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의 운영원리
나는 건강해서 병원에는 가지도 않는데 왜 매달 꼬박꼬박 보험료를 내야 하나? 같은 의문을 가져본 일이 다들 있을 것이다. 그것은 건강보험이 민간보험과는 전혀 다른 운영원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이 어떤 원리에 의해 운영이 되는 것인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예측불가능한 질병과 예측가능한 대비
대다수의 사람들은 한달 동안에 식료품비는 얼마가 들어갈지, 교육비는 얼마나 될지, 교통비는 얼마일지를 미리 예상하고 계획을 세운다. 그에 맞춰 가계부를 작성하고 얼마를 저축할 지도 결정한다. 반면, 의료비는 이번달에 얼마를 쓰게 될지, 1년간 얼마나 지출할지는 예상이 어렵다. 질병이란 갑자기 다가오는 경우가 많고, 그것이 중병이기라도 한다면 그 치료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질병에 따라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 심지어 희귀질환의 경우에는 일년에만 수억원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개인적 수준에서 질병의 예측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수준에서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심장질환이나 뇌졸중이 어느 규모로 발생하는지, 어느 연령에서 질병이 많이 발생하는지, 총비용은 어느 정도인지는 대략 예측이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질병에 대해 개인적인 대비는 무척 어렵지만 사회적 수준에서 대비를 한다면 가능하다. 여기에서 보험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건강보험은 개인의 질병 위험을 사회 전체로 분산시켜 공동으로 해결하기 위한 공적 시스템이다.
위험분산(risk pooling)
위험분산이란 예측불가능한 의료서비스에 대한 개인의 부담을 제한하고, 그 부담을 사회적으로 관리함을 의미한다. 보험에 가입한 모든 개인은 매달 일정액을 보험료로 납부하고, 그 보험료로 질병에 걸린 사람의 비용을 충당하는 방식이다. 그렇게 되면 예측 불가능한 질병에 걸리게 되더라도, 개인의 위험은 보험으로 인해 분산되므로 최소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위험분산을 가장 확실히 하는 방법은 예외없이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만일 민간보험 처럼 임의가입방식을 하게 되면 고위험군의 보험가입을 제한하는 ‘단물빨기(cream-skimming)’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제도가 법률에 의해 강제적용방식을 띄는 이유가 여기 있다.
사회연대성(social solidarity)
사회연대 의식은 사회보험이 가지는 주요 가치이자 원칙에 해당한다. 사회연대의식이란 Baldwin의 정의에 의하면 ‘사회 구성원이 공동의 대의를 위해 각자의 이해타산을 하지 않고 상호협력하는 의식’이다. 상호의존적 방법을 통해 사회계층간의 위험을 분산하는 것이다.
건강보험에서 사회연대 원리는 재분배 기능을 통해 실현된다. 재분배현상은 여러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먼저 고소득층에서 저소득층으로의 재분배이다. 위험분산 방식으로 개인이 내는 보험료는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모두 일정액을 내는 것이 아니라 소득이 많은 계층이 더 보험료를 많이 내는 방식이다. 또, 젊은 층에서 노인층으로 재분배가 이루어 진다. 보험료는 보다 건강하고 생산활동에 전념하는 젊은 층이 내지만, 의료이용은 아동기와 노인층에서 더 많이 한다. 다른 한편, 사업주에서 노동자에게로 사회연대성은 나타나기도 한다. 노동자의 보험료의 일부를 사측이 부담하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사측이 보험료의 50%를 부담하고 있고, 유럽의 경우는 사측이 보통 60~80%정도를 부담해주는 경우가 많다. 그 외에도 재분배는 질병의 위험이 낮은 군에서 높은 군으로, 남성에서 여성으로와 같은 방식으로도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와 같이 사회연대의 재분배기능은 다양한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그럼으로써 사회적 구조에서 만들어서진 불평등을 완화하는 기능을 가지게 된다. 각국의 사회보험의 사회연대성을 평가할 때 사회보험의 재분배가 얼마나 잘 이루어지느냐를 가지고 흔히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