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시아파 전면 민중봉기, 미국 ‘고립무원’
6개도시서 봉기, 미군 8명 사망-이라크인 52명 사망
2004-04-06 오전 9:10:55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축출을 환영하며 이라크 주둔 미군을 지지하던 시아파들이 집단적으로 반미항쟁에 나서 미군 등 연합군과 정면무장충돌함으로써, 미군은 수니파와 시아파 모두로부터 공격받은 이라크 침공이래 최악의 위기에 처하게 됐다.
특히 이라크전체 인구의 65%를 차지하는 시아파들의 전면 봉기는 이라크전이 게릴라전 단계를 넘어서 민중항쟁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부시 미정권을 절체절명의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이같은 이라크 내전화는 한국군 파병을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할 절대변수의 출현으로 지적받고 있어, 우리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이라크 곳곳서 시아파-미군 무장 충돌, 수백명 사상
이라크 중남부 지역의 주요 도시에서 4일(현지시간)부터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이라크 시아파와 미군 주도 연합군 간의 전면적인 유혈충돌로 적어도 미군 8명을 비롯해 엘살바도르군 1명 등 연합군 9명과 이라크인 52명이 숨지는 등 3백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AP, AFP 통신 등 외신들이 긴급타전했다.
4일과 5일 내내 이라크 주요 도시에서는 시아파와 미군 등 연합군 간 최악의 무장 충돌이 발생해 내전이 격화되고 제2의 이라크전이 촉발될 것이라는 우려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연합뉴스
워싱턴포스트는 “이라크 점령 1년 동안 가장 두려워했던 상황이 현실화됐다”며 “미군 주도 연합군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도전”으로 규정했다. 실제로 이같은 표현이 과장도 아닌 것이, 이번 충돌은 바그다드를 비롯해 쿠파, 나자프, 나시리야, 아마라, 바스라 등 시아파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6개 주요도시에서 일제히 발생했다.
이와 함께 미국인 사체를 절단하며 강한 반미 적개심을 보였던 팔루자에 대해서는 미군이 1천여명의 병력을 동원해 전체 도시를 봉쇄한 뒤 범인 체포작전에 나서 대대적 충돌을 예고했다.
4일 바그다드의 사드르 지역에서는 미군과 이라크 시아파 과격 지도자 무크타다 알-사드르지지 무장세력이 충돌해 미군 7명이 숨지고 24명이 부상당했다. 이날 선제공격을 편 알-사드르측 무장세력은 소총과 로켓발사 수류탄 등으로 경찰서 3곳과 일부 관공서를 장악하고 미군 험비차량 두 대를 불태우는 등 강도높은 공세를 펼쳤으며, 미군은 아파치 헬기 등을 동원해 지상폭격을 단행했다.
이번 충돌 몇시간 전에는 시아파 성지 나자프에서도 알-사드르 지지세력 5천여명이 시위 도중 스페인 주도 연합군과 충돌해 이라크인 20여명이 숨지고 2백여명이 부상당했으며, 남동부 아마라에서는 영국군과 무장세력이 대전차로켓 등을 동원해 격렬한 공방전을 벌였다.
이라크 남부 나시리야에서도 이라크 주민들이 알-사드르의 최측근인 무스타파 알-야쿠비 체포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며 연합군 기지를 공격했으며 쿠파에서도 이라크 시아파 시민들과 무장세력은 경찰서를 장악하기도 했다. 또 시아파 과격단체 1백50여명은 5일 영국군 주둔지인 남부 바스라 주청사와 주지사 관저를 점거했다.
또 미 해병대 1천2백여명은 5일 미국 경호회사 직원 4명의 사체를 절단하며 강한 반미 적개심을 드러낸 바그다드 서쪽 팔루자를 봉쇄하고 대규모 공격작전을 시작했다.
연일 계속되고 있는 이번 충돌 양상은 그러나 진정될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
오히려 앞으로 9일 미군의 바그다드 점령 1주년과 시아파 최대 기념일 가운데 하나인 알아르바인을 앞두고 있어 상황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알아르바인은 시아파 성지인 이맘 후세인이 죽은 후 40일째를 기리는 날로 시아파 수백만명이 운집할 정도로 큰 규모의 기념일이다.
알-사드르, 청년실업자 중심 ‘메흐디군’ 창설
4일과 5일에 걸친 시아파들의 조직적 봉기는 미군정이 폭력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지난달 28일 알-사드르측 신문인 주간지 <알-하우자>에 대해 60일간 정간조치를 취한 게 기폭제가 됐다.
