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학자의 소신 짓밟지 말라
얼마 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연구원이 참여정부의 보건의료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으나, 이를 거부하고 사직서를 제출한 사건이 발생했다.
심사평가원은 이 연구원은 공직에 있으면서 정부 정책을 비판했기 때문에 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으나, 징계 사유가 충분히 이해되지 않는다.
심사평가원의 말대로 이 연구원은 준 공무원 신분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학자로서의 최소한의 양심은 지켰다고 본다. 그래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오히려 이러한 양심을 짓밟은 정부와 심사평가원이 비난을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의약분업 추진 당시에도 있었다.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원이 의약분업으로 인한 보험재정이 생각보다 많을 것이라고 지적했으나, 오히려 정부로부터, 그리고 동료 학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사실이다.
정부정책이 예정대로 추진돼야 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지적은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을 수렴하고 사전에 대비할 경우 더 큰 사태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자신이 공부하고 배운 분야에서의 연구한 결과를 명예로 생각하는 연구자들에게 정략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이를 조절하지 않기를 바란다. 언제까지나 연구자들이 자신의 소신을 저버리고, 정부의 입맛에 맞는 연구를 수행할 수는 없다.
이 연구원이 사직서를 제출하게 된 이유는 지난 2월 14일 이화의대에서 열린 ‘한국경제학회 통합 학술대회’에서 ‘참여정부 1년의 보건의료정책 평가’라는 논문이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보고서는 ‘정부는 보건의료정책에 대한 전체적인 방향은 제시하고 있지만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역량(인력, 재정 등)은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심사평가원은 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징계조치를 내리게 된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참여복지 5개년 계획, 보건의료발전계획을 발표하면서 의협을 비롯한 전문가단체로부터 많은 의견을 수렴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정부 정책에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학자 및 전문가들은 거의 배제하다시피 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더 이상 시대착오적인 발상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정환 기자 leejh91@km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