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의 파도 속에서

저항의 파도 속에서  
[뭄바이 세계사회포럼 리포트 1] 전진하는 지구적 저항
2004-02-13 오후 1:56:47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제4회 세계사회포럼에 대한 국내언론 보도가 소홀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대회기간중 현지에서 참가자가 보내온 글을 두어차례 실었으나 프레시안의 경우도 빈약했던 게 사실이다.
  
  이에 프레시안은 자성적 차원에서 이번 세계사회포럼에 2백20여명이나 대거 참석했던 시민사회활동가들과 협의, 앞으로 여섯차례에 걸쳐 뭄바이에서 어떤 치열한 논의가 있었는가를 소개하기로 했다. 이는 FTA(세계자유무역) 협정 비준여부를 놓고 정부와 국내언론의 일방적 공세만 가해지고 있는 현시점에서 ‘세계화’에 대한 균형잡힌 인식을 갖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세계사회포럼의 전체모습을 살펴보는 첫번째 보고서를 시작으로 2회부터는 세계사회포럼에서 환경, 반전평화, 여성/Gender, 노동, 보건/AIDS과 관련하여 다루어진 이슈들과 쟁점들에 대한 토론내용과 그 전망에 대한 내용을 전할 예정이다.
  
  필자들은 이번 세계사회포럼에 2백20여명의 대규모 참가단을 파견한 ‘아래로부터 세계화’ 참가단을 중심으로 선정됐다. ‘이윤중심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네트워크 아래로부터 세계화’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세상을 움직이는 유일한 원리라는 주장에 의문을 던지고 농민의 생존을 위협하고 환경적 재앙을 만들며 가난한 사람들의 의약품접근권을 막고 노동자의 생존을 아랑곳 않는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강요하는 자본주의적 세계화의 대안을 찾고자하는 단체다. 운영위원은 김어진(아시아사회연대 대표), 김인식(다함께 운영위원), 우석균(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 이재열(공무원노조 서울본부 교육국장), 정병호(성공회대 총학생회장), 허영구(민주노총 전 위 원장 직무대행) 등이 맡고 있으며, 홈페이지는 www.frombelow.or.kr이며 이메일은 frombelow@frombelow.or.kr이다.
    세계민중의 축제장이었던 제4회 세계사회포럼 현장. ⓒ프레시안

  다음은 앞으로 여섯차례에 걸쳐 소개될 글의 내용 및 첫번째 보고서이다.
  
  1. 2004 세계사회포럼의 조망 : 전진하는 지구적 저항과 세계사회포럼
  뭄바이 세계사회포럼이 남긴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쟁점과 전망
  필자 : 김어진(‘아래로부터 세계화’ 운영위원)
  
  2. 2004 세계사회포럼 : 환경운동의 쟁점과 전망
  전세계인의 밥상과 물, 자연을 약탈하는 다국적 기업
  필자 : 이유진 (녹색연합 정책실)
  
  3. 2004 세계사회포럼 : 반전평화운동의 쟁점과 전망
  필자 : 김인식 (‘다함께’ 운영위원)
  
  4. 2004 세계사회포럼 : 여성/성 운동의 쟁점과 전망
  필자 : 고정갑희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전소장, 한신대교수)
  
  5. 2004 세계사회포럼 : 전지구적 노동운동의 쟁점과 전망
  필자 : 김은아 (증권산업노동조합 조직국장)
  
  6. 2004 세계사회포럼 : 보건의료 및 에이즈 운동의 쟁점과 전망
  필자 :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
  
  제4차 뭄바이 세계사회포럼이 남기고 간 반(反)신자유주의 운동의 ‘쟁점과 전망’
  
