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

[출판] 그래도, 그럼에도 평화를 믿어라

2006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을 기록한 ‘엄마의 전쟁일기’ <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우리가 저렇게 됐을 수도 있다. 바로 저 고속도로로 갈 예정이었다. 저 다리가 우리가 가려는 리조트로 가는 길이다. 우리가 조금 일찍 떠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아이들은 아직도 문가에서 기다리고 있다. 어떻게 아이들을 데리고 멀리 갈 생각을 했지? 그런 위험한 짓을 하려고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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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전쟁이 그렇다. “야만이라는 단어만이 어울릴 뿐”이다. “작고 사랑스런 아이의 목숨이 희생시켜도 좋은 소모품”으로 취급된다. ‘생명’이자 ‘영혼’이요, ‘자랑’이자 ‘기쁨’인 두 자녀를 품고 33일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때로 분노에 치를 떨고, 무한공포에 휩싸여 눈물을 삼켰다. 그렇게 ‘충격과 공포’를 온몸으로 받아낸 어머니는 이미 어린 시절 또 다른 전쟁을 경험한 터다. 그럼에도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 사랑하는 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

레바논 언론인 림 하다드가 쓴 <아이들아, 평화를 믿어라>(박민희 옮김·아시아네트워크 펴냄)는 2006년 여름을 뒤흔든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을 낱낱이 기록한 ‘엄마의 전쟁일기’다. 애끓는 모정이 고발한 참사와 죽음의 기록을 300여 쪽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가슴은 먹먹해지고 눈가엔 물기가 어린다.

발전소와 공항, 피난민 행렬이 줄을 잇는 도로가 차례로 파괴됐다. 우유공장과 앰뷸런스도 폭격의 목표물로 전락했다. 한 달여 만에 1183명이 숨지고, 4054명이 다쳤다. 사망자의 30% 이상이 13살 미만의 어린이였다. 레바논 국민 4명 가운데 1명이 이재민으로 전락했다. 전투기의 굉음에 몸서리치던 하다드는 이스라엘을 향해 이렇게 외친다. “회계하지도 마라. 너무 늦었다.”

하다드의 시선은 ‘2006년의 야만’에 고정되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그 전쟁의 뿌리를 향한다.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의 원천, 즉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분쟁을 이해하지 않고는 아무도 중동과 중동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다드가 “아랍 역사에서 가장 어두웠던 숙명의 해”라고 표현한 1948년의 이스라엘 건국은 말 그대로 ‘나크바’(재앙)였다. “팔레스타인이 죽고 이스라엘이 태어난” 그해, 끝없는 전쟁의 씨앗이 뿌려진 탓이다.

‘나라 없는 민족’으로 세계를 떠돌며, 게토의 박해와 가스실의 학살을 경험한 유대인이다. ‘조국을 갖고 싶다’던 그들의 비원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래서 더욱 알 수 없다. 왜 ‘그들’은 자기 조상을 핍박하던 ‘냉혈한 가해자’와 같은 모습으로 변해간 걸까? 왜 팔레스타인 민중을 ‘제2의 유대인’으로, ‘디아스포라’의 희생양으로 내몰고 있을까? 하다드는 전쟁의 참상을 기록하는 틈틈이 이스라엘의 건국과 팔레스타인의 저항, 레바논 내전의 역사를 더듬으며 주름진 중동 현대사를 오롯이 되새긴다.

푸아드 시니오라 레바논 총리의 거듭된 눈물도 소용없었다. 누구도 이스라엘의 만행을 막아서지 않는다. ‘적절하지 않은 무력 사용을 자제하라’는 말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이스라엘은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가 있다’는 선동에 이르면 더는 할 말이 없어진다. 눈앞에 놓인 생후 15일 된 아기의 주검을 바라보는 하다드는 차츰 “테러리즘이 생겨나는 진짜 이유”에 다가선다. “작은 심장에 뿌려진 증오의 씨앗”이 그것이다.

그래서다. 하다드는 자신의 아이들이 “아랍인과 유대인이 친구가 될 수 있으며, 레바논과 이스라엘도 언젠가는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믿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 ‘평화’는 “정의롭고 공정한 평화”여야 한단다. “유대인도 아랍인도 서로를 증오하면 안 된다는 사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빼앗긴 땅을 되찾으려는 레바논 저항운동이 옳다는 것”과 “그것이 정당한 권리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나라를 세우도록 돕고, 동등한 권리를 누리며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 이스라엘의 마땅한 의무”다. 어머니의 말이다. 어머니는 항상 옳으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