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리본의 의미

[필독] 미국에서 온 편지

얼마 전 어느 인터넷 기사에 실린 기사이다. (아프간 피랍자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노란 리본이 미국 대사관 근처에 걸렸다. 여성, 종교 환경 등 78개 시민사회단체 대표 및 회원들이 8월 7일 오전 서울 광화문 미 대사관 인근 정보통신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란 리본을 거는 행사를 가졌다.) 이 노란 리본 달기 행사는 미국에서 직수입된 상징 문화다. 기사와 함께 노란 리본이 걸린 사진을 보며 내내 찜찜했다. 나는 이곳 미국에서 노란 리본과 마주치자마자 섬뜩한 전율을 느끼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쟁 지지자들은 으레 성조기와 함께 노란 리본, 우리의 군대를
증원하자는 구호를 가지고 집회를 갖는다. 2004년 미국 대선에서 이라크 점령 정책 지지자들은 노란 리본 달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치며 조지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지원했다.

이런 까닭에 노란 리본은 미국의 반전평화운동에서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노란 리본의 유래와 쓰임새의 변천을 알면 기가 찰 노릇이다.

이는 미국의 지배세력인 와습(WASP: White Anglo-Saxon Protestant. 앵글로색슨계의 백인 개신교도)전통 문화에 기원을 두고 있다.
그 출발은 영국에서 미국으로의 백인 이주가 시작된 4백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의 청교도 혁명 당시 왕당파에 맞선 의회파 지도자 올리버
코롬웰의 청교도 군사들이 착용한 노란 리본과 장식띠로부터 유래한다.

이들 청교도들은 미국으로 건너와 노란색을 군대의 상징으로 삼았다. 아메리카 원주민을 학살하는 최전선 토벌부대가 바로 백인 기병부대였는데 이들은 짙은 파랑색 제복에 노란색의 부대마크와 전장, 망토를 걸쳤다. 이 기병대가 즐겨 부른 노래가 ‘노란 리본을 목에 두른 여인’이다. 이를 소재로 한 영화가 1949년 존 포드 감독이 제작한 서부영화 ‘노란 리본을 단 여인’이다. 서부영화로 이름을 날린 존 레인이 기병대 대위로 등장한다. 그를 사랑하는 여자 주인공 조앤 드류가 노란 리본을 달고 나온다.

노란리본에 기다림과 만남 그리고 변치않는 사랑이라는 분위기가 덧칠되어 일반 대중의 문화로 확산된 것은 1970년대 초 일이다. 감옥에서 3년 만에 풀려나온 죄수가 옛 연인을 찾아가고 그 여인은 집 앞 참나무에 노란 리본을 걸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1973년 토니 올랜도가 부른 미국의 국민가요 ‘참나무에 노란 리본을 달아주오’가 바로 이를 주제로 한 것이다.

이후 1979년 11월부터 1981년 1월까지 장장 444일간 이란의 미국 대사관에 미국인들이 인질로 잡힌 사건이 발생하자 노란 리본을 미 전역을 뒤 엎었다. 그리고 1991년 걸프전, 2001년 아프가니스탄 침공, 2003년 이라크 공격의 순간마다 노란 리본의 물결이 미국을 휘감았다. “적진에서 잘싸우고 무사히 돌아오시라”는 의미가 그 쓰임새이다. 침략 전쟁을 향해 해외로 나간 미국의 전승과 무사귀환을 바라는 일그러진 군중심리, 왜곡된 애국주의와 맹목적인 보수적 가치관이 뒤엉킨 상징물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슬람 문화권의 중동지역에서도 노란 리본의 의미는 각별하다. 더러운 이방인 이교도에게 씌우는 표식이다. 인종적 차별, 종교적 멸시 대상에게 가하는 낙인과도 같다. 그 기원 역시 아주 오래됐다. 7세기경 페르시아 지역에 이슬람 수니파 지도자 오마르는 유대인에게 노란 리본을 팔에 차게 했다. 이런 연유로 유대인이 의도적으로 미국에서 노란 리본을 유행시키고 있다는 설도 있다. 이슬람 교도에게 당했던 역사적 수모를 되갚음하는 표현물이라는 것이다. 탈레반에게도 노란 리본은 저주의 상징이다. 탈레반은 집권시기에 흰두교도들에게 노란리본을 가슴에 달게 하고 그들의 집 앞에는 노란기를 걸게했다.

숨이 팍팍 막히는 미국과 이슬람권의 노란리본은 없어져야 할 표식이다. 한국의 노란 리본달기 운동을 보며 남의 문화를 직수입하거나 모방할 때 갖는 위험성을 돌아보게 된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세상을 바꾸는 힘과 감동은 그 누구의 것을 무조건 따라하기가 아니라 자신의 창조력에서 출발한다는 교훈을 새삼 떠올린다.

진보정치 337호
한익수의 아메리카를 쏘다에서 전문 발췌
한익수(1994년부터 한겨레 신문 시카고 기자로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