  저항의 파도 속에서
  
  지난 1월 16일부터 21일까지 6일 동안 열린 세계사회포럼이 지구적 저항 운동을 한 단계 앞으로 더 나아가게 하는 역할을 했다는 사실에 그 누구라도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참가 규모도 역대 세계사회포럼 가운데에서 가장 컸다. 130개 이상의 나라에서 수천 개의 단체들이 참가했고 참가자수는 12만명이 넘었다. 개인적으로 개막식 때 마이단(힌두어로 들판)에 수만 명이 빼곡이 앉아 연설자들의 주장에 귀 기울이던 장면을 평생 결코 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특히 이번 세계사회포럼을 통해 지구적 저항 운동이 아시아로 확대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의 다양한 운동이 뭄바이에 결집했다. ‘정작 인도 현지인들의 참여는 적었다’는 일부의 평가와는 달리 인도 노동자 조직들, 댐 건설 반대 운동 단체 같은 다양한 사회 운동, 달리트(이른바 불가촉 천민) 단체들, 그리고 인도 좌파들이 대거 참여했다. 인도의 대규모 노조들은 하루 휴가를 내고 대거 참여했다. 특히 달리트들은 연일 행사장 곳곳에서 행진했다. 세계사회포럼을 통해 세계 인구의 6분의 1이 넘는 진정한 남반구라 할 수 있는 인도의 다양한 반신자유주의 세력이 만났던 것이다.
  
  아시아에서 다양한 운동 세력의 참가도 주목할 만했다.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티벳, 네팔 등에서 다양한 단체들이 참가단을 조직해 왔다. 방글라데시의 활동가들은 지난 2월부터 참가단을 조직해 3백여 명이 참여했다. 파키스탄에서는 파키스탄 사회포럼을 끝내고 수백여 명이 국경을 넘어 왔다. 이제 세계사회포럼 현상은 단지 북반구와 라틴 아메리카만이 아니라 아시아의 현상이 됐다.
  
  이번 행사는 어느 때보다도 더 급진적이었다. 행사장 내에서는거의 매시간 집회와 행진이 열렸다. “뿐지와르(자본주의) 무르다바르”라는 구호는 어디서도 들을 수 있는 구호였다. 행사장은 다음과 같은 구호에 맞춰 행진하고 노래부르고 춤을 추는 대열로 가득했다. “사유화를 중단하라”, “남아시아 전쟁 반대”, “달리트(불가촉천민)에게 권리를”, “부채 억압은 인간 권리 침해”, “민중에게 권력을”. 셀 수 없는 행렬들이 서로 얽히고 설키었다.
  
  이러한 모든 종류의 역동성은 전 세계 활동가들한테 준 영감은 지구적 저항 운동의 기름진 토양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쟁점과 전망
  
  이번 세계사회포럼 내에서 진행된 다양한 토론들 또한 세계적 운동 내의 논의들을 한 단계 더 진전시켰다. 행사 기간 내내 전지구적 저항이 무엇을 목표로 어떻게 펼쳐져야 하는지에 관해서 진지한 논의들이 거듭됐다.
  
  유일한 대안처럼 제시되는 ‘자본주의적 세계화’를 어떻게 극복하고 어떤 대안을 가져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가장 중요한 의제 중 하나였다. “세계화, 경제, 사회보장”이라는 주제의 컨퍼런스는 5천~6천 명이 모인 가장 큰 포럼이었다. 시애틀 시위 직전 세계은행 부총재직에서 쫓겨난 조지프 스티글리츠, 이집트의 사미르 아민, 인도의 프랍하트 파트나이크 같은 진보적인 경제학자들, 인도네시아의 독립노조 위원장이자 노동운동의 지도자인 디타 살리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활동가인 트레버 은구와니가 연사로 참여했다. 그들 모두 IMF와 세계은행의 주요 정책들과 신자유주의를 고발했다.
  
  대안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렸다. 스티글리츠는 자유화와 시장을 옹호했다. 그는 국가 통제 또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파트나이크는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가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강력한 국가 개입으로 자본주의와 싸울 수 있다는 전략을 제안하기도 했다. 사미르 아민은 “남반구” 정부들의 새로운 연합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디타 살리와 은구와니의 견해는 달랐다. 그들은 위로부터의 대안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민중 투쟁이 대안이라고 말했다.
  
