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물과 전쟁

≪자원의 지배≫ – 마이클 클레어, 세종연구원 // 한상원

인류는 21세기 벽두를 전쟁의 시대로 규정할 것이다. 9·11 사태 이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으며 이라크 공격을 서두르고 있다. 또 북한을 계속 압박해 끊임없이 한반도에 전쟁 위협을 가하고 있다. 한편, 중동에서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무참하게 학살했으며,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은 핵 전쟁 일보직전까지 치달았다.

이 책의 저자 마이클 클레어는 21세기의 전쟁 양상은 새뮤얼 헌팅턴이 주장하는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자원 전쟁(Resource War:이 책의 원제이기도 하다)”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많은 사례들을 제시한다. 그는 자원을 둘러싼 수많은 국가간·국가 내부의 분쟁들을 소개한다.

자원을 둘러싼 분쟁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은 역시 중동, 즉 페르시아 만이다.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자원인 석유가 세계에서 많이 매장된 지역이기 때문이다. 석유 수입 국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이 지역에서 에너지를 더 많이 공급받을 것이다. 미국 에너지부의 예측대로라면, 세계 각국이 페르시아 만에서 공급받는 석유는 1997년 하루 1천6백30만 배럴에서 2020년에는 3천6백40만 배럴로 두 배 이상 늘어날 것이다.

따라서 중동 지역을 둘러싼 분쟁의 수위도 높아져 가고 있다. 1991년 이라크 침공 이래 미국은 자국 군대를 이 지역에 주둔시키는 한편, 이라크, 수단 같은 국가들을 끊임없이 폭격해 왔다.

1970년대에 베트남 후유증을 앓던 미국은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를 내세워 이 지역의 패권을 공고히 하는 “위임 전략”을 채택했다. 그러나 이란에서 혁명이 일어나 친미 팔레비 왕조가 퇴진하자 미국은 직접 책임을 떠맡아야 했다. 1980년 1월, 당시 미국 대통령 카터는 연두 교서에서 페르시아 만을 미국의 “필수적 이해관계”로 규정하고 “이 지역에 대한 공격은 군사력을 포함하여 필요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격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른바 “카터 독트린”이다. 이 카터 독트린이 실제 효력을 발휘한 것이 바로 1991년 조지 부시 행정부가 지휘한 “사막의 폭풍 작전”, 즉 2차 걸프전이었다.

저자의 관점대로라면 오늘날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에 대해서도 “군사력을 포함하여 필요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격퇴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조지 부시의 의도 역시 명쾌하게 읽을 수 있다. 1991년 <비즈니스 위크>가 지적한 대로 “석유는 전쟁을 치를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저자는 카스피 해로 시선을 옮긴다. 저자는 이 지역을 “석유의 새로운 엘도라도[전설 속의 황금 도시]”라고 부른다. 1997년 미국 국무부는 카스피 해역의 에너지는 북해에서 발견되는 양의 약 10배에 달하고, 페르시아 만 총 매장량의 3분의 1인 2천억 배럴에 달하는 석유가 매장돼 있다고 의회에 보고했다. 이 지역에 매장된 에너지가 이목을 끄는 더 중요한 이유는 다른 지역에서는 석유 생산량이 줄어들 전망인 반면, 이 지역의 생산량은 앞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냉전 해체 이후 미국과 러시아는 이 지역에 매장된 에너지에 군침을 흘리며 군사적·정치적 개입을 추진해 왔다. 클린턴은 이 지역 대통령들과 회담을 한 뒤 미군과 이 지역 국가들의 군대가 합동으로 실시한 훈련(CENTRAZBAT)을 실시했다. 옛 소련의 지배에서 벗어난 이 지역의 국가들―카자흐스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야,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은 친 서방 노선을 채택해 미국과 관계 개선을 추진해 왔다. 미국은 이 지역을 텃밭으로 여기던 러시아의 그림자 때문에 군대를 주둔시킬 수는 없었으나, 경제·군비 지원이나 합동 군사 훈련 같은 방식으로 이 지역에 개입을 늘려  왔다.

러시아는 이 지역의 국가들이 러시아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대표적 사례가 체첸 침공이다. 얼마 전 발생한 모스크바 인질극 사태와 이후 푸틴의 공격 강화에서 보듯 앞으로도 체첸에 대한 무력 개입은 멈추지 않을 전망이다.

저자는 2000년 이 책을 발표했다. 따라서 그 뒤 카스피해에서 전개된 세력 양상을 다룰 수 없었다. 미국은 작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이 지역에 전초 기지를 마련했다. 하미드 카르자이를 수반으로 하는 과도 정부는 철저하게 미국에 봉사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이 1990년대 중반 추진했다가 실패한 석유 파이프라인 건설 사업을 재개한 것이다. 또 러시아는 미국의 대 테러전을 지원한 대가로 체첸 침공과 민간인 학살에 대해 면죄부를 얻을 수 있었다.

페르시아 만과 카스피해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수많은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석유와 천연가스를 둘러싼 분쟁은 남중국해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1995년 중국이 몰래 스프래틀리 군도의 산호도를 점령한 이후 주변국들은 경쟁적으로 해군력을 증강하고 있다.

수자원을 둘러싼 분쟁도 일어날 수 있다. 저자는 나일강을 둘러싸고 북아프리카 국가들이 벌이는 분쟁을 소개한다. 또 이 지역의 맹주 이집트가 횡포를 부리는 모습도 보여 준다. 요르단강을 둘러싼 이스라엘의 횡포도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은 1967년 6일 전쟁에서 요르단강 서안과 골란 고원을 점령해 부족한 수자원을 독차지하면서 주변국들과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 또 서안 지역과 가자 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물을 거의 공급하지 않아 반감을 사고 있다.

이 밖에도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을 둘러싼 터키·이라크·시리아의 갈등, 인더스강을 둘러싼 인도와 파키스탄의 갈등, 목재와 광물을 둘러싸고 아프리카에서 벌어져 온 끔찍한 내전의 역사를 접할 수 있다.

모든 국가간 분쟁의 핵심 원인을 자원에서 찾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일 것이다. 그러나 경쟁과 약육강식이 법칙인 자본주의 국제 질서에서 자원을 둘러싼 분쟁은 사라질 수 없다. 중동에 또 다시 전운이 감도는 지금, 이 책은 자원을 둘러싸고 제국주의 국가들이 벌이는 추악한 경쟁을 폭로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저자가 국제 분쟁에서 국제에너지기구(IEA)·국제원자력기구(IAEA)·세계보건기구(WHO) 같은 국제 기구들에 기대를 걸 뿐, 분명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점은 유념하고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