이라크 시아파-연합군 충돌 상황(4~5일) ⓒ프레시안
향후 주권이양과 임시정부 수립등 정치일정에서 과격파라는 이유로 배제된 알-사드르는 온건노선을 견지하는 시아파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시스타니와는 달리 이슬람 원리주의를 추구하며 미군 등 이라크 주둔 외국군대의 철수를 주장해온 30대 초반의 소장파 지도자이다.
시아파 성지인 나자프 인근 카푸를 근거지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사드르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후세인 정권 당시인 지난 96년 암살당한 부친인 시아파 지도자 모하마드 사티크 알-사드르의 후광에 힘입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의 영향력은 이라크전 이후 바그다드 북부 시아파 거주 지역인 사담 시티가 그의 이름을 따 사드르 시티로 개명될 정도다.
그는 또 지난해 6월에 이라크의 폭증하고 있는 청년 실업자를 모아 수천명 규모의 민병대 조직인 ‘메흐디 군’을 창설했으며, 일련의 요인 암살에 대해 나서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5일 미군이 경쟁상대 성직자 살해 사건과 관련해 알-사드르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한 가운데 알-사드르는 시아파 온건파들의 폭력 포기 요구를 거부함으로써, 앞으로 알-사드르를 중심으로 한 강경 시아파의 공세가 더욱 확산될 우려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엘살바도르 철군 논란. 부시 “주권이양계획 변경 없어”
부시 미정권은 이같은 일련의 사태전개에 크게 당황하고 있다. 그동안 수니파 중심의 이라크 무장세력에 대해 소탕작전을 펴면서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통치하에서 핍박받아온 시아파로부터 암묵적 지지를 받아오던 미군은 이제 시아파로부터도 공격을 받아 2개의 전선에 내몰리며 ‘만인이 적’인 전면적 민중저항 국면에 직면하게 됐기 때문이다.
강경 시아파 지도자인 알-사드르 지지 메흐디군 소속 1백50여명의 무장단체원들이 5일 바스라 주청사를 점령하고 알-사드르 사진을 걸어놓고 있다. ⓒ연합뉴스
게다가 스페인 철군 방침에 이어 이번 충돌로 1명이 숨진 엘살바도르에서는 야권을 중심으로 자국 군인이 숨진데 대해 철군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강력하게 터져나오고 있어, 사태전개에 따라서는 연합군 전체에 미칠 파장까지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5일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을 방문한 자리에서 “주권이양 시기는 종전과 같다는 점을 확실히 한다”며 오는 6월30일로 예정된 정권이양을 고수할 것임을 강조했다. 부시는 “이라크에서 맹렬한 반미 행위에 직면했지만 현 진로를 유지할 것”이라며 이라크에서의 무장 시아파의 저항공격에 꺾이지 않을 것임을 천명했다.
그는 또 “미국은 이라크에서 고조되는 폭력사태가 현지에 민주주의를 수립하려는 노력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할 것”이라며 “자유 이라크는 대테러 전쟁에서 하나의 의미있는 승리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국 의회 및 언론 중심, ‘제2의 베트남전’ 우려 급속 확산
부시 대통령은 이처럼 재차 기존 이라크 정책에서 한발짝도 물러나지 않을 것임을 강조했지만 미국내에서조차 의회와 언론을 중심으로 주권이양 시간표에 대한 회의론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우선 공화당 출신인 리처드 루가 상원외교위원장은 “6월 30일의 정권이양 시기에 대한 토론이 필요하다”며 “시한이 비현실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상임위의 민주당측 지도부인 조지프 바이든 의원도 “이라크에서 적절한 행동이 취해지지 않는다면 이라크 ‘내전’의 위험성은 점증할 것”이라며 “나토군을 참여시켜 미군을 보완하고 이라크 주둔 외국군의 국제군 성격을 보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P 통신과 인터뷰한 주요 정치학자들도 현 권력이양시점의 비현실성을 지적하며 “이양되더라도 표면적인 이양일 뿐”이며 “오히려 미국은 이라크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더많은 병력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미 언론들도 마찬가지로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 USA 투데이 등도 정권이양 시간표의 비현실성과 이라크 정책의 재조정을 촉구했다.
미국내에서는 결국 이라크전이 베트남전화되면서, 미군이 또다시 철수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비관론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어, 오는 11월 대선을 앞둔 부시를 크게 당황케 하고 있다.
아울러 이라크전이 내전화될 경우 북부 쿠르드족도 자신의 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을 가속화할 것이 확실시됨에 따라 북부로의 파병을 앞두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도 파병 계획을 전면철회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김한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