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의 역사적 교훈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2004년 3월12일 오전 11시, 쿠데타범들이 국회의장을 필두로 본회의장 의장석을 향해 진격을 개시했다. 수많은 이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이룬 대한민국과 민주주의는 수천만의 눈동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국의 적들에 의해 처절하게 유린되었다.
20분도 안 되어 의장석을 차지한 의장은 선언했다. “제2차 본회의를 개의하겠습니다.” 의사봉을 힘차게 세 번 내리친 의장은 발언을 계속한다. “다시 경고합니다. 의장이 경호권을 발동하지 않도록 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때까지 경호권이 발동되지 않았단다!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텔레비전에는 ‘질서유지권(경호권) 발동’이라는 자막이 계속 나왔는데, 다른 사람 아닌 의장이 아니라 하니. 그러면 저 건장한 남성들이 벌인 활극은 대체 무엇인가 그들이 국회 경위라 하더라도 의장의 경호권 발동 없이 그런 활극을 벌였다면 그것은 헌법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쿠데타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런 반의회적 폭력 위에서 진행된 의사일정은 애초에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탄핵소추 결정은 사유의 타당성, 개의시간 변경과 토론의 생략 등 절차 문제 이전에 이것만으로도 원천 무효이다.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위대한 민주시민들은 그날 밤부터 피보다 더 붉은 촛불을 켜들었다. 2만개의 촛불이 10만개로, 그리고 30만, 100만의 횃불이 되었다. 반란의 꺼진 불도 다시 보아야 하지만 이로써 쿠데타는 사실상 진압되었다.
1979년, 이번과 비슷하게 이치에 전혀 닿지 않는 이유로 야당총재를 국회에서 내쫓더니 한 달도 못 되어 그 수괴 박정희가 사살된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배우지 못하는 3·12 반란범들. 91년, 옛소련의 수구파들이 기득권력을 지키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곧 좌절된 데서도 아무 가르침을 얻지 못하는 수구부패 도당들은 촛불을 켜든 민주시민들을 그저 노빠란다, 백수란다, 무지한 부화뇌동 백성이란다. 머리가 완전히 화석이 된 수구배들은 이번에도 역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광화문에서, 서면에서, 금남로에서, 또 가슴속에 촛불을 밝힌 모든 민주시민들이여. 이 점을 분명히 하자. 노짱과 노짱당만으로는 한치의 보수개혁조차 이룰 수 없다는 점을. 노무현 정권 1년과 이번의 쿠데타는 이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 달 전, 친일행위 진상규명법을 누더기로 만들고 한국전쟁 민간인피해규명법을 날려버림으로써 반민특위를 해산하고 수백만명의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범죄집단의 정통 후예임을 만천하에 과시한 3·12 반역범들이 퇴각한 공간에 진정한 보수와 진보가 공존하는 정치를 건설해야 한다.
이 땅에 진보정치의 씨앗을 뿌리는 이들이여. 현 국면의 핵심은 ‘노무현 일병 구하기’가 아니라 국민주권의 수호와 신장이다. 수구도당과 신자유주의 세력 사이의 이전투구를 민중의 정치적 진출의 계기로 전환시켜야 할 때다. 지금 상황을 행여 지난 대선 때의 정몽준 악몽이 재현되는 것으로 오인하지 말자. 그때보다 시간도 많거니와 촛불을 켠 이들은 진보를 수용할 자세가 충분하다. 작은 계산에 매달리지 말고 통크게 이 공간에 진출하여 진보의 자리를 확보하자.
노빠들이여. 차떼기들의 반격이 두려울수록 진보정치에 도장을 꾹꾹 눌러라. 2002년의 빚을 갚으라는 게 아니라 당신들의 사랑 노짱의 이름을 역사에 수치로 남기지 않기 위해서.
제대로 된 보수정치를 원하는 이들이여. 그럴수록 진보정치에 도장을 꼭꼭 눌러라. 그래야 쿠데타를 원천봉쇄할 수 있다. 저 더러운 침략의 전범국가가 되는 치욕을 막아낼 수 있다. 피맺힌 절규 끝에 목숨을 앗기는 노동자들을 살려낼 수 있다. 농가파탄, 농업파괴로부터 농민과 도시민들을 지켜낼 수 있다. 또다른 부안사태를 방지할 수 있다. 수치스런 과거를 청산하고 전진할 수 있다. 그래야만 눈망울 맑은 우리 어린이들에게 미래가 열린다.
황상익 서울대 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