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소녀의 뒷모습
[한겨레21 2006-11-07 08:03]
[한겨레]
▣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
한국의 아이들과 똑같았다. 멀리서 온 이방인들에게 수줍어했지만 웃음이 많고 밝은 아이들. 2003년 5월 조지 부시가 이라크에서의 ‘종전’을 선언한 직후, 포연이 아직 가시지 않고 밤마다 총소리가 들리고 미군 장갑차가 거리를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지만 바그다드의 어린이들은 얼핏 보기에는 명랑하고 떠들기 좋아하는 한국의 보통 아이들과 같았다.
그러나 막상 그들에게 조금 더 다가가자 그들이 놓여 있는 상황은 우리가 상상하던 것 이상이었다. 무엇이 가장 필요한지를 묻는 질문에 바그다드의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들은 전기와 수도를 말했다. 이라크 통역이 그건 이들의 능력 밖이라는 이야기를 한 것 같았다. 교장 선생님이 그 다음에 필요하다고 말한 것은 종이였다. 종이가 없어 아이들이 필기를 할 수도, 시험을 볼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4∼6학년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겉으로는 밝은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그들 중 84%가 어른이 될 때까지 살 수 있을지 걱정한다고 대답했고, 90%가 넘는 어린이들이 가족을 잃을까봐 걱정을 했다. 80%의 어린이들이 밤마다 전쟁에 관한 꿈을 꾸고, 어른들과 같이 있을 때만 안전하다고 답한 어린이들이 85%가 넘었다. 전쟁의 공포는 이라크 어린이들의 일상이었다. 초등학생이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미래의 꿈 대신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어린이다운 호기심보다는 공포가 지배하는 것이 이들의 일상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신체검사를 했다. 막상 가까이서 보니 너무 작은 어린이들이 많았다. 팔둘레를 재보니 50명의 아이들 중 한 살짜리 팔둘레에도 못 미치는 아이가 4명이었다.
우리는 <한겨레>와의 공동캠페인으로 모은 우리 국민들의 성금으로 2003년 4월부터 5월 말까지 바그다드의 병원에 의약품을 나누어주었고 진료소에서 진료를 했다. 하루에 500명이 넘는 환자들이 왔다. 이라크에 석유가 없어서 아무 땔감으로 불을 피우다가 화상을 입은 어린이들, 깨끗하지 못한 물 때문에 설사를 해서 죽음 직전에까지 이른 갓난아이들. 이런 나라에 한국 정부는 의약품이 아니라 군대를 보냈다.
한 초등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이 한 아이를 봐달라고 데려오셨다. 초등학교 2학년 여자아이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등뼈가 심하게 휜 척추측만증이었다. 윗옷을 벗겨보니 비쩍 마른 몸에 허리가 옆으로 심하게 휘어 있었다. 당장 교정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라크에는 병원이 없었고 아이들의 부모는 돈이 없었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말에 부모와 아이는 힘없이 발길을 돌렸다. 소녀는 가방을 힘겹게 매더니 어려운 발걸음으로 방을 되돌아나갔다. 그 아이는 앞으로 키가 크지 않을 것이고 그 작은 심장과 폐도 더 크지 못하게 될 것이다. 아직도 그 아이의 작은 새 같던 뒷모습을 기억에서 지울 수 없다.
유엔의 이름으로 행해진 13년간의 경제 봉쇄는 이라크 어린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다. 매달 5천 명의 어린이가 영양실조로, 설사와 홍역, 하기도 감염으로 죽었다. 대량살상무기를 만들 수 있다며 유엔은 아이들이 쓰던 연필의 흑연을 문제 삼았고, 필수의약품의 3분의 1을 반입금지 품목에 넣었다. 지금 유엔이 그리고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해 이라크에서 했던 것과 똑같은 경제 제재를 하겠다고 한다. 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죽어야 하는 것일까?
*격주로 연재되던 ‘잊을 수 없는 환자’는 이번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