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술과 인술]꼭꼭 닫힌 의료정책

고려대학교에는 ‘바이오 마이크로시스템 기술협동과정’(BMT 과정)이라는 학제간 협동 대학원 과정이 있다. 학제간 협동과정이란 여러 학문분야가 모여서 새로운 분야를 만드는 개념으로 정부나 대학에서 적극 권장하고 있는 제도이다.

고려대학교가 BMT 과정을 만든 이유는 요새 유행하고 있는 IT, BT, NT분야의 관련 대학인 공과대학, 이과대학, 자연과학대학, 생명과학대학, 의과대학이 한 캠퍼스내에 있고 무엇보다 시제품을 사용해 볼 수 있는 병원이 옆에 있다는 지리적 여건에 힘입은 바가 크다.

다양한 전공분야의 교수들이 모인 만큼 아이디어나 기술력 또한 탁월하여 금방이라도 새로운 제품이 시장에 나올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이다.

현재 이 분야의 제품들은 IT라는 인프라를 이용해 NT와 BT 기술을 응용하는 것으로 주로 병의 조기진단, 연속적인 모니터, 건강관리나 건강경보와 같이 사람과 관련된 아이디어 제품들이다. 그런데 연구가 진전되고 시제품 단계에 들어가면 전혀 뜻밖의 상황에 부딪치게 된다. 우리의 의료보험제도가 새로운 기술의 도입을 제도적으로 막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임신반응검사를 의료행위로 볼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것처럼 새로운 의료 기술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안전성과 유효성을 증명해야 하는데 국내에서 개발되는 응용기술의 경우 관련 규정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의료보험재정의 균형이나 적정진료라는 이름의 평준화된 진료에만 관심이 있는 정부당국의 허가를 받기가 쉽지 않다.

정부는 진료비 상승을 이유로 새로운 의료기술 도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렇다고 일반화된 의료행위를 비의료행위로 분류하여 국민들이 스스로 자가진단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데도 인색한 편이다. 우리나라는 전국민 의료보험제도를 택하고 있는 전세계에서 몇 안 되는 국가다. 그 덕분에 국민들의 의료기관 이용률이 세계에서도 높은 편이다. 의료비가 싸고 의료기관에 대한 접근성이나 수월성이 좋은 탓이다. 그리고 IT나 BT, NT의 응용 기술력은 다른 나라에 비해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이런 좋은 여건에서도 평준화된 진료를 강조하고 의료비 절감만을 고집하는 정부 의료정책으로 우리나라의 미래 성장동력이 갈 길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김형규 교수(고려대의대 안암병원 내과)〉

최종 편집: 2004년 04월 12일 15:5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