  WTO 체제에 맞서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에 관한 논의도 주요한 주제중 하나였다. WTO를 막기 위해서 G-21에 기대는 것이 효과적인가 그렇지 않은가? 아마 올해 연말에 홍콩에서 열릴 WTO 특별 각료회담과 이에 맞선 투쟁은 위에 관한 답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대안 세계에 관한 관심 또한 지대했다. “세계화와 그 대안들”이라는 주제의 포럼에서는 대안 사회에 관한 논쟁이 있었다. Z-NET 편집자인 마이클 하트 같은 이들의 연설은 대안 사회에 대한 상상력과 열망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자본주의 이후의 삶’과 ‘21세기의 혁명’이라는 주제의 세미나에는 자리가 모자라 적지 않은 사람들이 텐트 밖에서 토론을 경청해야 했다.
  
  무엇보다 이번 세계사회포럼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떠 오른 것은 “세계화와 전쟁”일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사령관들을 물리치려면 그들의 약점을 집중 공략해야 하는데 과연 그들의 약한 고리는 무엇인가? 아룬다티 로이의 연설이 해답을 제공했다. 그녀는 개막식 연설에서 미군의 이라크 점령에 반대하는 것이 저항 운동의 핵심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기업의 세계화를 추진하는 자들이 벌이는 전쟁과 학살을 저지하는 국제적 동맹을 건설해야 하며 그 핵심 고리가 이라크라고 주장했다.
  
  1월18일 행사장의 연대 텐트(Solidarity Tent)에서 열렸던 반전 총회는 지구적 반전 동맹을 위한 실천적 결의를 모아내는 장이었다. 필리핀에 본부를 두고 있는 남반구의 초점, 영국의 전쟁저지연합을 비롯한 많은 단체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3월 20일 이라크 침략 1년을 맞이해 국제적 시위를 조직하자고 결의했다. 한국의 활동가들은 3월 20일의 이러한 결의를 알리는 영어와 힌두어 리플릿을 즉각 제작해서 많은 활동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는데 1만 부가 뿌려진 이 힌두어 리플릿은 인도 활동가들한테 큰 힘이 되었다는 평가를 들었다.
  
  많은 포럼과 세미나, 워크숍에서 많은 연사들이 자본주의 세계화와 전쟁이 한 몸뚱아리에서 나온 야만임을 주장했다. 세계화와 전쟁을 주제로 한 ‘저항의 세계화’ 세미나에는 5백여명이나 참여했다. 반신자유주의 운동과 반전 운동 간의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점은 이제 거의 모든 활동가들이 받아들이는 전혀 새롭지 않은 주장이었다. 이것은 작년 포르투 알레그레와 비교하면 상당한 발전임에 틀림없다. 신자유주의 사령관들이기도 한 전쟁광들의 약한 고리를 두들겨 그 고리가 끊어진다면 분명 그것은 WTO와 IMF, 세계은행의 패배가 될 것이다. 월든 벨로도 “작년 WTO와 FTA의 패배는 반전 운동의 성공이 낳은 효과”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정당과 사회운동에 관한 주제도 빼 놓을 수 없다. 세계사회포럼이 내세우고 있는 정당배제 원칙이 사실상 사문화된 상태에서 올해에는 이러한 현실과의 괴리가 더욱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3회 포럼까지 세계사회포럼을 주도했던 단체가 브라질 노동자 당(PT)이었고 이번 행사의 경우에는 두 개의 인도 공산당이 주요 세력이었으며 유럽이나 남미의 주요정당지도자들이 다른 단체의 이름을 빌어 대거 했음을 보아도 이러한 원칙은 현실에서 이미 부정되고 있다. 이번 4차 세계사회포럼에서는 정당배제라는 원칙이 아래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고 전 세계에서 온 약 45개의 급진 좌파 정당들이 모여서 회의를 가졌다. 이들은 앞으로 지속적인 교류를 가지기로 결의했다.
  
  ”세계경제포럼과 달리 우리는 민중과 만났다”
  
  ‘세계사회포럼에서 무언가를 결의하는 것이 가능하고 올바른가? 혹시 이러한 결의가 다양성과 다원주의를 침해하지 않을 것인가’, ‘세계사회포럼이 교육과 선전의 장으로 머물러야 할 것인가 아니면 조직과 활동의 주체로서 나서야 할 것인가’라는 의제와 쟁점도 이번 세계사회포럼의 주요 주제 중 하나였다. 폐막식 전날 열린 ‘세계사회포럼의 미래’라는 세계사회포럼 조직위가 직접 주도한 컨펴런스에서 이 문제가 주로 토론되었다.
  
