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수명 얼마 남지 않았다”
뉴욕타임스-가디언 동시경고
“고유가로 세계화 허구입증”..`전쟁 주기론’ 경고
세계경제의 흐름을 상징하는 화두로 자리잡은 이른바 `세계화’가 `강자의 지배’를 미화하는 허구 논리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아온 가운데 `세계화의 수명이 다됐다’는 분석이 4일 미국과 유럽의 유력지들에 동시에 게재돼 눈길을 끈다.
영국의 가디언은 ‘변칙인 세계화의 수명이 다됐다’는 제목의 제임스 쿤슬러 기고를 통해 그간 싼 에너지와 상대적인 평화 덕택에 어렵사리 지탱해온 세계화란 `거짓 논리’가 고유가 시대를 맞아 한계를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쿤슬러는 ’장기간의 긴급 사태(Long Emergency): 집중되는 21세기의 파국에서 살아남기’란 책을 썼다.
미국의 뉴욕 타임스도 `지금의 상황이 1914년과 너무도 흡사하다’는 제목의 마이클 세싯 국제문제 전문기자 분석에서 ‘세계가 전쟁 주기에 접근했다’면서 투자자들이 이런 지정학적 불안을 과소 평가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두 신문은 지난 1870-80년에서 1차 대전이 터진 1914년까지를 `1차 세계화 시기’로 표현하면서 당시는 석탄과 증기가 에너지원이었으나 이후 석유로 급격히 대체되면서 석유주도권 다툼이 두차례 세계 대전의 실질적인 원인의 하나였다고 분석했다.
뉴욕 타임스는 당시와 지금이 너무도 흡사한 측면이 많다면서 자본시장 규제완화, 저인플레, 원자재 가격상승, 새로운 강국 부상, 테러 급증과 이로 인한 안보우려 고조, 그리고 열강의 재정적 어려움 등을 거론했다.
다음은 두 신문의 분석을 간추린 것이다.
◇ 가디언 = 미국이 효용성에 특히 목청을 높여온 세계화는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돋보이는 국제사회의 평화 구도와 싼 에너지 가격에 크게 힘입은 극히 일시적인 특수 환경의 산물이다. 이런 조건이 사라질 경우 일시에 붕괴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세계화를 주도해온 미국의 파워 엘리트들이 위기 속으로 몽유병환자 걸음을 하고 있는 위험한 형국이다.
제1차 대전이 터지기까지의 1870년부터 1914년까지는 도로 등 건설이 붐을 이루면서 대양을 오가는 교역이 크게 번성하던 `1차 세계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나폴레옹 전쟁 이후의 상대적인 평화기이기도 하다. 크림과 보불 전쟁 등이 있기는 했으나 국제사회를 뒤흔들 정도는 아니었다. 미국의 남북전쟁 역시 그랬다.
중산층이 늘어나면서 미국과 유럽의 생활도 눈에 띄게 윤택해졌다. 강대국간 교역도 급증했다. 특히 미국에게는 당시가 진보의 시대였다.
그러나 이렇게 유지되던 20세기의 안정이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페르디난드 대공이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암살되면서 깨졌다. 그러나 세계가 1차 대전으로 빠져든 진짜 원인은 뭘까.
실제 원인은 에너지 주도권 싸움이다. 당시 산업 구도가 서서히 바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석탄 경제에서 석유 경제로 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 와중에 1차 세계이 터졌다.
당시는 카스피 해역과 중동의 석유가 개발되기 전으로, 석유를 가진 미국이 한축에 있으면서 유럽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중심이 돼 석유자원 확보에 혈안이던 시기다. 결국 1차와 2차 대전들을 거치면서 독일은 패배해 석유에서 멀어졌다. 독일의 동맹국이던 일본도 같은 운명이 됐다.
이후 미국 주도의 대량소비 산업시대가 본격 구축되기 시작했고 이것이 전세계로 확산되면서 그 뒤를 싼 석유가 지탱했다. 석유 만능의 또다른 세계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러나 유가가 폭등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이제 세계는 머지않아 석유가 고갈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열강들이 남아있는 석유를 확보하기에 혈안이 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런데 문제는 남아있는 석유의 3분의 2 가량을 특히 미국을 싫어하는 반서방 세력이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라크 전쟁이 이와 무관치 않음이 물론이다.
이 와중에 중국도 급부상하고 있다. 세계화의 덕을 톡톡히 본 사례이다. 미국 대량 소비를 중국이 뒷받침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세계화의 태양은 곧 지려고 한다. 1차 세계화 시대가 종말을 고할 당시와 너무도 흡사한 상황이다.
◇ 뉴욕 타임스 = 국제 금융시장의 투자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고도화되고 있다. 그러나 투자자들이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지정학적 변수다.
하버드대의 니올 퍼거슨 교수는 최근 투자은행 메릴 린치의 중역과 주요 고객들에게 행한 강연에서 이는 큰 실수라고 경고했다. 지금의 지정학적 상황이 1차 대전이 터지던 지난 1914년과 너무도 흡사하다는 것이다.
또다른 투자은행 UBS의 조지 매그너스 수석애널리스트도 같은 입장이다. 그는 지금과 1914년의 국제금융시장 상황이 판에 박은 듯이 똑같다고 지적했다. 규제완화 추세와 시장통합 움직임을 우선 지적했다. 또 무역이 붐을 이루는 것과 외국직접투자가 활발한 것, 그리고 새로운 시장을 찾는 경쟁의 치열함까지 모두가 당시와 지금이 똑같다는 얘기다.
퍼거슨 교수는 “100년 전에는 마르크스가 세상을 두렵게하던 것이 요즘은 오사마 빈-라덴이 같은 역할을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라면서 테러가 극성을 떨치는 것과 이를 빌미로 ‘테러와의 전쟁’에 목청 높이는 것 모두가 똑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테러를 빌미로 안보 필요성을 과다하게 강조하는 모습”도 당시나 지금이 다를게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금융시장이 지정학적 불안 요소를 너무 경시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면서 ”모두가 1929년의 대공황을 상기하지만 실상 1914년 상황에서 더 많은 교훈을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월가 일각에서 금과 채권 투자에 관심을 갖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퍼거슨 교수는 덧붙였다.
퍼거슨 교수는 “세계화가 우리 당대에 끝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면서 문제는 “한꺼번에 터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가 걱정하는 3차 대전이 바로 그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