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타나모에는 ‘석호필’이 없다
[리뷰] 영화 <관타나모로 가는 길>
▲ 영화의 한 장면 ⓒ 스폰지
“관타나모만에 있는 자들은 살인자임을 명심하십시오, 그들은 우리들과 똑같은 가치를 지니지 않습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몇 년 전 한 TV뉴스에서 관타나모 수용소에 감금된 사람들을 살인자라고 말했다. 그것도 모자라 부시 대통령은 이들이 인간의 가치를 잃었다고 선포했다. 그러니 수용자들의 인권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감히 신의 은총을 받은 미국 본토를 공격한 죄값은 잔인한 고문과 억압이었다.
부시 대통령의 믿음을 무너뜨리다
2006년 베를린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인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의 <관타나모로 가는 길>은 미국의 반인권적인 수용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실제 관타나모 수용소에 2년 넘게 갇혔었던 세 청년의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들의 인터뷰와 재연화면 그리고 당시 실제 자료화면까지 버무려진 영화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극과 다큐를 오가는 기법으로 고문과 비인간적인 수용 생활을 사실감 있게 그려내 영화가 끝날 때까지 눈에 힘을 주게 한다.
영화는 2001년 9월 어머니가 정해준 신부감을 보기 위해 영국에서 파키스탄으로 날아간 19세 청년 아시프와 그를 따라 나선 세 친구의 여정을 보여준다. 파키스탄에서 끝나야 할 여행길 아프가니스탄까지 연장된다. 빈 라덴의 은신처라는 이유로 미국의 위협을 받고 있던 아프가니스탄을 직접 보고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도 그들의 종착지가 아니었다. 우연히 탈레반 지역에 있다 포로가 된 이들은 영어를 잘 한다는 ‘능력’ 때문에 관타나모 수용소로 이송된다.
영화는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혀 있는 사람들의 억울함을 드러내며 살인적인 고문을 일삼는 미군의 실체를 보여준다. 여기서 “관타나모만에 있는 자들은 살인자”라는 부시 대통령의 믿음은 철저히 무너진다. “사실상 대우는 정당하며 확실히 인도적이고 적절하며 제네바 협정을 대부분 준수하고 있다”는 도널드 럼스펠드 당시 미국 국방장관의 말도 부서진다.
이미 국제앰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는 ‘관타나모 – 무법의 아이콘’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상당수 수감자는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었을 뿐이다, 미국의 보상금을 타기 위해 파키스탄이나 아프가니스탄 군인들에게 끌려 온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단체는 500여명의 수감자 중 미군이 체포한 사람들은 단지 5%에 불과했고 90% 가까운 수감자가 미군이 한 사람당 수천달러의 몸값을 주고 ‘모셔온’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관타나모에 ‘석호필’은 없다
▲ 영화의 한 장면 ⓒ 스폰지
재판을 받고 형기를 사는 감옥이라는 면에서 다르긴 하지만, ‘석호필’을 탄생시킨 <프리즌 브레이크>을 보고 열광했던 ‘미드족’은 어리둥절할 것이다. ‘미국에 아직까지도 이렇게 비인간적인 수용시설 있을 수 있나?’라고 말이다. 또 북한의 인권을 걱정할 정도로 남의 나라 일까지 끔찍하게 챙기는 미국이 폭력과 고문으로 수감자를 대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관타나모는 미국이 아니라 쿠바다. 미국이 지난 1903년 선박용 석탄창고를 세울 목적으로 빌린 땅이다. 30년 뒤 재계약 때는 1년에 현재 가격으로 겨우 4800달러 정도의 금을 사용료로 지불하기로 했다. 그 후 카스트로가 쿠바 정권을 잡은 뒤 미국과의 국교가 단절되자, 사용료를 안 받는 대신 불평등 계약을 끝내자고 했지만 미국은 상호합의를 내세워 아직까지 관타나모를 깔고 앉아 있다.
결국 ‘남의 땅’이라는 점이 <프리즌 브레이크>와의 차이를 만든다. 뭐든지 법대로 한다는 미국의 법은 쿠바 땅에서는 소용없다.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유발하는 행위”를 막자는 미국 연방 고문방지법이 무용지물이다. 지난 1994년 비준한 국제고문방지협약마저 미국은 무시했다. 한 마디로 무법지대인 셈이다. 40여 개 나라에서 온 700여명의 수감자들이 쿠바 관타나모 해군기지로 끌려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수용소 X에서는 일주일에 5분 걷게 해줬어요.”
“파괴되거나 강해지거나 둘 중 하나였죠.”
“잊지 못해요. 동물원에 있는 기분이요.”
영국에서 파키스탄으로 날아와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쿠바까지 이어진 긴 여정. 도중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친구 한 명을 잃어버린 주인공들은 담담하게 수용소 생활을 증언한다. 그리고 재연 된다. 그 사이에 당시 TV뉴스 화면이 흘러나간다. <관타나모로 가는 길>이라는 그물은 숨쉬기 어려울 만큼 촘촘하게 짜여져 있다. 미국의 부당한 행위를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해서다.
구타와 고문의 재연이 수차례 반복되고 “너, 알카에다 맞지?”라는 미국의 집요한 반복 추궁이 지겨워 질 무렵 이들은 풀려난다. 누구도 보상해주지 않는 수용소 생활이었지만, 이들은 “더 나은 방향으로 삶이 달라졌다”는 자신들의 말로 위안을 삼는다.
관타나모 수용소의 폐쇄는 결정했지만…
▲ 영화의 한 장면 ⓒ 스폰지
올해 6월 < AP통신 >은 미국이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를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종교탄압과 고문, 구타 등 가혹행위가 속속 밝혀지면서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폐쇄 압력이 커진 덕분이다. 지난해 6월 수감자 3명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미국도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됐다. 미 연방법원도 관타나모 기지 내 군사법정이 미국법과 국제법에 위배된다는 판결로 폐쇄에 힘을 실어줬다. 이렇게 되면 최소한 수감자들은 미국 내 시설에서 정당한 대우와 재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8월 끝자락에 들어선 지금도 관타나모 수용소는 그대로다. 부시 대통령은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쇄하고 싶지만 다른 국가들이 이곳에 수감 중인 테러 용의자들을 수용하길 꺼리는 바람에 계획이 지연되고 있다”는 궁색한 변명만 하고 있다.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에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의 끝을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제2, 제3의 아시프와 친구들이 관타나모로 향하고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