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는 어디로?
타리크 알리는 1960년대부터 활동한 저명한 정치 활동가이자 영화제작자, 소설가,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최근 저작에는 ≪근본주의의 충돌≫(미토)과 ≪바빌론의 부시:이라크의 재식민지화≫(Bush in Babylon: The Recolonization of Iraq)(Verso Books; November 2003)가 있다. 다음은 타리크 알리가 미국의 좌파 주간지 <소셜리스트 워커>(2004년 4월 9일치)의 에릭 루더와 인터뷰한 내용이다.
미국(의 이라크) 점령 동기는 무엇인가요? 물론, 부시 정부는 자신이 사악한 독재자를 제거하고 민주주의와 자유를 후원하고 있다고 말합니다만.
나는 미국 바깥의 매우 많은 사람들이 그 말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이라크에 군대를 보낸 나라들에서도 국민들은 전쟁과 점령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하고 점령한 주된 동기가 민주주의나 심지어 독재자 제거와도 거의 무관하며 제국의 힘을 사용해 현대 제국주의의 작동 방식을 중동 지역과 전 세계에 보여 주려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이 나날이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즉, 미국을 거역해서는 안 되며 만약 그랬다가는 미국이 이를 응징할 것임을 과시하려는 것입니다.
이라크는 바로 이 점을 입증할 수 있는 나라로 선택된 것입니다. 또 다른 주요 이유는 이라크의 시장을 장악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오래 전 영국이 이라크를 지배했을 때 그랬듯이, 이라크의 석유를 장악해서 서방 국가들 사이에 분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령은 오늘날 매우 상이한 국제적 맥락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21세기의 점령입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경제와 기업 자본주의의 세계적 공세라는 맥락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적 공세의 또 다른 특징은 미국이 세계 다른 지역 나라들이 지역 동맹을 결성하는 것을 방지하고 미국과 쌍방 거래를 하게 만들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극동 지역에서, 남아시아에서, 중동에서 해 온 일이고, 라틴 아메리카에 강요하고 있는 일입니다.
미국은 신자유주의적 헤게모니에 도전할지도 모를 강력한 지역 동맹을 결성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분쇄하려 할 것입니다. 이라크는 경제적·정치적으로 미국의 통제에서 벗어난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이를 “바로 잡고” 싶어했습니다.
제 생각에 주된 이유는 아니지만 부차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정권은 이라크를 처치하고 싶어했습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잔학 행위를 방해할 가능성이 있는 유일한 나라가 이라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라크가 그런 일을 하려 하지는 않았겠지만, 어쨌건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위험을 완전히 제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것들이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한 주요 이유들이었습니다. 경제적 차원에서 보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매우 분명히 드러납니다. 이라크 경제 전체가 사유화됐습니다. 지금 이라크에는 미국 기업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파병 대가로 이권과 [재건 사업] 계약들을 보장받았습니다. 한국 대통령은 이를 어느 정도 시인했습니다. 한국이 1백여 건의 계약들을 따낸 뒤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시다시피, 만약 우리가 파병하지 않았다면 이런 계약들을 따낼 수 없었을 겁니다.” 솔직한 말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많은 나라들이 군대를 보낸 이유입니다. 그저 미국의 위성국이 되기를 원했던 동유럽 국가들을 제외하면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 폴란드 대통령이 총대를 메고 나선 이유는 ― 그는 짐짓 화가 난 척하면서 자신은 대량살상무기가 없었는지 몰랐다고 말합니다 ― 폴란드가 아주 하찮은 계약만을 따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부시를 철저히 지지했던 영국조차 많은 계약을 따내지는 못했습니다.
영국이 하수처리시설 복구 계약을 따낸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 일이 블레어가 하고 있는 구실 ― 미국 제국의 하수도 청소부 같은 구실 ― 에 매우 잘 어울리기 때문입니다. 정말 재미있지 않습니까? 펜타곤[미국 국방부]의 누가 결정했는지는 몰라도 유머 감각이 뛰어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진행되고 있는 과정입니다. 이라크의 의료 체계, 이라크의 주택, 이라크의 교육 체계가 몽땅 사유화되고 있습니다. 저들은 6월 30일 “주권 이양” 뒤에 꼭두각시 정부가 들어서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석유 거래도 시작할 것입니다.
