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PR대행사는 이미 오래 전부터 기업의 위기관리 분야에 주력해 상당한 고수익을 올리고 있다. 지금도 대표적으로 PR맨들에게 회자되는 위기관리의 전형은 지난 90년 걸프전 당시 쿠웨이트가 홍보대행사를 이용해 위기를 극복한 사례다. 당시 쿠웨이트 정부는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판단에 쿠웨이트를 대신해서 싸워줄 다국적군의 참전이 필요했다. 쿠웨이트 정부는 이 일을 위해 힐앤놀튼(Hill & Knowlton)이라는 PR대행사에 거금 6백만달러를 주며 미군을 전쟁터로 끌어들일 묘안을 요청했다.
전문가 영입 체질개선 러시
힐앤놀튼은 우선 심층집단인터뷰(Focus Group Interview)를 통해 미군을 참전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 수집에 나섰다. 그 결과, 이라크 군인들의 잔학성을 부각시키면 미국이 참전할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이 전략을 어떻게 실행시킬지 고민하고 있을 때 마침 미국에 일명 라이라(Nayirah)사건이 터진다. 쿠웨이트에서 온 15세 소녀 나이라는 미국내 한 지역 언론을 통해 이라크 군인들이 쿠웨이트의 한 병원을 습격, 영아들이 누워 있는 인큐베이터 4백여개를 길거리에 내동댕이쳤다고 증언을 한 것이다.
이에 힌트를 얻은 힐앤놀튼은 나이라를 상원인권청문회에 증인으로 세웠고, 그녀가 증언한 내용은 미 전역에 전파돼 국민들을 경악시켰다. 결국 당시 부시 대통령은 미군의 참전을 결정했고, 쿠웨이트는 바라던 다국적군을 자국 내로 끌어들였다. 이 사건은 당시 나이라가 주미 쿠웨이트 대사의 딸로 밝혀지면서 증언의 사실 여부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지만, 힐앤놀튼은 쿠웨이트의 위기관리 프로젝트에 성공했다는 평을 들었다.
이 잔인한 이야기는 의심쩍은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걸프전이 벌어진 지 다섯 달 후 공식적으로 전쟁이 끝나자 ABC 기자 죤 마틴은 쿠웨이트에서 나이라 이야기의 실체를 확인하려고 취재를 했다. 마틴이 인터뷰한 의사에 따르면 쿠웨이트 전체를 통틀어 인큐베이터는 312개가 안된다고 했다. 또한 그 고통스런 증언을 했던 소녀는 미국주재 쿠웨이트 대사 사드 나지르 알 사바의 딸로 밝혀졌다. 심지어 이라크가 침공한 1990년 8월 그녀는 쿠웨이트 있지도 않았다. 이 자작극은 세계 최대 광고기업 중에 하나인 힐앤놀튼의 작품이었다. 쿠웨이트 정부는 이 기업에 6백만 달러를 주며 미군을 전쟁터로 끌어들일 묘안을 요청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작업은 부시의 친구이자 전에 이 회사의 중역이었던 크레이그 풀러에 의해 워싱턴의 진두지휘를 받고 있었다. 청문회 의장인 공화당의원 톰 랜토스와 죤 에드워드에게 감사를 표하려고 그들이 속해 있는 국회인권재단에 쿠웨이트왕가는 5만 달러의 기부금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