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골드≫ – 모드 발로, 토니 클라크, 개마고원 // 장준석
유엔은 세계 31개국이 현재 물 부족 사태에 직면했다고 보고했다. 1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깨끗한 식수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더욱 비참한 것은 기본 권리인 물조차 불공평하게 분배된다는 것이다. 서구에서 갓 태어난 아기와 남반구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아기는 깨끗한 물이라고는 구경조차 할 수 없는 남반구에 사는 보통 아기들보다 평균 40∼70배나 많은 물을 소비한다. 월드워치연구소에 따르면, 가나에서는 소득 상위 20퍼센트 가정이 하위 20퍼센트 가정보다 12배나 많은 물을 사용하고 있다. 인종과 계층으로 영역을 넓혀보면 물에 대한 특혜는 더욱 놀랍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백인 농민 60만 명이 관개용수의 60퍼센트를 사용하는 데 반해, 흑인 1천5백만 명은 물을 거의 공급받지 못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인구 중 약 1천5백만 명은 물을 얻기 위해 적어도 1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으로 가야만 한다. ‘국제 물 정책(Water Policy International)’에 따르면, 남아프리카공화국 여성들이 물을 긷기 위해 하루 동안 걷는 길이를 모두 합하면 달을 16회 왕복하는 거리와 맞먹는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기업 활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의 감소 현상과 오염 문제다. 예컨대 IBM, AT&T, 인텔 같은 컴퓨터 제조업체들은 제품을 생산하면서 엄청난 양의 탈이온수를 사용해 물을 고갈시킨다. 화장품에서 살충제까지 매우 다양하게 사용되는 폴리염화비페닐(PCB)은 1그램만으로도 물 10억 리터를 생물이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오염할 수 있다. 펄프·제지 공장은 제조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물을 끌어갈 뿐 아니라 염소 표백 과정에서 다이옥신·퓨란 등의 치명적 화합물을 마구 흘려보내 지표수와 지하수를 한꺼번에 오염한다. 이들 기업에게는 이윤이 최상의 가치다.
오늘날 세계 물 산업은 상위 10대 기업이 점령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공룡 기업인 비방디와 수에즈는 세계 물 시장의 70퍼센트를 독점하고 있다. 두 기업은 세계 2백20여 국가로 시장을 확대하며 공공의 재산인 물을 거둬들이고 있다. 코카콜라·펩시콜라 등은 세계 곳곳에 기반을 두고 물을 상품화·사유화하고 있다. 이 기업들은 세계 곳곳의 물을 합법적으로 가져가기 위해 각 나라 정부와 국제 기구에 로비한다. 수에즈는 미국 내 자회사를 통해 1999∼2000년 선거 기간에 14만 1천1백50달러의 정치 헌금을 기부했다. 10년 전인 1989년에는 당시 프랑스 그르노블 시장이던 알랭 카리뇽에게 선거 자금으로 1천9백만 프랑을 기부했다.
세계은행(WB), 세계무역기구(WTO),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 기구들은 기업들이 물 수출을 용이하게 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한다. WTO는 물 상품이 국가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관세·비관세 장벽을 없애준다. IMF는 개발도상국의 외채를 탕감해 주는 대가로 상하수도를 사기업화하도록 강요한다. 저자들은 물은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기 때문에, 누구나 물을 사용할 권리가 있고 기업이 물을 통제해 상품화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국제 사회가 이윤에 따라 움직이거나 세계은행의 자금 지원을 받는 모델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들이 내놓는 대안은 ‘생명수 헌법’, ‘전국 물 보호법’ 등의 법안을 제정해 물을 보호하고, 지역별로 ‘물 관리 위원회’를 둬 주민들이 직접 관리하는 것이다. 이것은 물을 대량으로 소비하고 오염하는 거대 기업들의 이윤 추구에 제동을 걸려는 시도다. 이것은 물 공급·관리의 사회적 통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아쉽게도 저자들은 체제 전체가 아니라 특정 지역의 통제만을 제시한다. 그러나 지역적 통제만으로는 전 세계를 무대삼는 다국적 기업과 국제 기구들의 횡포에 효과적으로 맞서기 힘들다. 이런 약점에도 이 책은 다국적 기업과 국제 기구 들이 어떻게 물을 오염하고 상품화하는 지 생생하게 폭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