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제국주의, 2020년 안에 몰락할 것”
요한 갈퉁 강연…”美, 한반도에서 못다 이룬 ‘승리’ 원해”
2006-05-25 오전 10:43:10
‘현대 평화학의 아버지’ 요한 갈퉁 ‘세계평화네트워크(Transcend)’ 소장이 “미국이라는 제국은 2020년 안에 몰락할 것”이라고 24일 주장했다.
이날 동북아평화센터 등 18개 시민사회단체의 초청으로 서울 중구 장충동 만해 NGO 교육센터에서 강연을 가진 갈퉁 소장은 자신이 독일의 통일과 소련의 몰락을 미리 예언한 바 있다고 주장하며 “2000년대에 들면서 나는 미국이라는 제국이 25년 안에 몰락할 것이라고 예언했으나 부시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그 시기가 5년 앞당겨졌다”고 말했다.
“럼즈펠드, 국방장관이라기보다 스스로를 방어하기에 급급”
비폭력적 방법을 통한 갈등 조절을 목표로 하는 트랜센드(Transcend: 초월하다, 뛰어넘는다는 의미)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갈퉁 소장은 “미국은 평화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나라”라고 규정하며 “미국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팍스 아메리카’, 즉 미국 우월주의”라고 말했다.
갈퉁 소장은 미국은 ‘평등’을 의미하는 평화의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아 모든 것을 오직 폭력으로 해결하려고 한다고 비판하며 “어떤 사람들은 미 제국주의가 영원히 이어진다고 하지만 그것은 틀린 얘기”라고 못 박았다.
▲ ‘현대 평화학의 아버지’ 요한 갈퉁 세계평화네트워크 소장. ⓒ 프레시안
갈퉁 소장은 “제국주의란 그 자체로 모순을 가지고 있으며 그같은 모순이 쌓이면서 만들어진 상승 효과가 제국의 몰락을 가져오는 것이 역사의 이치”라며 워싱턴은 이미 상위 지배계층에서부터 사기 저하와 심각한 부패 현상을 보이고 있으며 그것이 몰락의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부시 대통령은 가상의 현실 속에 살고 있다”며 “부시 대통령의 눈에는 오직 자유와 민주주의와 같은 듣기 좋은 말만 들릴 뿐 이라크의 현실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이라크 전쟁의 책임 추궁 등의 이유로 퇴역 장성들과 정치인들의 사임 압력을 받고 있는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에 대해서는 “럼즈펠드는 더 이상 국방장관(Secretary of Defense)이 아니라 스스로를 방어(defense)하기에 급급한 사람”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그는 이어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것은 미국이 아니라 이라크의 저항세력”이라고 평가하며 “‘이라크 전쟁이 얼마나 오래 갈 것 같냐?’고 물으면 미국인들은 ‘오는 가을이면 끝날 것 같다’고 대답하는 반면 이라크 사람들은 ’500년 정도 갈 것’이라고 대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금 한반도에 필요한 건 ‘국가 통일’ 아니라 ‘민족 통일’”
“미국은 베트남전에서도 졌으며 한국전쟁도 이기지 못했다. 자존심의 상처를 받은 것”이라고 미국의 대(對)한반도 정책의 뿌리를 설명한 그는 “미국은 이기는 것을 좋아하는 국가다. 한반도에서도 미국은 못 다 이룬 승리를 얻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50여 년 전 한국전쟁에서 승리를 얻지 못함으로써 자존심의 상처를 입은 미국이 오늘날 “한반도의 모든 조건들을 제 손 위에 놓고 통제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같은 미국의 행동은 “12살 짜리 소년이나 하는 행동”이라고 지적하며 “워싱턴은 그런 자세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북의 통일과 관련해서 그는 한반도에 지금 필요한 것은 “국가의 통일이 아니라 민족의 통일”이라며 “한국에서는 통일의 개념이 구별 없이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의 통일은 하나의 정부가 세워지는 것”인데 그런 통일을 이루려다 보니 지난 세월 동안 남북은 “서로 망하기만 바라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간 통일을 이루려고 할 때 발생하는 문제 때문에 민족의 통일은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무엇보다 남북한의 교류와 대화를 통한 ‘민족 차원의 통일’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15년 전에 정치적 통일을 이룬 독일이 아직도 완전한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과거 동서독 사람들 사이에 많은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예로 들기도 했다.
“6자회담 실패할 것이지만 아무 소용 없는 건 아니다”
▲ 24일 18개 시민사회단체의 초청으로 강연에 나선 요한 갈퉁 소장. ⓒ 프레시안
“1990년 서울을 찾았을 때 방북 경험을 가진 나에게 북한에 대해 이것저것을 물어보던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은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나라’였다”고 회고한 갈퉁 소장은 그 때와 비교하면 많은 것이 이미 변했다고 말했다.
이날 북한이 25일로 예정돼 있던 경의선ㆍ동해선의 시험 운행을 미루자고 통보해 온 것과 관련, 그는 “물론 철도가 이어져서 기차가 달릴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명한 뒤 “그러나 5년 전보다 지금은 훨씬 좋아졌으며 앞으로 5년 후는 더 좋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앞으로의 남북 관계는 “두 발짝 앞으로 가고 한 발짝 물러나고, 이런 것이 반복되다 보면 지속적으로 앞으로 전진할 것”이며 그렇게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한과 미국의 관계에 대해서는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되 ‘아니(No)’라고 말할 때는 공개적으로 안된다고 말해야 한다”며 “친구가 다른 국가를 침략한다고 ‘나도 군대 보내줄께’라고 말하는 것은 좋은 친구는 아니다”라고 그는 충고했다.
그는 또 “6자회담은 실패할 회담”이라고 전망하면서도 “그러나 아무 소용 없는 것은 아니다”면서 “이런 회담을 통해 남북한과 중국은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노르웨이 출신인 갈퉁 소장은 미국 컬럼비아 대학과 프린스턴대학의 교수를 거쳐 현재 유럽평화대학 등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세계평화연구소(PRIO), 세계평화학회(IPRA)의 창립자이기도 하다.
여정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