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에서 경계해야 할 북한의 움직임
불과 4주 앞으로 다가온 4.15 총선정국이 노무현 대통령 탄핵파동으로 요동치고 있다. 그러나 4.15 총선정국에는 또 하나의 매우 위험한 불청객이 얼른 눈에 띄지 아니한 채 꿈틀거리고 있다. 4.15 총선정국에 노골적으로 개입하여 작용하려 하고 있는 북한의 행보가 그것이다. 북한은 이미 탄핵파동 이전부터 이번 4.15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도와서 한나라당 소속 당선자를 최소화시키기 위한 대남 선전·선동 활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했었다.
북한은 작년 11월15일 북한이 ´통일혁명당´의 후신으로 조직한 유령조직인 소위 ´한국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 이름으로 ´2004년 총선투쟁 지침´이라는 것을 발표하고 이를 대남방송을 통해 보도했다. 이 ´지침´의 제목은 “반 한나라당 연합전선으로 2004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자”였고 그 내용의 요지는 “미국의 한반도 지배구조를 흔들기 위해 2004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소수당으로 전락시키고 열린우리당 및 민주당과 연합해 민주노동당을 원내에 진입시키자”는 것이었다. 북한은 여기서 모든 지역구에서 ´반 한나라당´ 후보들의 ´후보단일화´를 통한 “한나라당 후보 낙선 운동”의 전개를 요구했다.
3월12일에 있었던 국회에서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로 이 같은 북한의 ´4.15 총선전략´에는 불가피한 차질이 발생했다. 탄핵소추 과정에서 이루어진 한나라당과의 제휴로 민주당이 북한의 ´연합´ 대상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와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조통) 및 ´민족화해범국민협의회´(민화협) 등의 관변단체와 ´로동신문,´ ´민주조선,´ ´평양방송,´ ´조선중앙통신´ 등의 관변언론을 총동원하여 한나라당을 집중적으로 공격함으로써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을 돕는 내용의 선전·선동 활동을 가일층 강화하고 있다. 4.15 총선거 투표일을 “한나라당에 있어서 ´죽음의 날´로 만들자”(로동신문 3월14일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선전·선동 활동은 매체를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눈에는 띄고 귀에는 들리는 것이다. 북한의 총선정국에 편승한 대남공작에는 그 밖에 눈에 띄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 다른 것들이 있다. 지하공작이 그 것이다. 북한의 ´조선로동당´은 ´통일전선부´·´연락부´·´작전부´·´38호실´ 등의 대남공작 부서들과 함께 ´조선불교도연맹´·´조선카톨릭교협회´·´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선천도교회´·´조선종교인협의호´ 등의 ´외곽단체´들, 그리고 ´조평통´·´조통´·´범민련´·´한민전´ 등의 ´대남공작 조직´을 가지고 남한사회의 이념갈등 선동에 의한 국론분열과 지하당 조직을 통해 남한체제의 전복 공작을 집요하게 추진해 왔다.
1998년 김대중 정권 등장 이전의 역대 남한 정권들은 ´국가보안법´과 ´중앙정보부´(´국가안전기획부´를 거쳐 지금은 ´국가정보원´)을 중심부에 포진시킨 안보태세로 이 같은 북한의 대남공작을 견제·저지해 왔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 출범 후에는 ´국가보안법´은 유명무실해 졌고 국가안보의 최후의 불침번이어야 할 ´국가정보원´은 ´찢어진 자명고´의 신세가 되어 있는 것이 오늘의 안보현실이다. 이 같은 상황에 북한이 편승하고 또, 이를 이용하지 않을 리가 없다. 더구나 4.15 총선정국을 검은 먹구름처럼 뒤덮어 그들에게 ´물실호기(勿失好機)´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 탄핵정국을 북한이 무시·외면할 리 없다는 것도 자명하다.
문제는 4.15 총선정국이 개막되고 있는 시점에서 북한이 보는 남한관이 무엇이냐에 있다. 이에 관해서는 작년 9월 북한의 ´조선로동당출판사´가 발간한 ´(조선로동당) 간부 및 군중 강연자료´를 읽어 볼 필요가 있다. 이 문건의 제목은 “력사적인 6.15 북남 공동선언 발표 이후 남조선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데 대하여”이다. 이 문건에서 북한은 6.15 ´북남 공동선언´ 이후 남한에서는 “반공보수세력에 비해 친북련공세력이 력량상 우세를 확보”했고, “반공보수세력이 사회의 기슭으로 밀려나고 진보적 운동세력들이 주류로 등장”하여 “권력의 칼자루를 잡았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 결과 지금 ´남조선 인민´들은 “외세와 공조할 것이 아니라 민족끼리 공조해야 한다는 우리(북한의) 주장을 수용”하고 있고 “´민족공조´냐 ´한미공조´냐의 두 선택지 가운데서 대부분이 ´민족공조´의 방향을 선택”하여 ´조미 핵대결´에서도 “우리(북한) 편에 서서 적극 지지응원하고 있다”는 것이 이 문건에서 밝히고 있는 북한의 주장이다. 남한에서 “과거에는 반공보수세력이 80%, 진보세력이 20%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여론조사 응답자의 82%가 핵문제 해결에 있어서 북한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곧 “남조선은 이미 우리가 먹었다”는 생각이다.
이 같은 북한의 자신감은 그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그른 것인지의 여부를 떠나서 남한에서 이미 회자되고 있는 “이미 공산화는 되었는 데 다만 적화통일만 아직 안되었을 뿐”이라는 자조와 일맥상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북한은 이 같은 ´자신감´에 입각하여 4.15 총선거를 통해 국회마저 친북연공세력으로 하여금 장악하게 하겠다는 대담한 ´올인´ 작전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북한의 행보는 당연히 1992년의 ´남북기본합의서´를 난폭하게 위반·유린하는 행동이다. ´남북기본합의서´는 제1조에서 “상대방 체제의 상호 인정·존중”을, 제2조에서 “상대방 내정 불간섭”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안중에 남북간에 이루어진 합의의 이행이 있을 리 없다. 이미 북한의 속셈은 이번 4.15 총선거에서 한나라당을 왜소화시키고 ´친북연공 연합세력´으로 하여금 국회의 다수 의석을 장악하게 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 여세를 몰아 탄핵파동으로 이미 만신창이가 된 노무현 대통령을 철두철미 꼭두각시로 만든 뒤 북한이 주도하는 통일정국으로 넘어가려 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임박한 총선거 투표일을 앞두고 북한의 검은 속셈을 정확하게 읽어내고 이에 적절하게 대처하는 일은 이제 고 건(高 建) ´권한대행´의 몫이 되었다. 그러나 ´권한대행´으로써 고 건 총리가 불가피하게 가지고 있는 한계를 고려한다면 결국 이 나라를 수호해 내는 일의 큰 몫은 결국 국민, 그 보다는 유권자들의 몫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