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물갈이 연대는 정치판의 물을 갈지 못했다

총선이 시작되기 한달 여 전부터 이번 4.15 총선에서 정치판을 물갈이 해보겠다고 공언해 온 2004 총선 물갈이 연대가 7일(수) 오전, 새로운 정치의 등장을 바라는 유권자들의 기대 속에서 지지 후보 54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작 뚜껑이 열린 물갈이 연대의 물갈이의 실제를 보게 된 지금, 아쉬움과 허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물갈이 연대가 예전의 썩은 물을 빼고 난 자리에 정치를 바꾸고 세상을 바꿀 만큼 신선하고 역동적인 물이 용솟음치길 희망했는데, 물 빠진 자리를 다시 들여다보니 소독약을 좀 뿌렸을 뿐, 그 물이 그 물이기 때문이다.

물갈이 연대가 지지 후보로 선정한 국회의원 후보들은 열린우리당 김근태(서울 도봉구 갑)·김희선(서울 동대문갑)·임종석(서울 성동구을) 등 36명, 한나라당 고진화(서울 영등포갑)·황영철(강원 홍성 횡성) 등 2명, 새천년민주당 김동일(서울 중구)·김완자(전북 전주완산을)·최경주(광주 북구을) 등 3명, 민주노동당 권영길(경남 창원시을) 등 12명이다.

물갈이 연대는 지지후보 명단을 발표하면서 “정당과 인물에 대한 고려보다 객관적 평가를 기준으로 지지후보를 선정했다”고 말했다.

물갈이 연대가 자신들의 지지 후보 결정이 객관적이라고 주장하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50여 년간 한국 정치사를 더럽히며 정치 혁신을 가로막아 온 기득권 정당의 후보들을 지지했을 뿐만 아니라, 대다수 언론과 마찬가지로 대안 정당과 정치신인을 철저히 배제한 상태에서 지지 후보를 결정한 것에서 물갈이 연대의 주관성과 그에 따른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라크 파병안을 국민 과반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당론으로 정해 통과시키고, 생존의 위기에 몰린 농민들이 도로를 점거하고 격렬한 싸움을 벌이는 와중에도 국회에서 FTA 비준안을 통과시킨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민주당의 공천을 받은 정치인들이 정치판에서 근본적인 물갈이를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유권자는 그리 많지 않다.

남부끄럽지 않게 개인의 정치적 소신에 따라 정치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혹은 열린우리당의 공천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게 이라크 파병안과 FTA 국회통과를 지켜보고 난 후의 교훈이다. 깨끗한 정치, 서민의 정치를 부르짖다가도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소속 당의 당리당략에 따르게 되는 게 한국 정치판 물의 수준이기 때문이다.

물갈이 연대가 지지하고자 하는 54명의 후보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최악을 막기 위한 차악 정도에 불과하다. 언제나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최악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차악이다.

정치판을 근본적으로 물갈이 해보고 싶었다면 대안 정당과 정치신인을 배격하지 말았어야 한다. 지난 수십 년간 정치발전을 가로막아온 한국사회의 이념틀을 과감히 깨트리고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꾸고자 하는 정치인들을 지지하는 게 진정한 물갈이다. 과거의 정치판에 아무런 빚진 것도 없고,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세상을 혁파해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후보들이야말로 신선하고 역동적인 물이다.

여론에 편승해 새로운 정치세력을 철저히 무시한 물갈이 연대는 기존의 정치세력을 옹호하는 것에서 한 발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정치를 바꾸겠다며 온갖 미사여구를 늘어놓으며 스스로를 수구 정치세력과 차별화하면서도 서민이 진정으로 주인 되는 세상, 이라크 파병과 FTA 비준 등이 국민의 뜻에 따라 결정되는 세상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물갈이 연대는 이번 지지 후보 발표를 통해 개혁을 부르짖으면서도 세상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시민운동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줬다. 다음 총선에서 진정한 물갈이를 하기 위해서는 물갈이 연대부터 물갈이해야겠다.    

사회당 학생위원회(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