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G 권고로 부시 행정부 중동정책 변화 올까>
(카이로=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미국의 초당파 이라크연구그룹(ISG)이 6일 제시한 이라크 사태 해법은 중동 역내의 제 갈등 요인을 포괄한 프리즘을 통해 이라크 문제에 접근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ISG가 권고한 안을 향후의 중동 정책에 어느 정도 반영할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2003년 3월 무모하게 감행한 이라크 전쟁 이후 중동지역에서 외교, 군사적으로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에 ISG가 권고한 내용을 바탕으로 중동정책을 수정해 나갈 것은 확실해 보인다.
◇美, 이란-시리아 포용정책 현실화될까 = ISG는 종파간 분쟁으로 내전상황에 처한 이라크의 치안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 이란과 시리아와의 직접 대화를 촉구했다.
이같은 대안이 나오게 된 것은 이라크에 정치적, 종교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란과 시리아를 활용하면 이라크의 혼란상황을 진정시킬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시아파 주류 국가인 이란은 미국의 침공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뒤 이라크에 대한 영향력이 커진 게 사실이다.
이라크의 집권세력으로 후세인 집권 시절 핍박을 받았던 시아파가 부상했기 때문이다.
이라크의 정치안정화를 이룩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시아파 지도자들은 대부분 이란과 유대관계를 맺고 있고 수니파와의 종파 분쟁을 이끌고 있는 무크타다 알-사드르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은 이란이 자국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사드르를 추종하는 민병조직을 지원하고 있다는 의심까지 하고 있다.
수니파 주류 국가이면서 아랍사회주의 정당인 바트당이 정치권력을 쥔 시리아도 이라크 안정을 흔드는 국가로 지목돼 왔다.
시리아가 후세인 집권 시절의 집권당이던 바트당 추종자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해 이들이 시리아를 거점으로 반미 저항투쟁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는 것이 미국의 주장이다.
미국은 시리아에 국경통제를 강화해 저항세력이 이라크로 유입되는 것을 막아줄 것을 요구했지만 시리아는 외면해왔다.
ISG는 이런 정황에 근거해 이라크 안정화를 위해서는 이란과 시리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보고 두 나라와의 대화를 통해 이라크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포용정책을 추구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두 나라와 미국 사이에는 양측 관계의 진전을 가로막는 첨예한 정치현안들이 산적해 있어 부시 행정부가 이란과 시리아를 껴안고 가는 정책을 좇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우선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미국의 자존심을 짓밟아온 이란은 미국이 양보할 가능성이 없는 핵 문제로 대치하고 있다.
이란은 미국 등 서방국들이 독점하는 핵연료 공급구조를 깨야 한다며 핵 주권을 내세워 핵 개발을 추진하고 있고 친미 왕정을 전복시킨 이란의 시아파 정권을 불신하는 미국은 이란의 핵 개발이 세계안보를 위협할 것이라며 반대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양측의 적대적 감정은 부시 행정부 들어 심화했기 때문에 부시 대통령이 먼저 고개를 숙이고 이란에 화해의 손짓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란과 미국의 관계도 그렇지만 시리아와 미국 관계에도 이스라엘이 관련돼 있어 양측의 관계 호전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미국은 이스라엘이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때 점령한 골란고원 반환 문제에서 계속 이스라엘 편을 들어줘 시리아와의 사이가 더욱 나빠졌다.
시리아는 또 레바논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원하고 있지만 미국은 이를 이스라엘에 대한 안보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
지난해 2월 발생한 라피크 하리리 전 레바논 총리 암살사건은 시리아와 미국의 사이를 더 벌려놓았다.
미국이 이 사건의 배후에 시리아가 있는 것으로 몰아갔고 결국 시리아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사회의 압력에 밀려 레바논에 29년간 주둔시켰던 군대를 작년 4월 철수함으로써 레바논에서의 영향력이 급속히 위축됐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최대 위협세력인 레바논 내 무장 정파인 헤즈볼라를 놓고도 시리아 및 이란과 갈등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부시 행정부가 시리아와 이란 포용정책을 급격히 추진할 공산은 크지 않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또 일각에서는 이라크 문제와 관련한 시리아와 이란의 역할이 부풀려졌다는 지적이 있는데다 미국이 이란과 대화에 나설 경우 이란의 역내 위상이 높아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친미 아랍권 국가들이 반발할 것이라는 점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라크다르 브라히미 전 유엔 이라크 특사는 AP 통신에 “미국이 이란과 시리아와 대화하면 이라크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며 양측의 대화는 문제의 일부를 해결할 수 있겠지만 또 다른 많은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범 아랍권 신문인 알-하야트의 살라메 느마트 워싱턴 지국장은 미국이 이란이나 시리아와 대화에 나설 경우 특히 이란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하는 이집트와 사우디 아라비아 같은 미국 동맹들의 반발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라크 사태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 ISG는 미국이 이라크 사태를 포함한 중동 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을 직접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학자들 간에는 오래 전부터 중동 문제의 근원을 팔레스타인 문제에서 찾으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부시 행정부를 장악한 네오콘 세력이 팔레스타인 문제와 다른 중동 문제를 구분해 보려 했다는 점에서 ISG의 견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대인들이 1948년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을 세우면서 시작된 팔레스타인 문제는 반세기 넘게 아랍ㆍ이슬람권에 굴욕감을 안겨준 사건이었다.
아랍계 무슬림인 팔레스타인인들은 잃어 버린 땅을 되찾기 위해 끈질기게 저항했고 이스라엘은 미국의 비호 속에서 대화를 통한 해법을 찾기 보다는 무자비하게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분쇄하는 무력 우위의 정책을 고수했다.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인 알-카에다가 민항기를 이용해 미국 본토를 공격한 9.11 테러의 원인도 그 기저에는 미국의 일방적인 이스라엘 비호정책이 자리하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9.11 테러의 원인을 찾아 해소하기보다는 테러세력을 소탕하는 미봉책을 추구하면서 그 연장선상에서 이라크 침공을 감행했고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오늘날 혼돈의 이라크라고 볼 수 있다.
내전보다 더 지독한 상황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라크 상황은 시아-수니파간 분쟁(바그다드를 포함한 이라크 중부), 시아파 내부 갈등(남부), 실권(失權)한 수니파의 저항(서부), 아랍족과 쿠르드족 갈등(북부)이 혼재된 양상이지만 혼란의 큰 축을 미국의 이스라엘 편향 중동정책에 반감을 가져온 아랍이슬람권 전사들이 지탱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ISG는 이런 상황을 간파하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미국의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ISG의 권고는 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해 미국이 공정한 입장에서 접근할 것과 이스라엘의 양보를 압박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은 영토 부분에서 이스라엘이 점령한 팔레스타인 전역을 되찾겠다는 입장에서 한 발짝 후퇴해 1967년 빼앗긴 땅(요르단강 서안과 동예루살렘)의 온전한 반환만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이스라엘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정.재계 등 모든 분야에서 유대인 권력이 장악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미국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핵심 쟁점인 영토 문제에서 이스라엘에 양보하라고 요구할 가능성은 별로 크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아랍권 분석가들은 중동문제 해법의 하나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해결 필요성을 역설한 ISG의 권고는 시의적절했다고 평가하면서도 부시 행정부가 이스라엘 편향 정책을 급격히 수정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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