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김정일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막아라”
대북 금수 사치품 목록 공개…그런데 ‘왜 지금?’
2006-12-01 오후 2:43:16
미 상무부는 30일 대북 금수 사치품 목록을 확정하고 관보를 통해 이를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사치품 60여 개의 목록은 “마치 독재자가 산타에게 보대는 편지같다”는 <워싱턴 포스트>의 비유마냥 펜더 스트라토캐스터(최고급 기타), 할리 데이비슨(오토바이), 스키두(스노우 모빌) 등 일반 북한주민들과는 무관해 보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최고위층의 ‘기호품’을 중심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 밖에도 DVD 플레이어와 29인치 이상의 대형 플라스마 텔레비전, 크리스탈, 모피, 샴페인 등과 함께 김 위원장이 즐기는 것으로 알려진 캐비어와 꼬냑도 금수 품목에 포함됐다.
이에 카를로스 구티에레스 상무장관은 성명을 통해 “북한 주민들은 아사지경에 처해 있는데 정권이 꼬냑과 시가에 돈을 물 쓰듯이 하는데 변명을 둘 여지가 없다”며 “우리는 북한의 지배층만을 위해 구입되는 이들 사치품들의 수출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구티에레스 장관은 또 “우리는 북한 주민들을 위한 식품과 의약품 같은 기본품목들은 금수하지 않을 것”이라며 “금수목록은 북한 지배층만을 겨냥하도록 면밀하게 검토된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9.19 직후 BDA 계좌 동결 상황과 유사?
미국의 이 같은 조치는 지난 10월 북한의 핵실험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채택된 결의안 1718호에 따른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할 것이란 의사를 밝혔음에도 핵폐기에 진전이 없는 한 제재는 계속될 것이라던 당초 공언을 지켜 나간 것이다.
그러나 북한 수뇌부를 겨냥한 금수목록이 발표된 시점이 ‘미니 6자회담’이라 불리던 베이징 북미 양자회담 직후인지라 미국이 모종의 의도를 가진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지난 28, 29일 이틀 동안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와 6자회담이 재개될 경우 주고받을 수 있는 구체적인 조치에 관한 생각을 교환한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북한으로 돌아가 다른 지도부와 이에 대한 상의를 진행하고 있을 시점에 김 위원장 주변에 대한 미국의 압박을 가시화하고 나선 셈이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해 9.19 공동성명 발표 직후 방코 델타 아시아(BDA)에 대한 계좌 제재를 발표해 협상 기류에 찬물을 끼얹은 것과 유사한 상황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북한이 BDA 계좌 동결에 반발하며 테이블을 박차고 나간 이후 6자회담 공전은 1년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다.
”꼬냑으로 로케트 쏘냐…핵폐기와는 무관”
이 같은 미국의 대북 사치품 규제는 북한 고위층에 대한 ‘심정적 압박’ 외에 핵폐기와 관련한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는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 위원장의 취향을 다룬 <위험한 세계의 지도자와 추종자들>이란 책을 쓴 제럴드 포스트 조지 워싱턴대 정치심리학 교수는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실크 스카프, 명품 만년필, 모피, 가죽 핸드백 등을 규제하는 것은 북한 지도부와 그의 가족들의 생활에 치명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사치품 규제가 근본적인 제도 변화를 초래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포스트 교수는 “오히려 김 위원장이 아이팟(iPod) 부족 사태에도 불구하고 분발해야 한다며 지도부를 독려하고 나설 수 있다”며 “헤네시(꼬냑 브랜드)가 로케트 연료로 쓰이지는 않는 만큼 사치품 부족 사태가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을 종식시킬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윤/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