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스러져간 어린 아이들의 얼굴은 언제나 평온한 것 같다..
구조대원들의 비통한 표정만큼이나 조용히 눈을 감은 아이는 너무나 평온해 보인다..그래서인지 더욱 가슴이 아프다…
누구의 말대로 평화는 언제나 느리게.. 굽이굽이 돌아서 다가올 수 밖에는 없는 것일까?
오늘 한겨레에 실린 기사 입니다.
중동전쟁, 학살에 스러져간 어린 생명들
이본영 기자
» 7월30일 새벽 레바논 남부 카나마을에서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희생된 아이를 구조대원들이 옮기고 있다. 올 한 해 중동지역에서는 무고한 민간인 2만7천여명이 전쟁의 포화 속에서 숨졌다. 카나/AP 연합
인물로 본 2006 지구촌
2006년도에도 지구촌엔 희망과 좌절이 엇갈렸다. 특히 변화 바람이 거셌다.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의 일방주의 외교가 중간선거를 계기로 멈칫하고, 남미에선 좌파 도미노 현상이 나타났다. 어느 해보다 여성 정치인들이 착실하게 전진했다. 초강대국을 꿈꾸는 중국의 질주가 계속됐고, 정보통신 기술을 이용한 보통 시민의 목소리도 높았다. 올 한 해 변화의 복판에 선 인물들을 열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이스라엘의 민가 폭격에 피난처가 무덤으로
형도 누나도 친구도 몰살하는 처참한 나날
세갈래 전쟁 휩싸인 땅, 평화 진혼곡은 언제나
아이는 금방이라도 말똥말똥 눈을 뜨고 ‘엄마’를 찾을 것 같다. 잠자는 모습 그대로 레바논 남부 카나마을의 민가 지하에서 낯모르는 아저씨 손에 들려 나왔다. 장난감 젖꼭지를 목에 건 채. 흰 윗도리와 짧은 바지를 뒤덮은 잿빛 먼지만이 이 아이에게 찾아온 비극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2006년 7월30일 새벽 1시, 이스라엘 전폭기가 쏜 미사일 두 발로 아바스 하셈의 집은 잿더미가 됐다. 하셈 가족과, 그의 집에 함께 피신해 있던 카셈 샬루브 가족 30여명에게 피난처는 그대로 무덤이 됐다. 하루종일 재잘거리며 함께 뛰놀던 형·누나·친구들 모두 함께 하늘나라로 갔다. 그렇게 15명의 어린이가 숨졌다.
카나마을의 비극은 곧 ‘중동의 비극’이다.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시리아·이스라엘·이라크. 중동 전역에서 올 한 해 죄없는 어린이와 민간인들이 그렇게 죽어갔다. 이념과 종교, 파벌, 정치적 대립의 소용돌이 속에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최근 “17세기에 유럽을 휩쓴 30년 전쟁이 중동에서 재연되고 있다”고 썼다. 당시 신교-구교 갈등에 독일·프랑스·덴마크·네덜란드·보헤미아·스웨덴이 휘말리면서 1천만명이 숨졌다.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은 “중동이 이라크와 레바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등 세 가지 내전 위험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하나도 모자라 세 전쟁의 암운이 중동 땅을 휩쓸고 있는 것이다.
올 한 해 중동판 ‘30년 전쟁’의 결과는 참혹하다. 4년째 전쟁과 내전을 거듭하고 있는 이라크에서는 올해만 2만5천여명의 민간인이 희생됐다. 10월에는 개전 이래 가장 많은 3709명의 민간인이 숨졌다. 지난 여름 34일 동안의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쟁에서 레바논 민간인 1300여명이 숨졌다. 이스라엘 쪽도 150여명의 사망자를 냈다. 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도 팔레스타인 사람 500여명이 희생됐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가 수감자 석방협상용으로 붙잡아간 이스라엘 병사 3명을 구출하겠다는 명목으로 두 전쟁을 벌였다. 하지만 죄없는 민간인만 희생시켰을 뿐 정작 이스라엘 병사들은 돌려받지 못했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폐허가 된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남부를 둘러본 한 현지인은 “지옥의 문이 열렸다”고 탄식했다.
‘지옥의 문’은 과연 닫힐 수 있을까? <포린 어페어스>는 중동에서 유일무이한 힘을 행사하던 미국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고 진단했다. 9·11 테러 이후 중동에서 더욱 맹렬하게 패권을 추구하던 ‘미국-영국-이스라엘’의 기세가 한풀 꺾일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국 안에서 이라크 철군 여론이 들끓으면서 “로마제국이 무너지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하지만 아직은 낙관보다 비관이 더 많다. 더욱 처참한 ‘지옥도’가 펼쳐질 수도 있다. 퇴임을 앞둔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최근 “이라크 내전이 전면전으로 치달으면서 중동 전체가 분쟁에 빠질 가능성이 현실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