  아딱 프랑스등 지금까지 세계사회포럼을 주도해온 단체들은 세계사회포럼은 ‘활동가(actor)가 아니라 공간(space)’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양성이 가장 존중해야 할 가치라는 것이다. 그러나 남아프리카 공화국 KOSATU 의장 등 다른 나라들의 대표자들은 세계사회포럼은 결의자여야 하며 전쟁반대와 신자유주의 반대에 대한 결의를 할 수 있으며 해야한다고 역설하였다. 마지막날의 이 콘퍼런스에서는 이외에도 세계사회포럼의 미래에 대한 다양한 논점들이 제기되었다. 유럽사회포럼의 조직자인 이탙리아 출신의 발표자 베베토는 세계사회포럼이 남미에서만 머물지 말고 인도에서 성공적으로 그러했던 것처럼 세계의 빈국을 다니면서 세계사회포럼을 통한 국제적인 연대운동의 영향력을 발휘해야 하며 다음에는 포럼을 아프리카에서 열자고 주장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이 토론회 자유발언 시간에 한 발언자가 ‘세계사회포럼은 이미 변화했으며 조직위원회의 할 일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토론하기보다는 세계사회포럼의 변화를 쫓아가는 것’이라고 발언했던 것처럼 이미 세계사회포럼은 교육과 선전의 장을 뛰어넘은 것으로 보였다. 이번 뭄바이는 교육과 선전의 장이기도 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훨씬 더 급진적이고도 다양한 운동들의 힘들의 결집을 보여주었다. 많은 공동행동들이 결의되고 조직되었다. 반전총회에서 결의되었듯이 전세계의 활동가들과 아시아의 많은 활동가들은 3월 20일 국제공동반전행동을 자신들의 나라에서도 개최해 전쟁광들이자 신자유주의 사령관들의 야만을 끝장내겠다는 결의를 보여준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세계사회포럼 공식소식지인 Terraviva는 마지막 날 소식지에 이번 세계사회포럼은 ‘너무 좁은 공간에 너무나도 식량과 물이 부족하고 주거공간이 부족하며 의사소통수단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현 세계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반영했다는 기사를 실어 많은 사람들을 웃음 짓게 만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정작 세계사회포럼 행사장은 반정도의 의자밖에 차지 않고 행사장 밖은 온통 인도인 시위대, 특히 달리트 시위대로 가득찬‘(테라비바) 이번 세계사회포럼을 두고 민중과 괴리된 세계사회포럼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도조직위원회가 지적하였듯 이번 세계사회포럼은 행사장안의 여러 컨퍼런스와 세미나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행사장 밖의 시위도 세계사회포럼의 주요한 일부였으며 바로 이것이 민중의 역동성을 배우는 자리로서의 인도세계사회포럼의 특징이었다.
  
  인도조직위는 “세계경제포럼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민중과 만나지 않고 그들의 회의를 치루었던 반면 우리는 한발자국만 벗어나면 민중들을 만날 수 있었고 이것이 이번 세계사회포럼의 논의를 역동적(dynamic)이고 복합적(complex)으로 만들었다”고 평가하고 ’카스트, 종단주의(communalism), 여성문제’등을 새롭게 주요의제로 제시한 것과 함께 ’민중과 함께 만들어가는 세계사회포럼‘의 전형을 제시한 것이 이번 뭄바이 세계사회포럼의 주요한 두 가지 기여라고 이야기했다.
  
  뭄바이 세계사회포럼은 지구적 저항 운동이 중요한 한 걸음을 더 내디뎠다는 희망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필자 소개
  
  김어진(kimeojin@hotmail.com) 전 아시아사회연대 대표,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 연구원, 〈다함께〉기자, 아래로부터 세계화 운영위원. 저서로 <신자유주의와 세계 노동자계급의 대응>(한울, 공저)  

김여진/경상대사회과학연구원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