아메드 찰라비와 꼭두각시들이 이행해야 할 핵심 요구 중 하나가 이라크 석유를 외국 기업들에 개방하는 것이라는 점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꼭두각시들과 미국이 내세울 명분은 이라크 석유 관련 밀린 과업을 처리하고 엉망진창인 이라크 유전 상황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투자 자금은 전쟁으로 피폐해진 이라크가 아니라 오직 외국 기업들로부터만 조달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계획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런 계획이 효과적으로 실행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계획이 효과적이 못하다는 기사를 <LA 타임스>와 <뉴욕 타임스> 1면에서 날마다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저항은 외국 기업들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미국이 세운 정치적·군사적·경제적 계획에 문제를 야기할 것입니다.
군사적으로 그들은 곤경에 빠져 있습니다. 제 생각에, 만약 이라크 남부 지역의 지도자들이 공공연히 반란에 나서기로 결심한다면 그 때는 점령의 첫 번째 국면이 끝나고 거대한 민족해방운동이 출현하게 될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모든 징후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부시 정부는 저항 세력이 사담 후세인 잔당들이라고 했다가, 그 다음엔 외국인들, 그 다음엔 이슬람주의자들, 그리고 이제는 외국에서 들어 온 이슬람주의자들이라고 말합니다. 또, 후세인이 체포되면 저항 세력이 와해될 것이라고도 주장했습니다. 무엇이 진실입니까?
반전 운동의 일부가 주장했듯이, 저항은 점령 초기부터 존재했습니다. 이라크 저항 세력을 그 범위, 규모, 효율성 등의 측면에서 제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점령에 맞서 투쟁했던 프랑스나 벨기에의 저항 세력이나 이탈리아 파시스트 독재 정권에 맞서 싸웠던 저항 세력과 비교해 보십시오. 도저히 비교가 안 됩니다.
프랑스 저항 세력(레지스탕스)이 몇 년이나 걸려서 도달했던 수준에 이라크인들은 이미 점령 첫 주에 도달했습니다. 예방전쟁과 외세의 점령에 맞선 이라크인들의 저항은 군사적 계획의 측면에서 제2차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이탈리아·벨기에 저항 세력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습니다.
제 생각에 미국이 저지른 주된 실수는 후세인이 저항 세력을 조종하고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처음부터 이라크 상황은 후세인이 저항과 무관하다는 사실 ― 본질적으로 저항 세력은 탈집중화돼 있고, 각각의 도시와 마을들, 종파들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 ― 을 보여 주었습니다. 어떤 한 개인이 이를 통제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저는 후세인이 체포되기 훨씬 전에 <데모크라시 나우!(Democracy Now)>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크리스토퍼 히친스와 논쟁한 적이 있는데, 저는 후세인 체포가 저항을 종식시킬 것이라는 주장은 전혀 진지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히친스도 그 점에 대해서는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부시 정부를 지지하는 다른 대다수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일단 후세인이 체포되면, 저항도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민주당의 대선 후보 경선주자였던 하워드 딘이 후세인 체포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주류 언론들은 어떻게 그런 말을 입에 올릴 수 있느냐며 그를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그 문제에 대해서만은 딘이 옳았습니다.
