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칼럼 “당신 인생의 동반자’

“당신 인생의 동반자”

  

▲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의사

  

의료 산업화가 올 한 해 주요 국정 과제란다. 서비스 산업이 차기 성장동력 산업이고 그 중 의료가 가장 유망하다는 것이다. 이 의료 산업화의 정책목표 중 하나가 ‘민간 의료보험 활성화’다.
매일 접하는 텔레비전 광고들만 봐도 민간 의료보험이 얼마나 우리 생활속에 파고 들어와 있는지 알 수 있다. 매달 단돈 얼마에 암 등 중대 질병 해결, 최고 몇 천 만원 보장 식의 광고와 병원에 앉아있는 환자 가족에게“얼마나 한다고 보험하나 안 들어놨냐”고 야단치는 것 같은 광고가 줄을 잇는다. 이쯤 되면 광고가 아니라 협박이다. 한국은 국민의 88%가 한 가지 이상의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해 있고, 민간 의료보험료로 내는 돈은 10조원 정도로 공적 건강보험료로 거두는 돈의 3분의 2에 가깝다. 의료비 중 공적으로 보장되는 비율이 50%가 안 되어 가족 중 한 사람이 중병에 걸리면 웬만한 집안은 가계파탄의 위기에 시달린다. 재난에 대비하는 것이 보험인데 건강보험이 그렇지 못하니 민간 의료보험에라도 들어놓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건강보험과 민간 의료보험은 큰 차이가 있다. 바로 보험의 존재 이유다. 공적 건강보험의 경우 가입자가 100원을 내면 보험료의 50%는 기업과 정부가 부담하고 돌려받는 돈은 200원이 넘는다. 그런데 민간 의료보험은 보험료 100원을 내면 60원을 돌려줄 뿐이다. 단순히 견줘도 세 배가 넘는 차이다. 이러한 차이는 왜 발생할까? 공적 보험은 사회적 연대의 원칙에 바탕을 두지만 민간 보험은 최대의 이윤을 추구하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중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한 나라의 의료제도는 완전히 달라진다.

의료보장률 50%의 한국 사회는 두 가지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이냐 갈림길에 서 있다. 의료보장률이 80%가 넘는 유럽은 민간 의료보험 시장 자체가 거의 없다. 반면 민간 의료보험이 중심인 미국은 국민의 70%가 원하는데도 보험회사 로비 탓에 전국민 건강보험이 없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국내총생산의 14%를 의료비로 쓰면서도 4800만 명이 의료보험이 아예 없고, 개인 파산의 반이 의료비가 원인인 나라다.

우리나라에서도 의료비 부담은 사회 양극화의 큰 원인이다. 사회 양극화 해소를 말하는 정부가 할 일은 건강보험 강화이지 민간보험 활성화가 아니다. 그러나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다. 민간 보험회사들의 요구에 따라 재경부는 건강보험공단의 개인 질병 정보까지 민간 보험사에 넘겨주겠다고 한다. 이런식으로 ‘민간 의료보험 활성화’가 이루어지면 정부 대신 생명보험 회사들이 국민건강을 책임지는 사회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 부동의 1위 생명보험사인 삼성생명의 모토인 “당신 인생의 동반자, 어 파트너 포 라이프”가 광고문구가 아니라 실제상황이 되는 것이다.

삼성생명으로 대표되는 삼성그룹의 이건희 총수가 8000억원을 사회에 기부한단다. 그러나 삼성생명의 2004년 보험 매출액은 22조원이었고, 정부가 삼성생명의 보험료 대비 이익률을 현재처럼 40%가 아니라 민간 의료보험 천국 미국의 기준인 20%로만 규제했더라도 22조원 중 5조원은 삼성의 돈이 아니라 국민의 돈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사회보장 제도까지 보험회사에 맡기는 야만적 사회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기댈 ‘인생의 동반자’는 이윤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는 보험회사가 아니라 사회의 연대 원칙에 바탕을 둔 사회보장 제도여야 하기 때문이다.

우석균/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