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파업을 보는 눈
평소에 알고 지내는 종합병원 원장을 하는 이가 “병원은 이제 더 이상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야”라고 한탄조로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은 과거 우리 사회의 병원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생명을 구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병원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는 것은 의료의 공공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커다란 비극입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병원 노동조합의 파업에 대해 “인간의 생명을 구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백의의 천사들이 파업을 하면 되느냐?”고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언론의 보도 내용은 의료 공백 발생 여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응급실, 수술실, 중환자실의 실태와 수술 건수, 진료 환자수의 변화를 뉴스 시간마다 상세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보도 태도는 병원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촉발시킬 뿐, 사태의 원만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병원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불친절하다고 불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나라 병원 노동조합이 지나치게 과격하고 투쟁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원인을 병원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에게서만 찾으려고 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특별히 성격이 쌀쌀맞거나 인격적 결함이 많거나 폭력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만이 주로 병원에 취업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인격적 결함이나 과격한 성격을 지닌 병원 직원도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병원에 근무하는 사람들에 대해 갖고 있는 보편적 인식이 그런 것이라면 그 현상의 원인을 병원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개인적 문제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의료 서비스 체계나 의료 환경과 같은 구조적 측면에서 찾아봐야 합니다.
간호사들 중에는 어릴 때부터 백의의 천사가 꿈이었던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많은 간호사들이 병원에 취업하면서 절망감을 느낍니다. 우리나라 병원의 의료 시스템은 간호사들로 하여금 환자와 보호자에게 인간적으로 다가서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전체 의료기관 중에 공공의료기관은 대략 10%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말은 우리나라 병원들 중에서 대략 90% 정도는 인간의 생명을 구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일을 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다른 사기업과 마찬가지로 최대한의 이익을 남기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병원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에게 최소한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노동을 시킴으로써 최고의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환자나 보호자들이 병원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무엇 하나 물어보기가 겁나는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어쩌다 설명을 듣는다해도 얼마나 빠르게 설명하는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을 때가 간혹 있는 것도 역시 그 때문입니다.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들의 걸음걸이를 한번 관심 있게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들은 근무시간 내내 종종걸음을 치며 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 병원에서는 인력 감축, 비정규직 확대, 임금 동결, 현장 통제 강화 등의 방식을 적절하게 사용해서 수익을 많이 남기는 원장이 유능한 경영자로 평가받습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원장은 아무리 훌륭한 의료 지식과 경험을 갖췄다 해도 무능한 경영자로 낙인 찍혀 퇴출 당합니다. 한 종합병원에서는 의사들에게 지급하는 봉급을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며 벌어들인 수입에 비례하여 지급하는 성과급 방식으로 변경한 뒤부터 각종 검사 건수가 몇십 퍼센트나 늘어나기도 했습니다. 병원이 수익을 남기는 돈벌이 중심의 운영을 하게 되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들이 입게 됩니다.
영국과 같은 나라의 경우에는 공공의료기관이 전체의 95%나 됩니다. 병원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수익에 신경 쓸 필요 없이 환자를 진료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습니다. 병원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서 공공의료 확보를 가장 중요한 요구의 하나로 계속 내세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공공의료가 확보돼야만 보건의료인들이 병원에 취업하면서 꿈꿨던 보람있는 인생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병원 파업의 원인을 병원의 노사관계에서만 찾으려고 한다면 사건의 본질을 옳게 볼 수 없습니다.
한 의사가 병원 노조 파업에 관해 비판적으로 이야기하면서 “현대 사회에서 유일하게 독재가 필요한 곳이 병원이다.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병원에서는 의사의 독재가 필요하다. 위급한 환자를 앞에 놓고 간호사들과 함께 ‘자 이제부터 토론합시다’ 그런 식으로 해서는 도저히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일리 있는 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병원 노동자들의 파업은 의사로 하여금 환자 진료에 더욱 전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자는 것이지 의사의 고유한 영역을 침해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이 만일 ‘노동운동을 통해서 떼돈을 벌어야겠다’고 마음먹는다면 사람들은 아마 그 노동운동가를 절대로 용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것은 노동운동보다 더욱 숭고하고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그 거룩한 일을 하는 병원이 더욱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면서 병원 노동조합의 단체교섭 요구에는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은 채, 병원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분노로 바뀌기를 기대하고 있다면 그것은 사회에 유익한 올바른 일이 아닙니다.
시사자키 칼럼 하종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