그리고 바트당의 후세인 세력이 복귀할까 봐 두려워 저항에 나서기를 꺼려했을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그럴 수 있기 때문에 후세인 체포가 실제로는 저항을 더욱 고양시킬 수도 있다고 말했던 우리 모두의 주장 역시 옳았습니다. 지금 정확히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저항은 점점 더 격화했고, 우리는 지금 날마다 점령군 ― 단지 미군뿐이 아니라 ― 이 공격당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라크 남부에서도 저항은 격화했습니다. 영국 군인들은 총격 세례(under fire)를 받고 있습니다. 바스라 거리에서는 아이들이 영국군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제 팔레스타인 점령과 이라크 점령 사이에는 실질적인 연관이 존재합니다. 이스라엘은 펜타곤더러 이스라엘이 하는 방식 ― 자신의 군사 기지에 있다가 자신이 원할 때 나가서 공격하는 방식 ― 을 따르라고 충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미국 민간업체 직원들이 매복 공격당한 일 때문에 미국이 팔루자를 응징하는 과정에서 과연 이스라엘 모델을 따를 것인지 아닌지 보게 될 것입니다. 만약 미국이 이스라엘의 충고를 따른다면, 그들은 팔루자를 폭격하고 사람들을 학살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순전히 역효과만을 불러일으킬 매우 어리석은 짓일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식민지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점령 세력이 공격당하고, 공격한 사람들을 찾아가 응징하고,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학살당하고, 무고한 이라크인들의 죽음이 더 커다란 분노를 낳고, 더 많은 사람들이 저항에 가담하는 것 말입니다. 이것은 저항 운동의 철칙입니다. 따라서 미국이 이스라엘의 충고와 이스라엘의 방식을 따른다면 상황이 매우 급격히 발전할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팔루자 공격 과정에서 벌어질 학살은 저항 세력 내의 발전에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기본적으로 저항 단체들의 수가 늘고 있습니다. 현재 이라크에서는 두 가지 저항 형태가 있습니다. 하나는 비무장 저항인데, 남부의 시아파 종교 지도자들이 이 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핵심 지도자는 아야톨라 시스타니입니다. 그는 정치적으로 투쟁하면서, ‘우리는 이것은 원하지만 저것은 원치 않는다’는 식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는 제헌의회 구성을 위한 자유 선거를 요구하고 있는데, 이것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까지 그는 요구들을 제기하고, 부분적인 양보를 얻어내고, 그러면 한발 물러서는 식으로 행동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지속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6월 30일로 예정된 주권 이양은 정말이지 완전한 사기극이 될 것입니다. 미국은 그들이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권력을 넘겨주고, 새 이라크 총리를 임명하고, 8∼9개 핵심 군사 기지들 ― 원래는 옛 이라크 군대 기지들 ― 에 진을 치고는 꼭두각시들이 미국의 명령을 따르도록 할 것입니다. 꼭두각시 정부의 매우 허약한 경찰과 군대는 저항 세력의 공격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 할 것입니다. 단 하나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시스타니와 남부의 종교적 정당들 가운데 일부가 주권 이양이 완전한 사기라는 것을 깨닫고 즉각 선거를 요구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만약 이러한 선거가 거부된다면 그들은 과도통치위원회에서 탈퇴할 수 있고, 만약 그런 세력들이 이탈한다면 이라크는 틀림없이 대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미국은 선거를 허용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내세운 꼭두각시들 ― 그들이 미국에서 데려온 “양육된 아랍인들” ― 이 선거에서 이기지 못할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선거에서 승리할 정당들은 미국이 이라크를 떠나고 이라크인들이 이라크 석유를 통제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이라크 침략과 점령의 이유가 아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국이 이를 받아들일 리는 결코 없습니다.
따라서 미국에서 대규모 반전 운동이 등장해 상하 양원에 충분한 압력을 넣어 이라크에서 미군을 철수시킬 때까지 [이라크 민중의] 투쟁은 계속될 것입니다. 베트남전 때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라크전과 베트남전은 시대도 다르고 똑같을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미국에서 벌어지는 논쟁들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민주당이 수시로 생각을 바꾸는, 그래서 도저히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을 대통령 후보로 선출한 것은 비극입니다. 그는 전쟁에 확고히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는 전쟁이 잘못됐다고 말하지만, 미군이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는커녕 점령을 강화하기 위해 더 많은 군대를 보내고 싶어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반전 운동은 대통령 선거가 끝날 때까지 초조하게 그 결과를 기다릴 것입니다. 하지만 일단 선거가 끝나면 누가 이기든 백악관과 미국 관료들에게 점령 중단을 요구하는 압력을 정말로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이라크 민간인 사상자가 크게 늘고 있고, 미군과 다른 나라 병사들도 죽고 있습니다. 이 병사들과 이라크 민간인들이 죽어야만 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점령 종식이 절실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라크 사람들은 스스로 미래를 결정할 능력이 없다는 주장은 전혀 터무니없는 소리입니다. 그들은 서로 아주 잘 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전에도 그랬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바트당을 배제해서는 안 됩니다. 철저히 타락한 세력들인 후세인과 그 파벌들이 제거됐기 때문에 바트당도 적법한 정당입니다. 종교적 정당들이나 이라크 공산당 ― 미국의 점령을 지원하는 협력파와 비(非)협력파 둘 다 ― 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만약 이 사람들이 한데 모여 대규모 집회를 연다면 ―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조짐들이 있습니다 ― 미국은 이라크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참여하는 것이 쿠르드족 지도자들의 이익에도 부합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쿠르드족이 고립을 자초한다면, 어느 누구도 터키의 침입으로부터 그들을 방어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아파 지도자들의 지지를 얻으려던 미국의 노력은 실패한 것입니까?
