병원 등을 설립하는 것을 허용한 셈이다. 의료기관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기업도시법안의 내용은 두 가지다. 첫째, 시행자가 도시 개발과 동시에 의료기관을 설립하되 개설할 때에는 비영리 법인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원칙으로 한다. 둘째, 시행자가 특수 목적 병원을 설립, 운영하되 잉여금 일부를 도시 개발과 지원에 사용하는 것을 허용한다.

문제는 법률안의 내용이 서로 모순적이어서 정책의 일관성을 기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영리 법인 의료기관 설립 허용 정책에 대한 정부의 의지를 확연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도시법안은 시행자의 의료기관 설립과 개설시 비영리 법인으로의 전환 원칙을 규정하고 있지만, 비영리 법인의 의료기관 개설은 현행 의료법의 관련 규정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그것이 ‘특례’가 되려면 의료기관 개설시 비영리 법인으로 전환한다는 원칙을 바꿔야 한다. 영리 법인 의료기관을 허용하겠다는 얘기다. 나아가 특수 목적 병원의 잉여금 유출 허용은 그 자체가 영리 법인 의료기관 설립을 용인하겠다는 뜻이다. 결국 영리 법인을 반대하는 시민 사회의 눈을 피하면서 실제로 영리 법인 의료기관을 인정하겠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보건복지부의 조정안도 같은 의도를 내비친다. 조정안에 따르면, 영리 법인 의료기관 설립은 허용하지 않지만 사업 시행자는 법인과 별도로 부대사업을 수행하여 이득을 취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업이 의료기관 근처에 목욕탕이나 유료 주차장을 지어 돈을 버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일로서, 이미 그 자체로 ‘특례’가 될 수 없다. 이렇듯 법안이 지닌 문제가 너무도 명백하기 때문에, 정부는 애초 입장을 바꿔 기업도시 내 영리 법인 의료기관 설립을 허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추론의 근거는 첫째, 정부가 이번 정기 국회에 제출한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실질적으로 국내 기업의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 법인 의료기관 개설을 허용하고 있으며, 둘째, 경제자유구역법의 투자 유치 제도를 국내 기업에 포괄 적용하기 곤란하다면서 기업도시법 제정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특정 지역이나 정책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경제자유구역, 기업도시, 지역특구 등 정부의 주요 정책들에서 일관성 있게 발견된다. 정부는 기회가 있으면 공공의료를 확충하겠다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영리 법인 의료기관 허용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들 정책이 국민 건강에 당장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영리 법인 의료기관을 허용하면 환자의 의료비 부담이 늘어날 것이고, 커진 의료비 부담에 대처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사보험에 대거 가입할 것이며, 일단 사보험이 자리를 잡으면 기존 건강보험의 급여 수준이 개선되지 않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결국 국가가 보호해야 할 기본권인 건강조차 전적으로 개인의 경제적 능력에 맡겨버리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정부의 의도적인 사유화 정책으로, 그렇지 않아도 부실한 우리나라 보건의료 체계는 이제 더 큰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기업도시법은 의료 사유화 정책의 표본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