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보내는 감독들의 경고문

조선일보에 보내는 감독들의 경고문

오늘 우리 젊은 영화감독그룹<디렉터스 컷>소속 감독들은 스크린쿼터축소를 둘러싼 논란이 한미 FTA 자유무역 협정에 대한 문제 제기라는 본질은 외면된 채, 한국영화계 전체를 매도하는 방향으로 왜곡, 증폭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더 이상 이 사태를 좌시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더구나, 정부의 고위관료인 재경부 차관이 ‘애국심 있는 배우들이 왜 외제차 타나’ 라는 상식이하의 감정적인 언사를 기자들에게 내뱉으며, 한국영화 저격수로 앞장서는 상황을 보면서 허탈함을 넘어 영화계에 대한 공공연한 적개심마저 느껴지게 하고있는 현 상황 속에서
조선일보는 사회의 냉철한 시선이 되어야할 언론으로써 이러한 핵심을 빗나간 저열한 논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생산적인 논쟁의 장으로 여론을 이끌 막중한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를 확대 증폭하며 일방적인 영화계 매도에 가장 앞장서고 있다. 이에 우리 감독들은 영화의 창작주체로서, 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심각한 우려와 공분을 금할 수 없다.

돌이켜 보면, 불과 몇 년의 시간 동안 폭발적으로 성장한 한국영화는 내부적으로 여러 문제들을 안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그것이 IMF 를 거치며 양극화로 치달아가는 한국사회의 모순과 궤를 같이 하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감독을 비롯한 모든 영화인들은 이미 그러한 문제들을 두루 인식하고 있었으며, 한국영화가 보다 안정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이 문제들을 합리적으로 고쳐나가야만 한다는 문제의식에 모두 동감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 까닭에 2005년10월, 영화계 여러 가지 모순들을 해결하고자 <한국영화 산업구조 합리화 추진 위원회>꾸려졌으며 그 직후에, <한국영화산업노조> 동시에, 감독, 촬영감독, 미술감독, 시나리오 작가, 등 각 직능별 조합이 꾸려졌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스태프들의 처우개선 문제와 제작시스템의 합리화를 가장 중요한 의제로 논의 중인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올 초 느닷없이 터져 나온 스크린쿼터 축소 결정은 영화계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고, 그 이후 영화계를 향해 쏟아지던 소위 ‘집단이기주의’니 ‘배부른 돼지들’ 이니 하는 일방적인 여론의 돌팔매 앞에서 우리 영화인들은 우리 자신을 변론할 기회조차 제대로 갖지 못했다.

아울러 이 모든 마녀 사냥과 광폭한 여론몰이의 최선두에 언제나 조선 일보가 버티고 서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일보는 작년 6월의 제작자 배우간 분쟁에 있어서도 사석에서 거론되었던 몇몇 배우들의 실명을 그대로 지면에 실으며 “배우들 너무 돈 많이 밝혀요” 라는 선정적인 제목을 달아 보도를 내보낸 바 있다. 당사자인 해당 배우들이 받은 심적 피해는 차치하고, 이런 가십성 기사를 통해 당시 사태의 본질이었던 배우 매니지먼트사들의 영화제작 참여 문제에 대한 핵심 쟁점은 사라진 채, 배우와 제작자간의 개런티 논쟁만 부각되어 결과적으로 사태가 양자간의 밥그릇 싸움으로 왜곡되고 말았다. 이는 지금의 스크린쿼터 논쟁에서 고스란히 재현되어 영화계 전체에 대한 비이성적인 매도로 번지고 있다.

이번 스크린 쿼터 논란에서 또 한번 보여준 조선일보의 객관성을 상실한 일련의 보도들은 조선일보라는 언론사의 정치적 입장과 문화적 입장을 분리해서 바라보려던 많은 감독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실망과 우려를 안겨주었다.
특히 지난 2월15일, 영어교재 저술가 조화유씨의 기고문을 통해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는 관객을 위해서나 감독을 위해서나 만들어지지 않는 게 차라리 좋았을 졸작 영화’라는 식의 근거 없는 폭언을 쏟아내며 이런 영화를 지켜줄 스크린 쿼터는 시대착오라는 주장을 펼치게 하였다. 박찬욱 감독이 베를린에서 1인 시위를 한 바로 다음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런 악의적인 비난으로 가득한 기고문을 내보낸 조선일보의 행태는 과연 그들이 우리 영화 감독들, 나아가 영화인 전체에 대해 최소한의 존중심이나마 갖고 있는지 묻고 싶게 만들 뿐이다.
그리고 21일엔 급기야 영화계를 겨냥한 상식이하의 발언을 일삼아 온 권태신 재경부 2차관을 칭송하는 특집기사까지 내보내며, 정부 관료에게선 보기 힘든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추켜세우기까지 하였다.

지금까지의 모든 행보를 지켜보며 이제 조선일보는 더 이상 우리 영화인들을 세상과 이어주는 친구이자 동반자가 아니라 우리를 조롱, 협박, 좌절시키는 적이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명명백백히 깨닫게 되었다. 나아가 그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보도 행태를 볼 때 언론의 사회적 책임 또한 이미 내던진지 오래라는 것도 재삼 확인하게 되었다.

일제 시대 나운규 감독이 어렵게 아리랑을 찍으며 민족의 영혼을 지켜나가려고 노력했을 때, 대표적인 친일 신문으로 일제에 협력해 민족 말살에 동참하던 조선일보를 우린 기억한다. 이런 수치스런 과거에 대한 반성과 앞으로의 겸허한 자세는 온데 간데 없고,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한미 FTA자유무역협상을 맞아 국가의 실익을 냉철히 분석해야 할 언론으로써 그 의무와 책임은 방기한 채, 이에 반대하거나 문제제기를 하는 집단에겐 철저한 외면 혹은 무자비한 언론 테러를 가하는 조선일보.
조화유식으로 말하자면 조선일보는 국민을 위해서나 그들을 위해서나 세상에 나지 않는 게 차라리 좋았을 역사에 부끄러운 지면을 오늘도 찍어대고 있다.

우리 젊은 감독들의 모임 <디렉터스 컷>은 이에 조선일보에게 엄중히 경고한다.

지금까지의 박찬욱 감독과 영화계에 대한 일방적인 매도와 명예 훼손에 대해 즉각 사과하고, 앞으로 재발 방지 및 진실에 입각한 객관적인 언론의 책무를 성실히 다할 것을 약속하지 않는다면 우리 감독들은 가능한 모든 역량을 모아 이에 강력하게 대응 할 것이다.

2006년 2월 27일

디렉터스 컷(Director’s CUT) 소속 영화 감독일동