제 생각으로는 거의 실패 직전인 듯합니다. 일단 주권 이양이 이뤄지면 권력 쟁탈전이 벌어질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만약 시스타니나 그 동맹 세력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그들은 떨어져나갈 것입니다.
부시의 국가안보보좌관 콘돌리자 라이스는, “우리는 이라크인들의 정신을 개조하고 싶다”고 공공연히 말합니다. 이것은 정말이지 매우 역겨운 발언입니다. 거의 파시스트나 다름없는 발언이죠. ‘우리는 이라크인들이 점령을 지지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들이 지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들을 후세인 지지자라고 비난하겠다’는 말입니다.
이런 발상이 전혀 깨닫지 못하는 점은 ― 제가 ≪부시의 바빌론≫이라는 책에서 자세히 다룬 내용이기도 한데 ― 사담 후세인과 그의 정권 그리고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증오하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 더는 아닐지라도 ― 자기 나라를 점령하고 있는 미국에 대해서도 적대적인 사람들이 이라크에는 아주 많다는 사실입니다.
이라크인들의 정치가 단 두 가지 ― 후세인을 지지하거나 아니면 점령을 지지하거나 ― 로만 나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부시가 9·11 이후 한 말 ― 우리 편이 아니라면 테러리스트 편이다 ― 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이분법입니다. 그것은 9·11과 관련해서도 틀렸고, 이라크와 관련해서도 완전히 틀렸습니다.
진실은 전쟁이 그들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지배계급 엘리트 내에서 심각한 분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폴 오닐이 재무장관직을 사퇴하거나 백악관 근무를 관둔 리처드 클라크[전 백악관 테러담당 보좌관]가 지금 이라크 침략에 대해 매우 신랄하게 정부를 비난하는 것을 보십시오. 이라크에서 저항이 없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언론은 팔루자에서 미국의 민간업체 직원들이 사망한 것을 두고 이라크 “폭도”의 야만성을 보여 주는 증거라고 떠들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어떻게 답변해야 할까요?
먼저 팔루자 상황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미군 준장 마크 키미트가 이라크에는 두 가지 폭력이 있다고 말한 것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하나는 자살 폭탄 공격을 감행하는 테러리스트들의 폭력인데, 이것은 대체로 알 카에다의 소행이라는 것입니다. 덧붙이자면, 저는 이것이 완전히 사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가 테러리즘과 구분한 두 번째 형태의 폭력은 “폭동”입니다. “폭동”은 미군이 저항을 일컫는 암호입니다. 이 말은 그들이 <뉴욕 타임스>나 <LA 타임스> 기타 미국 언론들에게 사용하라고 지시한 단어이기도 합니다.
키미트는 팔루자에서 벌어진 일은 폭도의 짓이라고 매우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틀림없이, 그 사건은 매우 끔찍했고, 이를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매우 잔혹했고, 저는 여기에 대해 변명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흥미로운 것은 서방 언론에서는 실제 장면이 전혀 보도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장면은 아랍 방송에서나 볼 수 있지, 서방 언론에서는 아닙니다. 그들은 폭파된 차량은 보여 주지만, 잔학 행위들을 보여 주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미국의 여론 악화를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심지어 전쟁을 지지하는 사람조차도 “세상에, 상황이 이렇게 악화됐다니. 우리는 전혀 모르고 있었잖아?” 하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죠.
제가 늘 주장했듯이 추악한 점령이 계속되고 있는 곳에서 품위 있는 저항(pretty resistance)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저항의 성격을 좌우하는 것은 점령의 성격과 형태입니다.
(번역: 김용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